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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9일. <오마이뉴스>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는 시민기자제라는 독특한 체제로 운영된다는 말에 호기심을 느꼈고, 새벽에 하고픈 말을 기사 형식을 어설프게 흉내 내 써서 올렸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 보니 기사가 덜컥 (구석이긴 했지만) <오마이뉴스> 메인에 걸려있었다. 처음 송고한 글은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대국민 브리핑을 할 때 번번이 "대통령께서는..."이란 말을 쓰며 국민 앞에서 대통령을 높이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국민이 대통령보다 높은 주권자이기에 "대통령은..."이라고 말하는 게 국어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옳다는 팩트를 제시한 글을 쓴 것이다.

물론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다고 '아무' 글이나 기사로 발행해주지는 않는다. 시민기자가 기사를 송고하면 편집부의 상근기자들은 기사 가치가 있는지 검토를 하고 오탈자 등 편집을 거쳐 등급(오름-으뜸-버금-잉걸-실시간 글)을 매긴다. '잉걸' 이상을 받아야만 정식 기사로 인정된다. 나도 기사 형식의 글쓰기 훈련을 전문적으로 받은 적은 없다.

하지만 내 기사의 채택률은 꽤 높은 편이다. 처음 기사를 송고한 후 2년 9개월이 지난 지금. 집계를 해보니 그간 213건의 정식 기사를 썼다. 글자 수 93만5363자, 200자 원고지 4799.3매(빈 줄 제외), 장편소설 5권 분량이다. 단순히 기사 편수로 좋은 기사, 나쁜 기사를 나눌 수는 없지만 그만큼 <오마이뉴스>와 함께한 시간이 많았다.

그리고 결국 최근에 덜컥 작은 트로피 하나를 받아버렸다. 상의 이름은 '2월 22일상'. 2000년 2월 22일 <오마이뉴스> 창간의 정신을 기념하는 기자상이다. 트로피에는 무려 "사회를 변화시키는 등불이 됐다"는 과분한 칭찬까지 쓰여있었다. 이 말이 과연 사실일까.

 <오마이뉴스>로부터 받은 트로피(소정의 상금도 받았다). 옷깃에 달라고 'Ohmynews'라 새긴 뱃지도 줬다. '혹시나'하는 생각에 깨물어봤지만 금은 아니었다. 아쉽다.
 <오마이뉴스>로부터 받은 트로피(소정의 상금도 받았다). 옷깃에 달라고 'Ohmynews'라 새긴 뱃지도 줬다. '혹시나'하는 생각에 깨물어봤지만 금은 아니었다. 아쉽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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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로 활동했던 순간이 늘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독자의 입장과 기자의 입장은 많이 다르다. 후자는 한두 번 기사를 써보는 것만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중요한 포인트는 기사의 분량이 제한적이란 것이다. 기자가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 독자들이 듣고 싶은 말을 전부 만족시킬 수 없다. 이런 상황은 기자로 하여금 중요한 팩트와 그렇지 않은 팩트를 선별하고, 중요한 팩트만 기사에 배열해 스토리로 엮도록 '가치 판단(주관)'을 요구한다. 고로 언론은 기사 완성 단계에 이르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완성품을 내놓을 수 없다. '진보' 언론 따로 있고 '보수' 언론 따로 있는 이유가 뭐겠는가.

언론이 표방하는 객관성? 그건 주로 취재의 초기 단계에 무엇이 팩트고 팩트가 아닌지 판별하는 단계 정도에만 유효한 이야기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팩트를 보여줘도, 자기가 보고 싶은 팩트나 결론이 아니면 기자에게 '객관적이지 않다' '기레기다' '찌라시다' 등의 야유를 보낸다. 예를 들어보자.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기업가 정신을 "불확실성 속에서도 도전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활동"이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또한 기업가 정신을 경영자 마인드와 동일시하면서 노동자와 대립시키는 것은 잘못된 태도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안 전 대표의 생각과 달리 '도전 정신', '창조 능력'은 기업가 정신 그 자체가 아니다. 안 전 대표에게 기업가는 잡스, 주커버그 그리고 V3를 만든 안 전 대표 자신일지 모르지만, 현실의 기업가 중에는 이재용, 박용성 같은 재벌들 그리고 노조를 파괴하고 청년들에게 열정 노동을 강요하는 중소기업 사장들도 많다. 그러므로 '기업가 정신'을 도전 정신이나 창조 능력 그 자체로 정의하고 싶다면 이러한 현실부터 바꿈으로써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순서지, 단어만 산뜻하게 정의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기업' '기업가 정신'이 엄연히 내포하고 있는 온갖 부정적인 찌꺼기만 희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실이다. 그래서 기사에 썼다. 댓글 창에 바로 '문빠(문재인빠)' '기레기' 운운하는 반응이 돌아왔다. 다른 사례도 있다. 내가 쓴 기사는 아니지만, 얼마 전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영입했다가 낙마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을 둘러싼 논란에 관한 기사들을 몇 편 쓴 적이 있다. 전 사령관을 둘러싼 논란은 크게 셋으로 5.18 관련 발언, 무리한 포로극복 훈련으로 인한 부사관 사망 사건, 부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 구속이다. 상근기자들은 팩트에 근거해 보도를 냈고 또 문 전 대표와 전 사령관의 입장도 실었다. 나름 균형을 추구한 것이다.

그런데도 댓글 창에는 <오마이뉴스>를 '조중동'과 '친박'과 비교하고 '쓰레기'라 욕하는 댓글이 달렸다. 뉴스가 아닌 관점을 소비하는 분위기는 언론이 제 기능을 하는 것을 힘들게 만들다. 일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보고 싶은 내용이 아니면, 언론이 의무적으로 보도해야할 내용일지라도 기자를 원망하며 자기가 가장 싫어하는 대상의 이름을 붙여버린다. 이들 식의 기준대로라면 내 정체성은 '문빠(문재인빠)'도 됐다가 '안빠(안철수빠)'도 됐다가 '친박'도 됐다가 '일베'도 됐다가 '메갈'도 됐다가 일관성도 없고 뒤죽박죽이다. 이렇게 사람을 미쳐버리게 만드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다 보면 '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초심을 잃는다.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상처도 남는다. 해답은 뭘까? 결국 대중과 공생할 타협점을 계속 찾는 수밖에 없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누구라도 언론을 활용할 수 있다. <오마이뉴스>는 열린 기회의 장이다. 그러나 너무 큰 확신이나 대중에 대한 기대를 갖지는 말자.

내 트로피에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등불이 됐다"는 말이 써있다. 이 말이 전적으로 사실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 글이 단 한 명의 동료 시민이라도 변화시켰다면 이 말은 진실이다. 기자들에게는 각자의 진실이 있다. 이 글에서는 다소 냉정하게 묘사했지만, 진실 하나만 믿고 인생을 거는 이 치명적인 도박사들의 행진에 합류할 용기만 있다면 기자도 괜찮은 직업 같다.

좋은 기자란 무엇일까

 점의 크기가 클수록 단어의 언급 빈도가 높고, 단어를 잇는 화살표가 굵을수록 출발 단어가 쓰였을 때 도착 단어도 함께 쓰일 확률이 높다.
 점의 크기가 클수록 단어의 언급 빈도가 높고, 단어를 잇는 화살표가 굵을수록 출발 단어가 쓰였을 때 도착 단어도 함께 쓰일 확률이 높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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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자'가 되기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기사 몇 편으로 나를 쉽게 재단하는 말들에 일희일비하며 낙심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차라리 자신이 이제까지 쓴 기사들을 전체적으로 훑어보며 규칙, 일관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필요에 따라 조정하는 게 현실적일 것이다. 내가 이제까지 쓴 기사를 약 6000개의 문단으로 쪼갠 뒤 문단별로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들 사이의 관계를 간단한(?) 의미망으로 분석해봤다.

7시의 파란색 의미 덩어리를 보니 초창기에 대학 구조조정에 관한 기사를 많이 썼던 기억이 난다. 대학 관련 기사는 대중이 보편적이고 중요한 이슈들(가령 대학 구조조정)보다는 특정 대학의 구체적인 이슈들(가령 이른바 '똥군기' 사건들)에 크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보편적인 이슈와 구체적인 이슈를 잘 엮는다면 차별화된 기사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9시 남색, 10시 하늘색 의미 덩어리를 보니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관련 기사도 많이 썼다. 정치면 기사들은 '열린 진보'를 사시로 표방하는 <오마이뉴스>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범위에만 든다면, 웬만하면 발행해주고 조회수도 보통 이상 나오면서 독자 반응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다만 정치면 기사들은 기사 작성 시 더욱 신중해야 한다. 자기가 쓴 글이 정국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5년치 연설문을 수집해 의미망 분석을 한 후 그에게 노력주의, 자기계발론적 성향이 있다는 분석, 예측을 내놓은 적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 그가 귀국해서 청년들에게 '일 없으면 해외봉사라도 가라'는 말을 한다든가, 걸핏하면 '노오력'을 강조하면서 청년층의 반감을 사고 지지율이 깎이는 것을 보고 짜릿했다.

한편 1시의 회색 의미 덩어리는 채식주의에 관한 기사들인데 전문적인 내용을 많이 인용하다보니 망한 사례다. 카드뉴스도 만들어보고 1인칭 돼지 시점에 이입도 해보고 별 시도를 다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이렇게 답이 안 나올 때는 공장식 축산 현장으로 나가 실태를 고발하는 것도 방법인데 너무 탁상공론적인 태도를 취한 게 아닌가 후회가 든다.

3시의 빨간색 의미 덩어리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여성혐오 이슈에 대한 기사들이다. 해당 이슈에 대한 제 입장을 이 글에서 충분히 설명하기는 불가능하고 적절치 않아보인다. 하지만 결국 이런 이슈들이 특정 커뮤니티 또 그 유저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보편적 문제이자 '사람'의 문제를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혐오'와 두 키워드가 화살표로 연결된 것 같다. 결국 중앙의 초록, 보라색 의미덩어리들이 보여주듯 나는 그간 보편적인 문제를 고민했던 시간을 많이 가졌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호소하는 '인정'받고자 하는 어떤 '욕구'에 대해, 그들이 처해있는 '구조'와 '맥락'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나 나는 이 개념들을 너무 추상적으로 다룬 것 같다. 이 단어들은 구체적인 고유명사들과는 풍부한 연결을 갖지 못 했다.

좋은 기자가 되려면 지금보다 탁상공론 대신 현장을 많이 찾는 기자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또한 사람을 많이 만나는 용기를 조금씩 내야할 때인 것 같다. 좋은 기자란 무엇일까? 정답은 없다. 그러나 좋은 기자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기자는 좋은 기자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오마이뉴스#하지율#시민기자#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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