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WOW)"
자고 나니 스타가 되어 있더라는 기분이 이런 걸까 하는 표정이었다. 로버트 켈리 교수가 15일 오후 부산대학교 본관 기자회견장에 나타나자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졌다. 이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가르치는 켈리 교수와 그와 가족들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켈리 교수는 재치있게 자신을 '유튜브(YOUTUBE) 스타'라고 소개했다.
한국의 탄핵 선고는 미국 출신의 45세 정치학자와 그의 한국인 부인, 두 명의 어린 자녀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켈리 교수는 탄핵이 인용되던 10일 부산의 자택에서 영국의 공영방송 BBC와 화상통화로 한국의 '심각한' 정치 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그때 귀여운 불청객이 켈리 교수가 인터뷰하던 서재로 난입(?)했고, 전 세계 시청자들 앞에서 귀여운 율동을 선보였다.
문을 미처 잠그지 못한 게 실수였다. 당황한 켈리 교수는 말을 더듬기 시작했고, 뒤늦게 희대의 방송사고를 알아챈 부인이 달려와 아이들을 낚아채 사라졌다. 이날 아이는 아빠가 낮에 유치원을 찾아온 일에 한껏 신이 난 상황이었다고 했다.
전 세계 누리꾼들이 이 순간을 가만두고 볼 리 없었다. 켈리 교수의 인터뷰 영상을 15일 기준 1억 명 이상이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찾아봤고, 수많은 패러디까지 등장했다.
심지어 한국인 부인을 '보모'로 오해한 해외 누리꾼들이 그녀를 '닌자 보모'(Ninja nanny)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는 동양인을 바라보는 차별적 시선이 아니냐는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다.
켈리 교수는 쏟아지는 각국 미디어의 요청을 피해오다 이날 공개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장을 찾은 50여 명의 취재진 중에는 BBC, AFP, 로이터, ABC 등 외신도 섞여 있었다. BBC는 자사가 불러일으킨 이 반향을 소개하기 위해 TV 생중계로 현장을 연결했다.
"일로 유명해지고 싶다... 탄핵, 감명 받았다"이런 상황을 알 리 없는 4살배기 딸 메리언은 막대 사탕을 물고 있던 중 잠시 자리를 비켜달라는 아빠의 요청에 "싫어"라고 단호히 말했고, 심경을 묻는 국내외 취재진 앞에서 혀를 삐쭉 내민 채 '메롱'을 선보였다.
누나에게 지지 않으려는 듯 8개월 된 제임스는 인터뷰 중인 아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단언컨대 기자 생활을 하며 만나본 취재원 중 가장 힘든 대상들이었다.
켈리 교수는 자신의 가정이 지금 보이는 것처럼 그저 평범한 가정임을 강조했다. 그는 "저희는 그냥 일반적인 가정이고, 두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다"라면서 "영상으로 큰 웃음을 준 것으로 행복하게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론 세간의 관심은 기쁨인 동시에 부담이기도 했다. 특히 세간에 아이들 얼굴이 알려지는 건 부모로서는 부담이었다. 켈리 교수는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영상이 비친 것이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라 염려가 된다"고 토로했다.
초기 자신을 보모로 오해한 일부 누리꾼들에 대해 부인 정아씨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고 세계적으로 다문화 가정이 많으니 조금씩 바뀌면 좋겠다"면서 "이런 계기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바뀌지 않겠나 생각한다"는 뜻을 전했다.
켈리 교수는 또 다른 바람을 전했다. 그는 "이런 일로 유명해지는 것보다도 제 일로 유명해지고 싶다"고 했다.
이날 그는 정치학자로서 들려주고자 했던 이야기를 전했다. 켈리 교수는 "탄핵 과정은 헌법을 지키고 폭력사태와 군 개입도 없었고 아랍의 봄과는 대조적으로 평화적이었다"면서 "교과서적으로 좋은 탄핵 절차였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수백만 명이 모였음에도 다친 사람은 탄핵 마지막 날 박 전 대통령 지지자 몇 명이었고 4~6월간은 평화로운 시위였다"면서 "감명받았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켈리 교수는 2008년 부산대에 부임해 학생들에게 미국정치론과 미국외교정책론, 국제관계의 최근 이슈 등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