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 어느 날 외출했다 오는 길에 남편이 좋아하는 삼겹살 훈제구이를 사왔습니다. 고기와 함께 상추나 깻잎과 같은 채소를 꼭 곁들여 먹곤 하는데요. 요즘 물가가 비싸기도 하고, 냉장고에 먹다 둔 것도 조금 있어서 채소는 사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상추와 깻잎이 까맣게 변해 반절 이상을 버려야만 했습니다.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해 버려야 하는 게 속상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 남편과 아이들이 볼까 전전긍긍하며 버렸습니다. 요즘 물가가 좀 비싼가요. 그래서인지 그날 유독 후회되더군요.
아쉬운 대로 먹다 남은 양배추를 삶아 먹었습니다. 양배추 가운데 부분은 도톰해서 무엇과 함께 볶아먹으면 좋아 비닐봉지에 싸려는데 새삼 망설여지더군요. 상추와 깻잎처럼 깜박 잊고 있다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그렇다면 아예 본 김에 먹는 것이 좋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식품 보존 방법>(성안당 펴냄)은 그런 일이 있던 그 다음날, 서점으로 달려 가 사 읽은 책이랍니다. 책이 나온 직후인 지난해 9월 '서점 가는 길에 검토해보고 괜찮으면 사자'며 인터넷서점 장바구니에 담아둔 후 까맣게 잊고 있었음을 후회하면서.
<식품 보존 방법>은 채소, 육류, 생선, 과일, 유제품, 간식거리 등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식재료나 먹(을)거리 300여 가지, 그 보관(존)방법들을 정리한 책입니다. 책에 의하면 상추와 깻잎이 마른 채로 까맣게 변한 것은 냉해, 즉 저온 장해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쑥갓이나 시금치, 양상추와 같은 잎채소들은 키친타월에 싼 후 비닐봉지에 넣어 세워 보관하면 일주일은 싱싱하게 먹을 수 있다'고 하네요.
오래전, TV 생활정보 코너에서 본대로 '봉지가 팽팽하게 공기 째 넣어 뿌리 쪽을 아래로'와 '키친타월에 싸 봉지에 보관하면서 가끔 물을 뿌려주면 오랫동안 싱싱하게 보관할 수 있다'를 실천했습니다.
그랬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일부는 까맣게 변하고 일부는 물러서 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사온 그대로 봉지에 담아 두고 필요한 만큼만 씻어 먹는다. 최대한 빨리, 가급 그날 먹는다'를 고집해왔습니다. 그런데 책 덕분에 알게 됐습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잎채소는 수분을 방출한다. 마른 키친타월로 싸고 그 위에 비닐봉지를 덮으면 키친타월이 채소에서 나오는 수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적당한 물기를 갖게 된다. 젖은 키친타월로 싸면 채소에서 나오는 수분과 키친타월의 수분으로 인해 수분과다가 되어 물러진다.' - 32쪽, '잎채소의 보존, 어느 쪽이 옳지?'에서)봉지 째 넣은 것은 저온장애를, 물을 뿌려가며 보관한 것은 수분과다였던 거지요. 누가 시금치나 쑥갓, 파프리카를 데쳐 냉동하면 된다고 해 그렇게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것은 질겨지고, 어떤 것은 죽처럼 뭉근해져 난감하더군요. 더러는 말리기도 하는데요. 무청이나 가지, 표고버섯, 취나물처럼 흔히 말려먹는 것 외엔 말리는 것도 망설여지곤 합니다.
정말 냉동해도 되는지, 말려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 의하면 거의 모든 채소들은 냉동할 수 있고, 말려서 많은 요리들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쑥갓: 살짝 데쳐 식힌 다음 냉동하거나 말려 무침이나 국으로 ▲부추: 4cm 정도로 잘라 소쿠리에 담아 뜨거운 물을 부어 데쳐 냉동, 국에 넣어도 되고 무치거나 볶아도 된다. 통째로 큼직큼직하게 썰어 말려 국에 그대로 넣는다. ▲피망과 파프리카: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그대로 또는 볶거나 데쳐 말려 무침이나 볶음, 국에 쓴다. ▲브로콜리: 작은 봉오리로 잘라 살짝 데쳐 냉동하거나 말려 볶음요리나 끓이는 요리에 쓴다. ▲당근: 잘라 그대로 냉동하거나 살짝 데쳐 냉동해 국물요리나 볶음에, 납작하게 썰어 말려 볶음밥이나 국물요리에 ▲숙주: 살짝 볶거나 뜨거운 물 부어 데쳐 냉동해 무침이나 국에. 밑뿌리 떼고 말리면 많이 먹을 수 있다.
이 책에서 알게 된 것들입니다. 특히 남편이 좋아하는 부추를 말리거나 냉동할 수 있음이 어찌나 반가운지요. 해독작용이 있어 간에도 좋고, 비타민 B군의 흡수를 돕는 물질과 자양강장과 피로회복에, 비타민 E가 풍부해 생활습관병 예방에도 좋은 채소로 알고 있거든요.
모두 열거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시중에서 구해 먹는 모든 버섯들을 비롯하여 무, 청경채, 감자, 오이, 가지, 양파, 순무, 우엉 등 냉동 못할 채소들이 거의 없고, 말리지 못할 채소들 또한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과일도 마찬가지고요.
더욱 흥미로운 것은 달걀도 냉동할 수 있다는 것. 껍질째 냉동해도 되고, 껍질을 까서 용기에 담아 냉동해도 된다는데, 노른자만 분리해 얼린 후 반해동해 밥을 비벼 먹으면 색다른 식감을 느낄 수 있다고요. 남편이 가끔 "어렸을 때의 그리운 맛"이라며 버터와 간장과 참기름, 달걀 하나만으로 밥을 비벼 먹곤 하던데, 노른자 하나 얼려 선심 써야겠습니다.
육류 냉장: "개봉하지 않았으니까 팩 째 보관해도 되겠지!" 하고 사온 상태로 보존해서는 안 된다. 팩에 들어 있는 상태에서는 고기가 공기와 접촉해 산화가 진행되는데다 곰팡이나 잡균이 번식하기 쉽기 때문이다. 고기는 팩에서 꺼내 드립(drip)이라고 부르는 고기에서 나온 수분을 닦아내고, 공기에 접촉되지 않도록 키친타월로 싸고 또 랩으로 잘 싸서 비닐봉투에 넣어 공기를 차단시켜 저온냉장실에 보관한다. 또, 소금. 식초 등은 균의 번식을 억제시키므로 밑간을 하는 것도 OK.육류 냉동: 고기를 날것 그대로 장기 보존할 때는 얼음물에 넣었다가 랩에 싸서 냉동한다. 이렇게 하면 고기 표면에 글레이즈라는 얼음막이 생겨, 이 얼음막에서 물 분자가 증발하는 동안은 고기의 수분이 유지될 뿐 아니라 냉동 중의 건조나 산화를 막아준다. 고기뿐 아니라 어패류에도 적용할 수 있는 뛰어난 냉동법이다. - 142~145쪽, '고기 보존, 어느 쪽이 정답?'에서책은 시중에 흔히 알려진 보존법과 바람직한 보존법을 별도의 페이지에 비교 설명하는 것으로 기본적인 보존법을 알려줍니다(위 고기 보존처럼). 또 종류에 따른 보존법을 각각 별도의 페이지로 알려주고 있어서 누구나 알기 쉽게 활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육류뿐만 아니라 채소나 생선 등 모든 식재료들을. 그것도 쉽게 따라할 수 있고, 비교해볼 수 있게 수많은 사진들과 함께. 그리고 재료별 영양과 손질할 때 주의할 점. 저마다 다른 해동법을 일일이 사진과 함께 소개합니다. 덕분에 자주 해먹으면서도 잘 몰랐던 식재료들의 영양과 제대로 된 손질법들도 알게 됐고, 해보고 싶은 음식들도 많이 늘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 집에서 밥 먹는 일이 줄면서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래서 먹을 만큼 그 나머지를 필요대로 보존하는 방법을 세세하게 알려주는 이 책의 정보들이 무척 유용하게 와 닿네요.
게다가 요즘 장바구니 물가가 좀 많이 올랐나요. 날로 올라만 가는 물가 탓만 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보름전 나처럼 보관을 제대로 하지 못해, 그리고 냉장고에 있는 것을 깜박 잊어버려서 버리는 일만 없어도 식비 절약에 어느 정도 도움은 되었을 것을. 저 같은 분에게 될 이 책을 권합니다.
덧붙이는 글 | <식품 보존 방법> (도쿠에 지요코 씀, 김선숙 옮김) | 성안당 | 2016년 8월 ㅣ 정가:1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