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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요즘만큼 헌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많았던 적은 없었다. 무너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일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다시 세우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헌법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의 근본임에도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던 헌법, 그 헌법을 국민들과 함께 읽어 보고자 한다. - 기자 말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에 있는 이화여자대학교는 여성만 입학할 수 있다는 원칙으로 유명하다.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에 있는 이화여자대학교는 여성만 입학할 수 있다는 원칙으로 유명하다. ⓒ 김대홍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에 위치한 이화여자대학교는 여성만 입학할 수 있다는 원칙으로 유명하다. 1886년 미국 북감리교 여선교부선교사 스크랜튼(M. F. Scranton)이 서울 정동의 자택에서 한 명의 학생을 데리고 교육한 것에서 시작된 이래 이 원칙은 변함이 유지되고 있다.

그간 여성만 입학할 수 있다는 원칙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다른 여학교들이 속속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면서 여대의 존재 자체에 대한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혹자는 여학생만 받겠다는 발상 자체가 오히려 전근대적이라며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화여대는 한국사회에서 여학생만으로 이루어진 대학이 아직까지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며 꿋꿋이 버텨왔다. 많은 우여곡절 중 으뜸은 2010년 헌법소원일 것이다.

이대 로스쿨 전형, 남성 평등권 침해했다며 헌법소원

로스쿨 입학을 준비하던 엄아무개씨는 각 학교의 입학전형을 살피던 중 이화여대의 입학전형을 보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남성이었던 그는 이화여대 로스쿨에 지원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로스쿨의 정원은 100명이었는데, 매년 100명의 여성만이 이화여대 로스쿨에 입학할 수 있고 그만큼 남성의 자리가 줄어든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다. 엄모씨는 이화여대 로스쿨 입학전형이 남성인 자신의 평등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엄아무개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평등권의 침해 요소는 있지만 전체 로스쿨의 정원은 2000명임에 반해 이화여대 로스쿨의 정원은 100명으로 그 비율이 매우 낮고, 엄아무개씨는 이화여자대학 외에도 나머지 1900명의 정원에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기본권의 침해 정도가 매우 미미(微微)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헌재 2013. 05. 30. 2009헌마514). 평등권을 침해받기는 했지만 참을 만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평등은 절대적 평등이 아닌 상대적 평등이다. 일체의 차별적 대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근거가 있는 차별은 가능하다. 합리적 근거 중 대표적인 것이 '차이'다. 서로 다른 이들을 모두 동일하게 대하는 것은 그들의 차이를 무시한 행위로 오히려 불평등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눈이 나쁜 사람이 앞자리에 앉는 것은 눈이 좋은 사람에게는 차별이겠지만 문제되지 않는다. 모든 교실에 앞자리만 존재할 수 있도록 교실과 교사의 수를 늘리면 차별적 상황 자체가 없어지겠지만 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눈이 나쁜 사람을 앞자리에 배치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가 있는 차별이다.

여성의 열악한 지위, 기회 평등만으로 해결 안 된다

차별을 정당화시키는 또 다른 합리적 근거는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다. 현재의 불평등 상황을 회복하기 위한 일시적 불평등 조치는 불평등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는 "현존하는 차별을 없애기 위하여 특정한 사람(특정한 사람들의 집단을 포함)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행위와 이를 내용으로 하는 법령의 제정·개정 및 정책의 수립·집행은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보지 아니한다"고 하여 적극적 우대조치를 규정하고 있다.

미국 대학의 흑인 쿼터제나 한국의 고위공무원 여성할당제는 적극적 우대조치의 대표적 사례다. 미국에서 흑인을 비롯한 소수인종은 일반적으로 백인에 비해 사회·경제적으로 열등한 지위에 놓여 있다. 소수인종의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열악한 환경에서 자랄 수밖에 없고 당연히 대학입시에서도 백인에 비해 낮은 점수를 받고는 한다.

한국에서는 많은 수의 여성들이 공직에 진출하지만 고위 공무원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낮다. 힘의 균형이 남성에게 기울어진 공무원 조직에서 여성이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흑인이나 여성의 열악한 지위는 기회의 평등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기회를 형성하는, 또는 기회를 평가하는 단계에서부터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존하는 불평등 자체를 인위적으로 개선하는 적극적 조치가 필요한 것이다. 대학 입학생 중 일정비율을 흑인에게, 고위 공무원 중 일정 비율을 여성에게 강제로 할당해야 그나마 불평등의 개선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적극적 우대조치에 항상 따라다니는 '역차별'

적극적 우대조치에 대해 항상 따라다니는 반론은 '역차별'이다. 약자에 대한 지원이 결과적으로 강자에 대한 차별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대학입시에서 흑인에 대한 쿼터로 합격할 수 있는 백인이 떨어지거나 고위공무원에 대한 여성할당으로 능력 있는 남성 공무원이 승진에서 탈락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평등은 결과만 가지고 판단할 수 없다. 백인과 남성공무원이 그간 누려온 우위가 입학시험 성적과 공무원으로서의 능력이나 평가에 반영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흑인과 여성이 받고 있는 차별적 상황의 해소에 대한 필요가 그들의 일시적 불평등에 의한 손해보다 크다고 할 수도 있다. 역차별은 평등을 실현함에 있어 주의해야할 부분이지만 적극적 우대조치를 반대할 명분은 되지 못한다.

엄격한 평등을 추구했다면 이화여대는 남성의 입학을 허용하지 않는 한 로스쿨을 유치할 수 없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교육부장관이 이화여자대학교에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인가를 한 것은 대학의 교육역량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에 따른 것이지 결코 여성 우대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문제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화여자대학교의 로스쿨 유치를 여성우대로 보아도 문제될 것은 없다. 여성만 입학할 수 있음에도 이화여대가 로스쿨을 유치할 수 있었던 것, 그 자체를 적극적 우대조치로 보아도 되기 때문이다. 매년 남성에 못지않은 비율의 여성 법조인이 배출되고 있지만 대법관 12명 중 여성은 2명, 헌법재판관(현재 1명 공석) 9명 중 여성은 1명에 그치고 있다.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외 고위 법관 및 검사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이처럼 여성의 지위가 현저히 낮은 법조계의 현실에서 25개 로스쿨 중 1곳, 2000명의 로스쿨생 중 100명을 여성에게만 부여한 것을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 주장하기는 어렵다.

헌법 제11조 제1항을 다시 읽어보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이는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는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닌, 국가에게 평등을 추구할 의무를 부여한 것이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불평등한 상황을 개선할 의무를 부여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평등#로스쿨#적극적 우대조치#이화여대#여성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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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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