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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시 위주의 교육이 낳은 능력 만능주의는 같은 대학,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받는 신입생들도 갈라 놓는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낳은 능력 만능주의는 같은 대학,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받는 신입생들도 갈라 놓는다. ⓒ pixabay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

대학을 줄 세우는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이제 대학 안에서도 서열화가 뿌리 깊게 박혔다. 취업률이 높은 학과와 그렇지 않은 학과, 대학 본부에서 지원해주는 학과와 늘 통폐합 위기에 시달리는 학과로 학생들의 '클래스'는 구분된다. 언제부턴가 '클래스'는 입학전형, 캠퍼스별로도 나누어졌다. '수시충', '기균충', '지균충', '분캠충'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쓰이는 현실이다.

성적, 학과, 캠퍼스를 기준으로 자신보다 낮은 성과를 이룬 학생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것은 권리가 돼 버렸다. '나는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너는 나보다 노력 안 했잖아. 억울하면 너도 열심히 하든가.'

무시와 조롱의 시선에서 신입생들도 자유롭지 않다. 학교에 다닌 지 1주일도 채 안 됐지만 입학전형, 캠퍼스가 다르다는 이유로 상처를 입어야 하는 신입생들이 있다.   

나는 '기균충'인가요

단국대에 저소득층 배려 전형인 기회균등전형으로 입학한 신입생 C씨(20)는 '기균충'(기회균등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을 비하하는 속어)이라는 말을 들었다. 입학식 날 만난 선배, 동기들과 함께 있는데 갑자기 선배 한 명이 킥킥 웃었다. 선배는 휴대전화로 SNS를 둘러보고 있었다.

선배는 기회균등전형으로 들어온 학생을 '기균충'으로 조롱하는 글을 보여줬다. 그는 댓글까지 달았다. '기균 중에 공부도 열심히 안 했으면서 전형 이용해서 학교 잘 갔으면 진짜 별로다'. 몇몇 동기들이 호응했지만 C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집안 형편이 안 좋아 학원 하나 못 다니는 상황에서도 열심히 공부했어요. 물론 제 수능·내신 성적이 기회균등전형이 아닌 애들보단 낮겠죠. 그래도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제가 '기균충'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C씨는 고민에 빠졌다. 학기 초에는 신입생들끼리 서로 무슨 전형으로 입학했는지 묻는 일이 심심치 않게 있다. 그럴 때 C씨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사실대로 말했다 혹여 자신을 공부도 못하면서 가난을 팔아 대학 왔다고 여길 시선들이 있을지도 몰라 두렵다.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새학년이 시작된 2일 오전 서울대학교 기숙사에서 한 학생이 짐을 옮기고 있다. 2017.3.2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새학년이 시작된 2일 오전 서울대학교 기숙사에서 한 학생이 짐을 옮기고 있다. 2017.3.2 ⓒ 연합뉴스

"재외국민전형이 뭘 알겠어"

각 대학에서는 글로벌화를 명목으로 '재외국민특별전형'을 둬 해외에서 일정 기간 거주한 학생들만을 모집하고 있다. 재외국민전형에 신청한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학교 성적의 영향을 적게 받고 대신 다양한 해외경험과 언어능력을 위주로 평가받는다.

이로 인해 재외국민전형에 대해선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부모에게 외국에 나가 살 여유가 있는지에 따라 대학이 결정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재외국민전형을 노려 고소득층들이 일부러 외국행을 감행하는 일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렇듯 계층적 불평등을 내포한 재외국민전형의 특성으로 인해 재외국민전형 학생을 보는 시선도 좋지만 않다. 올해 서울권 모 대학에 입학한 A씨(20)는 신입생 OT에서 재외국민전형으로 들어왔다는 이유로 비아냥을 들었다. 삼삼오오 학생들이 모여 대학 오기 위해 공부하느라 서로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자리였다.

"저도 '다들 열심히 해서 들어왔으니 잘 지내보자'라고 말했는데 한 친구가 저한테 '네가 뭘 알겠니'라는 투로 말하더라고요."

그때 A씨는 처음으로 자신이 재외국민전형이라는 사실을 '함부로' 드러내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과 수업을 들을 때도 비아냥은 이어졌다. 수학 관련 교양강의를 듣게 된 A씨는 강의계획에서 기재돼 있는 수학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고 친구인 B씨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이후 A씨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B가 몇몇 친구들이 모여 있는 단체 카톡방에서 저를 두고 '수능 준비도 안 했으니 그렇게 쉬운 것도 모른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들었어요."

세종캠은 고려대가 아니라고?

같은 대학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더라도 본캠이냐 분캠이냐에 따라 서열이 극명하게 갈리는 경우도 있다. 혹여 '본·분교 통합'이라는 소식이 들리기라도 하면 분캠 학생들은 노력 없이 이익을 취하려는 '무임 승차자'로 취급받기도 한다. 2016년 12월을 기준으로 분교를 운영 중인 대학은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동국대, 건국대, 홍익대, 상명대 등이 있다.

올해 고려대 세종캠퍼스로 입학한 D씨(21)는 페이스북의 '고려대 대나무숲'에서 '세종캠은 고려대가 아니다'라는 게시물을 봤다. 2016년에 고려대에는 '본·분교 통합 해프닝'이 발생했다. 고려대 세종캠 총학생회는 고려대가 본·분교 통합을 추진한다며 세종캠의 분교 지위를 없애달라고 요구했다. '세종캠 학생들이 안암캠으로 통합돼 같은 졸업장을 받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고 세종캠과 안안캠 학생 사이의 감정싸움이 벌어졌다.

이후 고려대 대학본부는 본·본교 통합은 없다며 해명했다. 본·분교가 통합한다는 것은 세종캠 총학의 오해였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이미 세종캠 학생들은 공짜로 안암캠 졸업장을 얻으려 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었다. SNS에는 '세종캠 이름을 고려대 말고 다른 이름으로 바꿔라', '세종캠은 양심도 없나', '어디 같은 급이 되려고 하냐' 등의 글이 올라왔다. 

D씨는 안암캠 학생과 '동급 대우'를 받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토로했다. 또한 안암캠과 세종캠 사이의 '입결' 차이는 크고 안암캠 학생들이 더 높은 사회적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안다.

"그래도 고려대가 아니라고 말하는 건 속상하네요. 누가 저한테 대학 어디냐고 물어보면 저는 '조려대'(고려대 세종캠을 비하하는 속어)라고 해야 하나요. 학년이 올라가면 안암캠에서 수업을 듣기도 한다는데 그때 세종캠 학생이라는 게 알려지면 저를 어떻게 볼지도 걱정이에요."

D씨를 포함한 신입생들은 아직 캠퍼스 내 건물들이 어디 있는지, 근처 식당 중에는 어느 곳이 맛있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히 알게 됐다. 대학 합격의 기쁨을 안겨 줬던 입학전형과 캠퍼스가 어느새 자신의 '낙인'이 돼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그 낙인은 이들을 언제까지 쫓아다닐까.  


#대학교#차별#신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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