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이재언씨와 함께 횡간도를 방문했다가 횡간보건진료소를 찾았다. 횡간도는 여수시 돌산 남쪽 1.5㎞ 해상에 떨어져 있는 섬으로 면적 1.22㎢에 51세대 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보건소장님이 마을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는 말을 하자, 변귀례(75세)씨가 커피를 주며 신이 나서 얘기를 시작했다.
"전에는 까만 건 글씨고 흰 것은 종이였어요. 소장님이 한글과 건강체조, 보건교육도 해주고 1, 2, 3, 4 숫자도 가르쳐주셨어요. 부모도 안 가르쳐주고 자식도 안 가르쳐줬는데 저런 소장님을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낮에는 밭과 바다에 나가 일하고, 밤에 힘들고 졸려도 한자 더 배우려고 꼭 와요. 연필, 필통, 가방, 공책, 지우개, 칼도 사줘요."그녀가 "그레용도 사줬다"고 말해,"그레용이 아니라 크레용이에요"라고 말하자 "전에는 그레용인지, 크레용인지도 몰랐는데 우리 소원풀이 해줬어요"라고 말한 그녀는 신명이 났다. 때마침 나이 지긋한 전한주(78세)씨가 들어와 대화를 듣다 말을 시작했다.
"우리 소장님 비행기 태워줘야 해요. 횡간도에 학교가 있었지만 돌산 사는 여자아이들은 아기 보고 집안일 돕느라 학교도 못 갔어요. 그런데 소장님이 공부도 가르쳐주고 율동도 가르쳐주니까 얼마나 좋아요."60세에서 86세 학생들, 매주 4일간 3시간씩 한글공부
횡간보건진료소 김덕례 소장이 횡간도 한글문해교실에 대해 설명했다. 여수시 교육지원과에서 섬주민들을 위해 한글문해교실을 열려고 했지만 섬이라 지원자가 없었다. 소식을 들은 할머니들이 어느 날 김덕례 소장을 찾아와 "죽기 전에 눈 한번 띄워주시오"라고 요청했다.
딱한 소식을 들은 김덕례 소장이 남편한테 자세한 전말을 얘기하자 "지금까지 국가의 녹을 먹고 살았으니 이제 작은 것이나마 갚자"며 자비로 100만 원을 마련해 연필, 공책 등의 학습교재를 구입해 학생들을 모집했다. 남편도 공직에 있었다.
2016년 3월 2일, 23명으로 시작했지만 사정이 있는 분 3명이 빠져 20명이다. 학생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4일간, 저녁 7시부터 9시 40분까지 3시간 동안 한글, 율동, 건강체조 등을 배운다. 수요일에 쉬는 건 교회에 가는 분들을 위한 배려이다.
김덕례 소장과 남편인 이창남씨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좋아하는 노래인 <내 나이가 어때서>와 <백세인생>의 가사를 개사해서 재미있게 가르치고 있었다. 개사한 노랫말 일부분이다.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쳐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한글 배우기 딱 좋은 나인데~""육십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칠십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한글 배우느라 못 간다고 전해라~" "처음에는 연필도 못 잡았는데 정말 열심해 해요"라고 말한 김 소장이 어르신들을 위해 한글문해교실을 연 보람을 말했다.
"얼마 안 있으면 퇴직하는 데 이렇게 봉사할 기회가 생겨 너무나 좋아요. 가르치는 것보다 어르신들한테 배우는 게 많아요.""전에는 내가 사는 동네인 '여수시 남면 횡간 해안길'이라는 주소도 몰랐는디 지금은 다 알아요. 글 배운 것이 얼매나 좋은지 모르겄어"라고 말하는 할머니 옆에 학생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김달막(86세) 할머니가 있어 "왜 한글을 안 배웠느냐?"고 물었다.
"시집 오기 전 화태도에 살았는데 없이 살아서 오빠 동생들만 가르치고 나는 안 가르쳤어요. 한글교실에 와서 박수치며 노래도 부르고 교회에서 찬송가도 내 손으로 찾을 수 있어 너무 좋아요."
순환근무 연한이 끝나가는 김덕례 소장은 횡간도를 떠나 다른 임지로 갈지도 모른다. 할머니들한테 "소장님 여태껏 고생했으니 다른 곳으로 보낼까요?"라고 묻자 할머니들이 펄쩍 뛰며 "그러면 된다요! 글씨도 가르쳐주고 우리 아픈 것 치료해 준 것만도 어딘데…"라며 이구동성으로 손사래를 쳤다.
"소장님이 퇴직할 때까지 횡간도에 계시도록 해달라"고 말하는 할머니들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섬에 거주하며 어르신들에게 제2의 인생을 불어 넣어준 김덕례 소장 부부를 생각하며 다음 행선지로 떠나는 마음속에 행복감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