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학교 종업식에서 '박근혜 탄핵'의 부당함을 역설한 곽일천 서울디지텍고 교장이 일방 '훈시'를 해놓고도 "대토론회였다"는 해명을 내놨다. 사실과 다른 '거짓 해명'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부 다 날 쳐다봐" 이렇게 말해놓고 무슨 토론회?13일, 디지텍고가 지난 8일자로 학교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안내한 유튜브 동영상을 확인한 결과 곽 교장은 지난 7일 이 학교 종업식에서 약 50분가량 '박근혜 탄핵'의 부당함에 대해 색깔론을 곁들여 훈시했다.
이 날 곽 교장은 훈시에서 "지금 (탄핵은) 지극히 정치적인 음모에 의해 언론, 국회, 검찰, 종북세력들에 의해 국가시스템 자체를 뒤엎어 보겠다는 불순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다음처럼 공격했다.
"우리가 햇볕정책이다 뭐다 했지만 속아서 (북한이) 결국은 그 돈으로 올해 중에 핵무기를 완성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중략) 심지어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그 사람이 '반미주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 않느냐' 여러 질문들을 하니까 뭐라고 했는지 아나? '반미가 어떻느냐, 뭐가 나쁜 거냐?'(라고 대답했다)"이 훈시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곽 교장은 13일 이 학교 홈페이지에 '탄핵정국 관련 학생들과의 토론회에 대하여 드리는 글'이라는 해명 글을 올려놨다. 그는 이 글에서 지난 7일 훈시를 놓고 '대토론회'로 표현했다.
그는 이 글에서 "우선 이번 대토론회는 사전 준비모임으로 학생들과 의견교환을 했다"면서 "본 토론회의 진행도 학생들의 의견개진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매우 강한 반대의견도 경청했다"고 해명했다.
곽 교장 훈시에 강하게 반발하는 학생도
하지만 실제 진행된 행사의 모습은 곽 교장의 주장과 달랐다. 동영상 전체를 살펴본 결과 전체 1시간 6분 44초 분량 가운데 50분 30초 동안은 '토론'이라기 보다 일방 훈시였다. 곽 교장의 주장처럼 애초에 토론회로 기획했다고 해도, 실제 행사는 원래 계획과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진행된 것. 이날 곽 교장은 "저쪽, 저기 고개 들고 전부 다 날 쳐다봐"란 말로 훈시를 시작했다.
훈시의 내용 또한 문제였다. 탄핵의 부당함을 설명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전체 국민의 80%가량이 탄핵에 찬성하는데도 특정 정파의 소수 의견을 학생들에게 주입한 셈이다. 게다가 사실관계를 왜곡한 부분도 상당했다. 다음은 그의 주장 가운데 일부다.
"탄핵사건을 처리하는 우리 사회는 정의로움이 사라졌거나 부족하다. 지극히 법적인 문제를 정치적으로 하고 있다.""태블릿 피시가 최순실의 것이냐 이런 것들이 밝혀지지도 않았다.… 우리나라는 법치와 이성의 판단보다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특검에서 (이재용 삼성 회장) 구속 청구가 거부당한 것은 뇌물이라는 것이 거부당한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 추세다. 하도 안 되니까 '경제공동체다. (최순실이) 대통령과 지갑을 나눠 쓰는 사이다'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엮어도 이만저만 엮는 허위주장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전전 정권에서는 우리 편 좌파 문화인들에게(특혜를 줬다)…. 그 사람들은 이걸 화이트리스트라고 불렀다."훈시가 끝난 뒤 4명의 학생이 질의하긴 했지만, 곽 교장이 말한 시간이 압도적이다. 학생들의 질문에 대한 응답시간까지 합치면, 이날 곽 교장은 1시간가량 마이크를 독차지했다.
토론회란 찬성 측과 반대 측이 양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논의하는 집단토의방법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이날 행사를 토론회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따라서 이를 '대토론회'라고 표현한 곽 교장의 해명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실제 이날 일부 학생은 곽 교장의 훈시 내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한 학생은 "교장선생님도 선생님인데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데 거의 다 우익적으로 가고 계시다"고 반박했다. 학생들은 "와" 소리를 내며 손뼉을 쳤다.
기자는 '거짓 해명' 논란에 대한 곽 교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이 학교 행정실로 전화를 걸었다. 행정실 관계자에게 질문 내용을 사전에 설명하고, 답신을 요구했다. 하지만 13일 오후 5시 현재까지 곽 교장 측의 연락을 받지 못했다.
한편, 해당 사학재단 설립자 아들인 곽 교장은 친일독재 논란을 빚은 <교학사>교과서와 국정교과서 채택 활동에 앞장서온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