"호박죽 끓여놨다. 먹고가라."
며칠 전, 홀로 살고 계시는 어머니 집에 들렀었지요. 집안 모퉁이에 누런 호박 하나가 있었습니다. 오래 됐는지 호박이 조금씩 썩어 가는 게 보여 어머니께 "호박죽이나 끓여 먹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오늘 호박죽 끓여 놓고 아들인 저를 불렀습니다.
오후에 어머님 집에 도착해 앉으니 정성스레 끓인 호박죽 한사발을 퍼주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걸 보니 조금전 완성한거 같았습니다.
호박죽은 팥뿐 아니라 여러 종류의 대콩과 찹쌀, 찹쌀가루를 넣고 한소끔 끓여낸 것이었습니다. 한 수저 퍼먹어 보니 맛났습니다. 호박죽을 먹고 있으니 오래 전 어머니가 해주신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어머니가 20대 중반즈음 제가 4살 되던해 겨울이었습니다. 지지리도 가난했던 살림인지라 먹을 게 없었습니다. 며칠을 굶다시피해 배가 너무 고파 선반 위에 올려진 누런 호박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엄마 배고픈데 저 호박이라도 삶아 먹자."
그 말에 어머니는 저를 끌어안고 많이 울었다고 했습니다. 아들에게 호박죽이라도 끓여주기 위해 이 동네 저 동네 동냥을 해서 쌀을 조금 얻어와 호박죽을 끓여 주었다고 합니다.
늙은 호박을 죽 끓이려고 장만하면서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늘, 어머니가 끓여준 호박죽은 그때 그 호박죽 보다 더 맛난 것이었습니다.
50여년이 흐른 지금 20대 중반의 젊은 아낙이었던 엄마는 사라지고 어느새 70세가 넘은 할머니가 앉아 있었습니다. 어느덧 어렸던 저도 50대 중반이 되어 어머니가 끓여준 호박죽을 얻어먹고 있었습니다. 오늘 어머니가 끓여준 호박죽... 세상에서 가장 맛나는 호박죽입니다. 어머니...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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