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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자신의 논문 <방어의 신경정신학>에서 '방어기제'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방어기제'는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여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 의식이나 행위를 가리키는 정신분석 용어입니다.

인간은 타인과의 갈등 상황에서 종종 이 '방어기제'를 발휘합니다. 이 무의식적 방어행위는 자신을 지키겠다는 본능이 자신을 속이게 하기 때문에 때로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지 자신조차 망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으르렁 아빠1 <그림책공작소>
으르렁 아빠1<그림책공작소> ⓒ 최혜정

<으르렁 아빠>(그림책공작소)의 주인공 '으르렁 아빠'는 바로 이런 인물입니다. 검은색 옷에, 검은색 장갑, 검은색 장화까지 신고 늑대마을을 휘젓고 다니면서 모두를 공포에 떨게 하는 으르렁 아빠, 아빠는 그 검은 모습 뒤에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방어하고 싶었던 걸까요?

으르렁 늑대는 다정한 아내와 사랑스러운 딸 그리고 세 아들에게도 겁을 주며 불안해하는 모습을 즐겼습니다. 오히려 더 무섭게 보이기 위해 집에서도 절대 검은색 장화와 장갑을 벗지 않았지요. 그의 아내조차 불행하게 만드는 그의 검은 가면들은 그를 으르렁거림으로 질주하게 만듭니다.

'숲에서 가장 무섭고 언제나 으르렁대는 검은 늑대하고는 절대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밤이 되면 이렇게 생각하곤 하는 아내의 삶은 으르렁 늑대의 삶까지 파괴시킬 가공의 힘이 있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합니다.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 쌓아놓은 방어벽이 사실 으르렁 늑대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으르렁 아빠 불행한 엄마
으르렁 아빠불행한 엄마 ⓒ 최혜정

가만히 주위를 돌아보면 세상은 '으르렁 늑대' 투성이입니다. 상처받기 두려워 제 모습을 감추고 으르렁 거리거나, 제 모습이 세상 사람들에게 우습게 보일까봐 가면을 쓰고 으르렁 거리거나, 자신이 욕심껏 움켜 쥔 무엇인가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온통 난리법석하며 으르렁거립니다.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 자신의 연약함이든 욕심으로 가득 찬 몰골이든 그것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드러내지 않으려 가짜 모습을 가지고 전전긍긍하는 그 누구든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뉴스 속의 누구도, 내 옆에 누구도, 그리고 나 자신도, 지금 으르렁 거리고 있음이 무엇 때문인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느 날 으르렁 아빠는 매일처럼 그랬듯이 아이들에게 으르렁 거리며 '작은 별 노래'를 부르게 합니다. 그리고 그 노래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듭니다. 검은 괴물 같은 으르렁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가 '작은별' 노래라니, 참 아이러니 합니다. 방어기제의 역설성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아빠의 내면은 작은별 노래를 사랑할만큼 여리고 사랑스럽다는 걸 보여주고 있지요.

아빠는 여느 날과 똑같았지만 아이들과 엄마는 달라졌습니다. 드디어 결심을 합니다. 아빠의 장갑과 장화를 벗겨버리겠다고 말이죠. 그리고 잠든 아빠에게 살금살금 다가가 하나씩 하나씩 장화와 장갑을 벗겨냅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깜짝 놀랍니다. 아빠의 진짜 모습은 온통 알록달록한 사랑스런 늑대였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아빠의 검은 장갑과 검은 장화를 숲속 깊은 곳 땅속에 묻어버립니다.

으르렁 아빠 작은별 노래
으르렁 아빠작은별 노래 ⓒ 최혜정

잠에서 깨어난 아빠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빠는 알록달록 빛나는 진짜 모습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칠장이에게 뛰어가 페인트로 칠해달라고 하고, 의사에게 달려가 석탄만큼 그을려달라고도 합니다. 철물상으로 달려가 귀 가리개를 만들어달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내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슬픔에 빠집니다. 그리고 두려움에 빠집니다. 더 이상 아무도 자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고 알록달록한 자기 모습을 비웃을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으르렁 아빠3 그림책 공작소
으르렁 아빠3그림책 공작소 ⓒ 최혜정

아빠는 집으로 돌아와 태어나서 처음으로 울고 맙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말합니다. 숲에서 가장 알록달록한 늑대와 결혼한 것을 제발 후회하지 말아 달라고요. 으르렁 아빠의 으르렁거림은 자신의 연약함을 감추기 위한 철저한 방어기제였던 것입니다.

아빠의 진짜 모습은 온 가족을 행복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빠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으르렁거림을 계속하게 할 잃어버린 검은 가면들을 다시 찾으려는 아빠의 고군분투가 눈물겨웠지만 으르렁에서 탈출하여 아빠의 진짜 모습을 찾게 한 가족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으르렁 아빠 영문판 표지
으르렁 아빠 영문판표지 ⓒ 최혜정

이 그림책의 원제목은 'Terrible'입니다. 지독히 공포스러운 현실을, 그리고 자신을 극복할 길은 오직 나의 진짜 모습을 찾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으르렁 아빠'는 알려줍니다. 그리고 하나 더 그 진짜 모습을 사랑해주는 나의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을 향한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지금 내 모습이 으르렁 아빠라면, 지금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으르렁 아빠라면, 지금 뉴스를 뒤흔드는 그들이 으르렁 아빠라면 이제 우리의 힘으로 검은 장갑과 검은 장화를 벗겨낼 때입니다. 용기를 내세요.


으르렁 아빠

알랭 세르 지음, 브뤼노 하이츠 그림, 이하나 옮김, 그림책공작소(2016)


#으르렁 아빠#그림책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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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말하고. 책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독서 탐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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