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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줄고 후배가 점점 늘어나는 시기. 결혼해서 아이가 커가는 시기. 내 나이 마흔을 앞둔 상황은 이렇다. 예전엔 선배와 부모의 그늘에서 가르침을 받았다면, 이젠 후배들과 자식에게 가르침을 줘야 할 시기다.

시대는 변했다. 2017년, 예전보다 개인의 사생활, 생각, 입장을 존중하는 시대가 왔다. 그렇다보니 구시대적인 방식을 그대로 답습할 순 없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가르침'의 방식도 바뀌어야한다. 고로 '가르침'이라는 게 예전처럼 '강압적인', '위계서열적인'으로 대표되는 '꼰대'스런 방식보다 '함께', '같이'로 인식되는 '협동'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꼰대 정도를 알아보자
▲ 꼰대 체크리스트 자신의 꼰대 정도를 알아보자
ⓒ 허밍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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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내가 던지는 말 한 마디가 혹여 구시대의 상징인 '꼰대'로 비치진 않을지 여러 번 생각하고 말을 내뱉는다.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다. 뭔가 가르쳐주고 싶은데, 딱히 표현할 방법은 모르겠고, 조급하기까지 하면 나도 모르게 꼰대스런 단어들이 툭 내뱉어진다. 특히 자식 대하는 부모입장에서 꼰대를 피할 방법을 모르겠다.

가끔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줘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땐 "하지마" 하면서 억양이 높아지거나 인상을 찌푸리기까지 한다. 직장에서도 쉽지 않다. 어느 수준에서의 대화가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될지 머릿속에 계속 되뇌지만 그 해답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단지 꼰대로만 보이지 말자고 계속 각인시킬 뿐이다.

꼰대가 돼가는 나이다. 내 주변 친구들, 동료들을 보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꼰대'가 되어 불필요한 오지랖을 시연한다. 자신에게 물어본 것도 아닌데 툭 끼어들어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고' 혼자 상황 정리한다. 마치 판사가 된 것처럼 판사봉까지 두드린다. 혹은 개개인의 상황이 다 다르다는 걸 깡그리 무시하고 "누구나 다 똑같아"는 말로 듣는 사람의 힘을 쫙 빼놓는다.

해답을 원한 게 아니라 공감을 원한 것인데, 그런 답변을 들으면 담부턴 말하기 싫어진다. 위계서열, 이건 말도 못하다. '선후배', '형(누나)동생', '직급', '입사순' 이런 잣대들을 들이대며 꼰대짓을 하면 더 이상 말 붙이기도 싫다.

아마 이 글을 보는 많은 분들이 크게 공감할 것이다. 이런 저런 상황들을 보며 '꼰대'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무렵,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도 재밌다. <꼰대 김철수>.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철수와 영희를 따온 모양이다.

카피라이터 정철씨의 신간이다
▲ <꼰대 김철수> 카피라이터 정철씨의 신간이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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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카피라이터로 유명한 '정철'씨의 신간이다. <내 머리 사용법>, <카피책> 등을 펴냈으며, 카피라이터답게 눈에 쏙쏙 들어오는 쉬운 어휘를 구사하는 게 특징이다. 센스 넘치는 표현, 재치와 해학이 이 책의 주류를 이룬다. 그는 이 책의 서두에서 꼰대가 되어가는 자신에게 쓰는 처방전이라며, 꼰대를 핑계로 우리의 생각과 태도, 삶을 대하는 자세를 돌아보는 책으로 많은 이들에게 활용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책의 구성은 크게 5부로 나뉘어 있다. 각 챕터에는 상황에 맞는 꼰대 유형과 해답을 제시했다. 그 중 '꼰대어 사전' 챕터에서는 '꼰대'들이 주로 쓰는 단어를 열거하여 흥미를 돋우었다. 그리고 이 책의 백미는 가장 뒷면의 '꼰대 체크리스트'이다. 독자님들도 체크리스트를 보고 꼰대 정도를 확인해보시기 바란다. 참고로 필자는 두 개만 해당된다.

"남이라는 글자엔 네모난 창이 있다. 받침으로 붙어 있다. 우리는 이 창을 통해 남을 구석구석 들여다본다. 그래서 자신 있게 남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나엔 받침이 없다. 네모난 창이 없다. 창이 없어 내가 나를 들여다볼 수 없다. 내가 나를 들여다 볼 수 없으니 내가 나를 비판하지도 비난하지도 비하하지도 않는다. 불공정이다. 불공평하다.

하루 한 번은 남에 붙은 창을 떼어 나에게 붙여야 한다. 그 순간은 남은 나가 되고 나는 남이 된다. 나는 창을 통해 내 부끄러운 모습을 들여다본다. 얼굴 빨개진다. 더는 쉽게 남의 허물을 비판하고 비난하고 비하할 수 없다. 남과 나에게 같은 잣대를 들이대려면 네모난 창을 수시로 빌려와야 한다. 나를 봐야 한다." - 136p

자신의 허물보다 남의 허물을 더 크게 부각시키는 모습을 언급했다. 남 얘기보다 내 얘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건 자명하다. 이 책의 또 다른 챕터에서는, 남 얘기 하며 꼰대 짓을 하는 사람의 심리를 분석했다. 좁아져가는 내 입지를 지키기 위한 간절한 몸부림, 이 거친 세상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눈물겨운 몸부림으로 표현했다.

"나도 압니다. 나도 내가 싫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나도 내 안에 살고 있는 꼰대를 어쩌지 못합니다. 아니 지금 꼰대를 몸 밖으로 내쫓는다면 그 순간 나는 풀썩 주저앉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모든 자존심 다 뭉개진 나를 마지막 남은 꼰대 DNA가 붙잡아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256p

위의 인용문처럼 자신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 방법으로 꼰대가 되길 택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바라봐달라는 관심종자의 울부짖음으로 봐줘야 하는 걸까. 그렇다 치더라도 누가 나에게 꼰대 짓을 하면 기분 나쁜 건 어쩔 수 없다.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왔음에도 옛 추억을 부여잡고 근근이 자신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이것이 꼰대의 지름길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진정한 꼰대 대마왕은 국민의 위에 군림하며 청년들에게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고 당당히 말하던 그분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 또 한 번 뒤적이면서 다시 읽었다. 눈에 쏙쏙 들어온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꼰대'가 되지 말자는 큰 명제보다, 사람관계에서 응당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표현했다. 직장을 다니고 아이를 키우며 시간과 여유가 없는 가장 바쁜 시기의 나이에 나와 내 주위, 그들과의 관계에 대해 돌아볼 계기가 됐던 책이다. 누군가에게 강압적인 명령조의 말보다,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따뜻한 한마디.

그 말이 비록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 입에서 떨어지지 않더라도, 그걸 떨쳐내고 입 밖으로 던져야 꼰대로 가는 지름길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단지 꼰대냐 아니냐를 떠나 서로에 대한 존중과 예의, 이것이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책을 또래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꼰대가 되지 말고, 서로 존중하며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면서 발전해나가자고.

덧붙이는 글 | 꼰대 김철수. 펴낸곳: (주)백도씨, 294p, 13,800원



꼰대 김철수 - 사람을 찾습니다

정철 지음, 이소정 그림, 허밍버드(2017)


태그:##꼰대 김철수, ##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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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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