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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택 해인 성균이형 아침부터 비내리는 순례길
▲ 날씨 : 비 준택 해인 성균이형 아침부터 비내리는 순례길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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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반

애기가 처음 걸을 때 첫걸음, 처음으로 학교에 들어갈 때 첫 학교, 첫 여행지, 첫 직장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키스 등 '처음'이라는 말은 새로움과 기대를 주며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할 만큼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만큼 처음은 중요해서 첫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다.

800km 이르는 순례길도 처음 떠올릴 때는 엄청 멀게만 느껴지고 언제 목적지에 다다를지 내가 과연 이 길을 다 걸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긴 길을 걷는 동안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걸을 수 있을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할지 날씨는 괜찮을지 걱정도 들기 마련이다. 그렇게 걷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걱정도 단순한 우려였을 뿐이었다. 할 수 있다는 마음과 함께 막상 걷기 시작하니 벌써 150km 정도를 아무 탈 없이 걸었다. 오히려 좋은 사람들과 만나 즐겁게 걸었다. 아직 긴 길이 남아있지만 지금처럼만 4주 정도 더 걸으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물론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해지거나 건강에 이상이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처음 마음 가지고 걷는다면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날씨가 좋지 않다
▲ 산티아고순례길 날씨가 좋지 않다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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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물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다른 나라에서 800km를 걷는 것은 마냥 쉽지 많은 않았다. 익숙한 일상이 아니고 문화와 언어가 다른 나라에서 여행은 여러 가지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해지거나 부모님이나 친구가 보고 싶거나 같이 걷던 이들과의 헤어짐 또는 다리가 아픈 것들은 참아내거나 치료할 수 있지만 뜻밖의 사고가 일어나거나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조절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날씨는 사람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태양의 나라' 스페인을 생각해보면 무더운 날씨가 떠오르고 3월 초면 따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래도 추위는 옷가지를 겹겹이 입어 이겨낼 수 있지만 비가 내리면 어쩔 수 없이 빗 속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가장 같이 걷기 싫은 이와 함께 걸음을 시작했다. 바로 '비'

정말 만나기 싫은 친군데 비가 많이 오면 우선 걸음이 불편하다. 순례길 대부분 길은 산길이 많은데 바닥이 젖게 되면 질퍽질퍽해지고 돌이 있는 곳은 미끄러워 넘어지기도 쉽다. 또한 온도도 내려가 몸이 약해져 감기에 걸리거나 몸살이 나기도 쉽다. 신발 속으로 물이 들어가 양말이 다 젖을 때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느낀다.

정말 찝찝하다. 처음에는 물 웅덩이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다가 비가 점점 몰아치기 시작하면 마음을 가라 앉히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어차피 젖었으니 더 젖어도 변하는 건 없으니 그냥 걷자...

그래도 걷기 시작한 지 조금 시간이 지난 다음에 비가 내리면 익숙해질 때도 되어서 괜찮다. 하지만 알베르게를 나서기 위해 문을 열었는데 비가 내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최악이다. 우리 몸은 차량의 엔진과 같다. 바로 시동을 켜고 달려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잠깐 동안의 예열이 필요하다. 걷는 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이미 몸에 열이 생겼고 비에 서서히 적응을 하기 시작하는데 비해 아침부터 걷기도 전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몸이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로 감기에 걸리기 딱 좋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색다른 언어와 문화를 접하고 즐거운 일도 많이 생기지만 또 이렇게 예상치 못하는 장애물들을 가끔 만나곤 한다. 인생도 이와 같지 아니한가?~ 하루하루 살다 보면 즐거운 일들도 있지만 또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나곤 한다.

휴식 시간
▲ 비가 잠시 그쳤을 때 휴식 시간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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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는 걷는다

오늘 하루의 시작부터 예상치 못한 비와 함께 시작하지만 우리는 또 한 걸음 한 걸음 야고보 대성당이 있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걸음을 재촉한다. 날이 좋은 날도 좋지 않은 날도 적당한 날도 하루하루 목적지를 향해 또 걷고 또 걷는다.

이런 날이면 나도 모르게 버스나 기차를 타고 비 오는 장소를 피하고 싶지만 길을 온전히 내 발로 걷겠다는 약속을 깨기 싫어 빗속을 걷는다. 그리고 옆에 함께 걷는 이들이 있어 정말 감사하고 다행이었다. 나 혼자서 그저 빗속을 걸었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지만 비에 젖은 무거운 몸이 이들 덕분에 마음은 가벼워졌다.

산을 넘고 또 산을 넘다가 옆에 보이는 산을 보면 또 넘어야 할 '장애물'인가 놀란다. 하지만 우리가 걷고 넘어야 할 산이 아니라 그저 지나칠 때면 안도의 한숨을 쉰다. 빗소리는 듣기 좋으나 비를 맞는 건 싫고 설산은 보기에 아름답지만 그 산을 걷고 싶지는 않다.

장애물도 이와 같을까?~ 장애물을 만났을 때는 어떻게 넘을지 걱정부터 들고 그 걱정 때문에 안절부절못하지만 넘고 나서 보면 그 장애물이 앞으로의 길에 거름이 되는 것처럼

스페인 안달루시아 자치시-와인으로 유명하다
▲ 리오하 스페인 안달루시아 자치시-와인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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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와인 생산지, 리오하 

유쾌한 아침은 아니었지만 리오하에 들어갈 때쯤 비가 그쳤다. 신발은 비에 젖어서 발까지 축축해졌지만 같이 걸은 친구들이 있어서 즐거웠다. 비를 만나면 또 도망가지 않고 정면으로 걸어나가겠지만 당연히 만나기 싫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걷기 시작한 지 8시간이 지나자 오늘의 목적지인 로그로뇨가 보이기 시작했고 도시로 가는 길에는 포도나무밭이 펼쳐져 있었다. 아쉽게도 아직 잎이 파릇파릇하게 바람에 날리고 탐스러운 포도가 열릴 시기는 아니라 앙상한 나뭇가지 밖에 볼 수 없었다.

순례자들이 가장 많고 생명이 가장 강한 여름에는 푸른 잎과 함께 포도 냄새가 순례자들을 유혹하는데 목이 마른 순례자들이 포도를 따 먹는다고도 한다. 듣은 바로는 많이 서리하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는 순례자들이 포도를 먹게 내버려둔다고 한다.

포도밭만 보더라도 이곳이 포도로 유명한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리오하 지역은 스페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포도주 생산지이다. 에브로 강의 지류를 부르는 Rio Oja 오하 강이라는 의미에서 리오하라고 불리게 됐으며 에브로 강 양쪽으로는 길이 120km,  넓이 50km 다다르는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리오하의 레드와인은 스페인의 보르도 와인이라고 불릴정도로 명성이 높음
▲ 리오하 리오하의 레드와인은 스페인의 보르도 와인이라고 불릴정도로 명성이 높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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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박물관, Logrono

오늘의 목적지인 로그로뇨에 도착해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샤워를 했다. 비를 맞으며 힘든 하루를 보내서인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니 온 몸이 나른해지고 편안해졌다. 로그로뇨의 날씨는 아직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맑고 깨끗했다.

다들 샤워를 마치고 도시를 구경하고 저녁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사기 위해 다 같이 마실을 나왔다. 우선은 목적지 없이 그냥 걷다 보니 와인박물관이 보였다. 역시나 와인으로 유명한 지역답게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와인을 직접 마시게 꾸며놓고 판매도 하고 있었다.

밖에서 보니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바로 자주 마주치고 밥도 먹었던 독일 친구 플로르와 미국에서 온 카일이 먼저 도착해서 와인박물관에서 다른 순례자와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준택 : Hey~ 플로르 어때?~언제 도착했어?~
플로르 : 한 삼십 분 전에 도착했어 몸은 어때?~
종원 : 우리 괜찮아 오늘 어디에서 묵어?~
카일 : 우리 공립 알베르게에 있어
준택 : 그러면 이따 알베르게에서 저녁 같이 먹을래?~ 내가 한국음식 맛있게 해줄게

와인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에서 맛보지 않을 수 있을까?~우리는 와인 한 잔 하면서 지친 몸을 달래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오늘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우리 중에 특히 준택이와 종원이가 요리를 잘하는데 오늘은 비를 많이 맞아서 몸도 춥고 힘든 날을 보내 푸짐하게 차려 먹기로 했다. 오늘은 어떤 요리를 먹을 수 있을지 궁금해 준택이에게 물어봤다.

충만 : 오늘 저녁은 뭐 만들 거야?~
준택 : 닭 한 마리 어때요?~ 닭 사다가 삼계탕 해 먹으면 맛있을 것 같은데
충만 : 우와 삼계탕도 가능해?~ 스페인에서?!!!~ 우리 진짜 삼계탕 먹어?

인구 약 15만명 고대성곽도시
▲ Logrono 인구 약 15만명 고대성곽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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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기

내가 가장 순례길에서 좋아하는 시간은 바로 도착해서 장 보러 가는 때이다. 우리는 플로르, 카일에게 숙소에서 이따 만나자고 이야기하고 장을 보러 갔다. 과연 삼계탕에 필요한 재료가 있을까?~ 정말 뜨거운 국물을 먹을 수 있을까?~ 초미의 관심사였다.

스페인에도 편의점이 있기는 하지만 거의 보기는 힘들고 도시나 마을마다 대형마트나 개인이 운영하는 상점이 있기는 하다. 대부분 식료품 가게는 9시쯤 문을 닫고 늦어야 9시 30분~10시쯤이면 모두 닫는다. 대형마트로는 까르푸, 디아 등이 있는데 순례길에 필요한 물품 정도는 다 있다. 하지만 작은 마을에는 간단하게 먹거리 정도만 있다.

이날은 운이 참 좋게도 로그로뇨가 목적지라 다행이었다. 우리는 마트에서 두리번두리번거리다가 아주 큰 닭을 찾았다. 스페인어를 잘하는 우현이가 점원 보고 닭을 손질해 달라고 말하고 우리는 양파, 마늘 등 요리에 필요한 재료와 와인과 음료수를 찾았다. 닭을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진짜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점원 : 무엇을 찾으시나요?~
우현 : 닭 4마리 손질하셔서 주세요

스페인에서 삼계탕을 먹은 날
▲ 삼계탕 스페인에서 삼계탕을 먹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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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저녁식사, 닭 한 마리

외국인 순례자들을 사로잡은 한국의 맛, 삼계탕

처음 순례길을 걸을 때 생각은 돈을 아끼기 위해 마트에서 인스턴트 음식을 먹거나 빵을 사 먹으려고 했었는데 생각과 정반대였다. 매일 음식을 요리하기는 만들기도 힘들고 치우는 것도 번거로워서 대충 먹으려고 생각했고 이러다 보면 살이 많이 빠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요리를 좋아하는 동생들 덕분에 하루 종일 걷고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 행복했다.

주로 파스타를 만들거나 쌀 밥을 지어먹곤 했는데 그래도 삼계탕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요리를 잘하는 준택이와 종원이가 메인 요리를 준비하고 나와 성균 이형, 우현이 해인이는 테이블을 정리하고 잔심부름을 도왔다.

하루 종일 걷고 저녁에 함께 먹는 저녁식사가 항상 즐거웠지만 오늘만큼은 더욱 기대가 됐다. 8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30km를 넘게 걸었고 아침에는 홀딱 비에 젖어서 체력적으로도 많이 지친 상태였다. 삼계탕이 준비되는 동안 일본인 친구 요코는 샐러드를 만들었고 다들 메인 요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준택 : 자, 코리안 치킨 수프 나왔습니다!~
카일 플로르 : 오예!~ 어떻게 먹는 거야?~
종원 : 접시에 덜어서 국물은 마시고 고기는 포크로 뜯어먹거나 손으로 들고 먹으면 돼

비록 대추나 인삼 대추를 넣어서 오랜 시간 동안 끓여낸 삼계탕은 아니었지만 내 생에 가장 맛있는 삼계탕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비에 젖은 무거워진 몸이 사르르 녹아 가벼워지는 맛이랄까?~ 스페인에서 삼계탕을 이렇게 만들어 먹을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했다. 준택이와 종원이 요리실력이야 으뜸이지만 힘든 하루를 보내서인지 이 맛과 분위기 함께 먹은 사람들은 오래오래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닭이야 흔한 음식이지만 조리법이 다르기 때문에 외국인 친구들이 잘 먹을지 걱정이었지만 단지 기우였다. 종원이가 국자로 닭고기와 함께 국물을 떠서 외국인 친구들에게 건네줬고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먹기가 무섭게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우고 스스로 국자를 이용해 국물을 퍼가기 시작했다. 외국인 친구들이 맛있게 잘 먹는 모습을 보니까 괜시리 내가 다 뿌듯했다.

참 힘든 하루였지만 맛있는 음식으로 에너지를 채웠으니 내일 또 힘차게 걸어볼까?!~

우리는 이 날 삼계탕을 잊지 못한다
▲ 로그로뇨에서의 저녁식사 우리는 이 날 삼계탕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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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많이 맞았지만 기억에 행복하게 남은 날
▲ Los Arcos -> Logrono 비는 많이 맞았지만 기억에 행복하게 남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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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리오하의 와인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스페인의 '보르도 와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꼭 맛보시기를 추천한다



태그:#산티아고, #순례길, #스페인, #헌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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