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서 다시 시작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공무원 생활도 말단부터 한 게 아니고 중간 간부층부터 했고, 민원인도 주로 '갑' 쪽에 있는 사람이 많았다. 바닥 민심을 접해 보고 싶었다. 인생 공부 다시 시작한 것이다."
최근 만난 전수식(60) 택시기사의 말이다. 행정고시 출신인 그는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경상남도지사 비서실장, 경상남도 국장, 마산시 부시장을 지냈으니 잘 나가던 공무원이었던 것이다.
그는 2010년 6월 초대 통합창원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고, 김두관 전 경남지사(현 국회의원) 때인 2010년 7월부터 경남도 출자출연기관인 경남신용보증재단 이사장으로 있다가 2011년 12월 물러났다.
그리고 택시를 몰았다. 그가 첫 손님을 태운 날은 2012년 3월 31일 새벽. '택시기사 전수식'은 법인택시를 3년 몰았고, 지금은 개인택시를 받아 운전하고 있다. 오는 30일이면 6년째 택시로 창원 시내 곳곳을 누비게 된다.
"내 삶 자체를 반성하고 싶었다. 부산기계공고를 나와 대학에 들어가기 전 4년 가까이 '한일합섬'에 다녔다. 그 뒤로 대학에 들어가고, 공직생활을 25년간 해왔다. 그동안 공직 생활이 문제가 없었는지 돌아보는 기회도 갖고 싶었다."
택시를 운전하다 보면 그를 알아보는 손님들도 있다. 그는 "공무원 하고 출마한다고 돌아다녀서 그런지 드물게 알아보는 분들이 있다"며 "차비를 내고 나서 거스름돈을 안 받아가려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손님이 탈 때 먼저 인사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다. 아는 사람이 밤에 술에 취해 탔는데, 횡설수설 하면 모른 척하는 게 낫겠다 싶어 그냥 운전만 한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고 아는 체 안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다."
"법인택시를 협동조합 방식 운영하면 나아질 듯"전수식 전 부시장은 무사고 운전이다. 그는 "영업용 택시 3년간 무사고 운전해야 개인택시를 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 무사고다"고 '자랑'했다. 택시기사들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영업용 택시기사들은 정말 열악하다. 사납금 넣고 나면 자기 수입을 가져가는데, 한 달 만근으로 12~13일 동안 운전해 봐야 최저임금 조금 더 가져가는 정도다. 그것도 성실하게 해야 그렇다."
"생활 리듬이 바뀌니까 심신이 엄청 피곤하다. 후생 복지 수준도 좀 그렇다. 법인택시 회사에 가 보면 컨테이너를 사무실로 쓰는 데가 많다. 기사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장소라고 할 만한 게 부족하다. 복지 수준이 정말 열악하다. 기사들도 손님한테 잘 해야 하지만, 손님들도 기사를 좀 더 따뜻하게 대해주었으면 한다."
그는 "가족들이 함께 먹고 살 수 있는 최소한 수준은 되어야 한다. 기사들도 내 직장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면서 "법인택시 운영 형태를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제시한 방법은 '협동조합 방식'이다. 그는 "협동조합 택시 방향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다른 지역에서는 그런 사례도 있었다"며 "기사들이 일정한 금액을 출자하고, 운영해서 나온 수익으로 배당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지금 수익보다 조금 더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이어 "자치단체가 택시 면허를 사들이고 재정을 무이자 융자 지원할 수 있다. 법인택시에서 조합으로 바뀌어 수익을 기사한테 다 주는 형태가 되면 기사들도 영원한 직장이라 여길 것이고, 그러면 손님 서비스도 좋아진다"고 덧붙였다.
조합택시는 시내버스 준공영제와 비슷한 개념이다. 그는 "시내버스 준공영제가 되면서 기사들의 처우가 좀 나아진 것으로 안다. 지금은 시내버스 기사를 서로 하려고 할 정도다"며 "시내버스와 택시는 모두 대중교통이다"고 말했다.
그는 '조합택시' 방안을 대통령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이 공약으로 채택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개인택시를 하니까 사납금 부담이 없어 훨씬 낫다"고 말했다.
"이주민도 우리 이웃이다"전수식 전 부시장은 택시기사 말고 요즘 맡고 있는 직책이 하나 더 있다. 이주민들을 돕는 일이다. 외국인 인권보호단체인 경남이주민센터 이사장과 국제이주무역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가 이주민 돕기의 인연을 맺은 것은 2000년 경상남도 경제통상국장으로 있을 때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 이철승 대표를 만나면서부터다. 매달 회비 3만원을 내던 그가 지금은 이사장이 된 것이다.
"이주민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우리와 같다는 시각으로 봐주는 게 필요하다. 근로자든 다문화가정여성이든 우리나라에 올 때는 자기 나라보다 조건이 좋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들이 우리나라에 왔다가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는 성공한 사업가 내지 정치인이 될 수도 있다. 이주민센터가 민간외교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전수식 이사장은 "이주민도 우리 이웃이다. 이웃을 따뜻하게 대해주면 나중에 국익에 도움이 된다"며 "차별이나 폭행, 임금체불 등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소식이 들릴 때마다 안타깝다. 같은 사람으로 대해주어야 한다. 피부색이 달라도 차별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주무역 사업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는 "다문화가정여성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자기 나라에 돌아간 뒤에 연계하는 것이다. 그들이 한국 물품을 사기도 하고 자기 나라 물품을 한국에 팔기도 한다. 먼저 톱밥, 야자매트를 수입하고 있다. 무역업이 처음에는 연결만 하면 될 줄 알았지만 잘 되지 않는다"며 "인맥이 많으니까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창원광역시 홍보 예산을 일자리 만드는 데 써야"창원시는 2010년 옛 창원, 마산, 진해시가 통합해 만들어졌다. 옛 창원에 비해 마산과 진해는 '소외' 되거나 차별을 받는다는 지적이 있다. 그는 통합 후 갈등을 아쉬워했다.
"요즘은 덜한데 통합 뒤 처음에는 '쓸데없이 통합했다'거나 '통합 뒤에 나아진 게 별로 없다'는 말이 많이 나왔다. 3개시를 하나로 합치는데 시민 여론을 반영했다기보다 정치권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던 것이다. 통합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 지금쯤 검증을 다시 해봐야 한다. 인구와 면적만 늘리는 통합은 수긍할 수 없고, 효율성 등 여러 가지 측면을 따져봐야 한다."
그는 '창원광역시' 추진에는 부정적이다. 현재 안상수 창원시장이 '창원광역시' 추진을 하고, 국회에 관련 법률안이 제출되어 있다. 하지만 경남도와 다른 시군이 반대하고, 국회 내 법률안 심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광역시가 되어 자치구(5개)를 설치하면 무슨 의미가 있나. 광역시장과 자치구청장 선거도 해야 한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초자치단체가 인구 100만이 넘으면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30~50만명 정도의 기초자치단체가 가장 효율적이라 본다. 그래야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고 행정관리도 쉽다고 본다."
"지금은 창원광역시 가능성은 별로 없다. 국회 법률안 발의를 해놓았지만 심의가 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시민들한테는 법률안 발의만 하면 되는 것처럼 해놓고 있다. 경남도와 경남도의회에 의견을 물어야 하는데 누가 광역시에 찬성하겠나. 택시를 몰고 다니면 시내 곳곳에 광역시 홍보물이 많다. 온통 '창원광역시' 홍보다. 그런 데 들어가는 돈도 엄청날 것이다. 차라리 그 돈으로 일자리 만드는 데 써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 출마 여부를 물었더니, 그는 "아직 구체적인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야인 생활을 오래 해왔다. 조기 대선 이야기도 있는데, 대선이 끝나고 나면 내년 지방선거 관심이 높아질 것 같은데, 정국 상황 등 여러 가지 생각해서 판단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2010년 창원시장 선거 때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무소속은 힘들더라. 정당 후보가 아니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 이상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며 "정당 선택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 선거에는 정당 공천이 없어야 한다. 정당 공천을 하다 보니 정치가 중앙 종속이다. 광역의원과 기초의원들이 국회의원 머슴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헌법 개정을 한다면 완전한 지방분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방 스스로 입법, 행정, 사법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재정도, 정치도, 사람도 중앙 종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