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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칭 '교통 오타쿠',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가 연재합니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그런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 - 기자 말

 지난 2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르 코르뷔지에 전.
지난 2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르 코르뷔지에 전. ⓒ 박장식

"주택은 인간이 살기 위한 기계이다" - 르 코르뷔지에의 가장 잘 알려진 명언

지난 26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스위스/프랑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에 대한 전시가 열렸다. 르 코르뷔지에의 도시계획 법칙에 따라 깔린 커다란 도로에, 르 코르뷔지에가 처음 제안한 기둥과 바닥을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낸 아파트가 즐비한 서울 강남, 서초가 바라보이는 위치에서 전시를 하고 있으니, 그가 만일 지금까지 살아 이 전시를 보러 서울로 왔다면 쾌재를 부르지 않았을까.

르 코르뷔지에의 앞에는 언제나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는 찬사가 붙는다. 대한민국에서 지어지는 거의 모든 건물이 그가 고안한 '현대 건축의 5원칙'을 상당수 따르고 있기 때문. 옥상 정원을 만들고, 기둥만으로 이루어진 열린 평면을 구축하고, 자유로운 내부설계, 가로로 긴 유리로 이루어진 외벽을 만들고, 1층에는 기둥만으로 만든 빈 땅을 만들어 뭇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그 원칙 말이다.

죽는 그 날까지 자신이 화가였으면 하는 아쉬움에 사로잡혔던 그이지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건물만 17개 건물에 달하는 등 건축에 가장 많은 힘을 쏟았다. 또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건축한 건물에 어울리는 도시와 교통을 계획하는 데 가장 많은 힘을 쏟았다. 아무리 멋진 '모더니즘' 건물도 무질서한 당시 유럽의 도시에 그대로 세워지면 홀로 튈 수밖에 없기 때문.

르 코르뷔지에를 단순한 화가이자 건축가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 우리가 흔히들 '여의도와 강남에 생겨난, 미국식 도시와 교통체계'라고 하는 그것을 만든, 그의 또 다른 이야기에 주목하려 한다. '도시계획자'이자, '교통공학가'로서 더욱 더 우리의 삶에 가까이 다가오는 그에 대해 조금이나마 깊이 들어가본다.

파리 계획안을 낸 그, 현대 도시의 아버지가 되었다 

 현재의 프랑스 파리
현재의 프랑스 파리 ⓒ pixabay

"무엇이 파리인가?" - 파리 계획안을 무시하는 이들에게 던진 르 코르뷔지에의 답

르 코르뷔지에는 당시로서는 아무도 생각지 않은 혁신적인 이런 도시 형태를 파리에 적용시키려고 했다. 지금도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파리 계획안'. 그가 이 계획을 세운 20세기 초반은 유럽의 대도시가 폭발적인 인구증가를 견디지 못할 때다. 더욱이 오래되어 위험한 중세시대의 조적건물과 좁고 무질서하게 짜인 도로들이 버티지 못할 위기에 처할 때였다.

더욱이 당시 파리는 도시의 급격한 팽창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근교도시 개발안 등을 세워내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던 시기. 르 코르뷔지에는 300만명이 거주할 만한 파리 시를 처음부터 다시 계획했다. 정 중심부에 수만명이 근무하는 사무용 건물 여러 개를 짓고, 시청과 박물관, 지금의 아파트의 기초나 다름없었던 빌라, 그리고 전원주택이 켜켜이 도시의 중심부를 감싸는 모습이었다.

20세기 초 나온 이 계획은 시대를 너무 앞서나간 나머지, 프랑스 건축계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300만명이 거주하게끔 만들어진 이 도시계획은 그대로 파기되고, 외곽부에 고층 건물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현재의 파리 시의 모양새로 정비되었다. 과거에 얽매어 현재를 불편하게 하지 말자던 그의 말과는 정 반대의 모습이었다.

다행히도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된 마르세유 도시 재건에 참여하게 된다. 여기서 불후의 명작이자, 전 세계 아파트 건설의 현장 교과서나 다름없는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 단지를 건설한다. 내부에 쇼핑센터, 복층 거실, 옥상의 유치원과 놀이시설까지 배치한 이 건물은 당시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지금은 명실상부한 아파트의 기초가 되었다.

그가 계획한 도시 방식은 파리 시 대신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었다. 지금의 서울 재개발, 수도권의 신도시가 대표적이고, 인도의 찬디가르, 브라질의 부에노스아이레스나 알제리의 알제에서도 그의 바람에 맞는 방식의 도시 건설이 이루어졌다. 물론 르 코르뷔지에가 완벽하게 바라는 형태의 '이데아'는 만들어지지 못했지만, 지역에 맞는 모양새의 도시가 이루어졌으니 더 잘 된 일이었을 수도 있다.

르 코르뷔지에가 있었기에 '마이카 시대'가 왔다

 서울 독립문 주변의 모습. 지금의 정돈된 도시가 있기까지는 르 코르뷔지에의 빚을 많이 졌다.
서울 독립문 주변의 모습. 지금의 정돈된 도시가 있기까지는 르 코르뷔지에의 빚을 많이 졌다. ⓒ 박장식

"눈에 보이면서 서로의 관계가 명료한 리듬들. 그리고 이 리듬들은 인간 활동의 근원이다. 리듬들은 인간 안에서 유기적인 불가항력에 의해 울려 퍼지며, 이 불가항력은 어린이, 노인, 야만인, 학자의 황금분할의 자취를 따라가는 것이다." - 르 코르뷔지에가 본인의 저서에서

그가 남긴 가장 큰 선물은 아파트와 '주차장'이다. 대부분의 건물에 주차장이 설비되기 시작한 것이 그것인데, 1층에 기둥만을 남겨놓은 공용공지 '필로티'를 주차장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직장 건물의 필로티에 차를 주차해놓고 일을 한 다음, 일이 끝나면 널찍하게 짜여진 신작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와 아파트 필로티에 주차한 뒤 집으로 들어가는 일상이 바로 그가 꿈꾸었던 시대.

1980년대 국내 교통체계의 가장 큰 변곡점인 '마이카 시대'가 도래한 원인은 생활 수준의 상향을 꼽을 수 있겠지만, 르 코르뷔지에의 도시 계획 법칙을 따라 넓어지고 직선화가 된 도로 역시 한 몫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빈 땅이나 다름없었던 서초와 강남 땅에 수십 미터 폭의 도로가 세워졌고, 그에 딱 맞춰 현대의 베스트셀러인 포니 1세대가 출시되었으니 절묘한 타이밍인 셈.

그는 일전에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무질서한 프랙탈과 같았던 당시의 런던과 파리, 뉴욕의 시가지가 아닌, 기계처럼 정형화되고 쭉쭉 뻗은 직육면체의 집과 사각형의 구역, 그리고 그 사이를 메우는 도로를 계획했다. 십자형 교차로가 곳곳에 만들어지고, 넓은 도로를 짓고, 복닥한 도시에서나마 잠시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녹색지대, 즉 공원을 계획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자동차로 인해 인간이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동차를 중심에 둔 교통체계를 만들었다. 그의 도시 체계에서는 주거공간과 공업지대, 상업지구(도심지)가 모두 멀직이 떨어진 모양새로 자리잡고 있다. 서울 역시 예외가 아니니만큼, 다양한 도로망으로 연결된 각 지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교통정체에 시달리는 현재의 서울을 다시 생각해보면 인간의 해방은 아직 먼 이야기인 것 같지만 말이다.

한국의 아파트 숲과 너른 도로는 그의 철학에서 나왔다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 위니테 다비타시옹의 레플리카가 <르 코르뷔지에 전>에 전시되어있다.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 위니테 다비타시옹의 레플리카가 <르 코르뷔지에 전>에 전시되어있다. ⓒ 박장식

"직각은 인간이고, 우주의 위대한 기호다. 또한 직각은 삶의 기호다." - 르 코르뷔지에가 자신의 저서에 남긴 어록

하지만 그의 철학이 가장 잘 적용된 곳은 다름아닌 한국이다. 한국에 가장 먼저 세워진 아파트는 일제강점기 조선의 충정로에 세워진 충정아파트를 들지만, 르 코르뷔지에의 철학에 맞춘 지금 모양의 아파트가 지어진 때는 1970년 마포 아파트의 탄생을 꼽는다. Y자형으로 널찍한 녹지와 함께 지어진 아파트는 넓은 공간을 녹지에 사용했고, 당시의 연예인, 고위직이 아파트에 머물렀다고 한다.

마포 아파트에 맞춘 넓은 도로인 마포대로가 건설되고, 1970년대 영동 개발에 따라 반포와 서초 일대에 지어진 아파트촌과 새로운 상업지구, 그리고 넓은 양재대로와 강남대로, 사각형으로 반듯반듯하게 놓인 도로가 지어졌다. 르 코르뷔지에가 주창한 건축의 5원칙, 그리고 곧게 뻗은 넓은 도로와 십자로 교차하는 교차로, 위로 죽죽 솟아있는 아파트와 중심상업지구, 그리고 사무건물로 구성된 '파리 계획안'을 상당수 따른 모양새이다.

서울 뿐만 아니라 부산의 센텀시티, 세종시나 광주의 상무, 경기도 동탄신도시와 일산신도시 등 다양한 도시가 그의 법칙을 따랐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도시가 나온 데는 인프라를 정비하지 않은 일제의 '무제한 수탈'과 6.25 전쟁으로 인한 기존 도시시설의 파괴라는 슬픈 이유가 있다. 다만 그 때문에 도시를 처음부터 재정비할 수 있었으니, 미묘한 감정이 몰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셈이다.

또 르 코르뷔지에가 상상하지 못했던 '아파트형 공장' 역시 국내에 활성화되었다. 구로공단과 가리봉공단은 이전의 나쁜 환경을 벗고 새롭게 도약해, 꽤나 많은 건물이 아랫층은 사무실, 윗층은 공장으로 가동되고 있는 상태. 산업혁명 중기의 더러운 공단지구를 봤던 그가, 만일 2010년대의 서울에 들어와 가장 먼저 '아파트형 공장'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환승센터'의 개념 처음 세운 르 코르뷔지에

 <르 코르뷔지에 전>의 모습.
<르 코르뷔지에 전>의 모습. ⓒ 박장식

"항상 장벽이 가로막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언제든지 안 된다고 말할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 르 코르뷔지에

르 코르뷔지에는 '환승센터'의 개념도 처음 적립했다. 도시의 한 가운데 위치한 사거리의 지상에 교통센터를 설치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가령이면 1층은 사거리로, 2층은 버스터미널로, 3층은 철도역으로 만든 다음 다양한 부가시설을 채워넣고, 옥상은 공항으로 만들어 비행기가 오갈 수 있게 하자는 계획.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탄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어려웠던 그 시대, 당시 르 코르뷔지에가 생각했던 환승센터의 개념은 사후 여러 버스터미널이 기차역에 인접해 개설되면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가까이에서는 서울역 환승센터부터, 단거리/장거리 버스와 철도가 만나는 고속터미널과 같은 곳이 개설되었다. 그가 계획했던 '교통 센터'라는 개념에 한정한다면, 그의 꿈은 최소한 한국에서는 거의 이루어진 셈이다.

눈썰미가 좋다면 눈치챘겠지만, 거의 완벽했던 교통센터 계획에 다행히 실현되지 못한 계획이 하나 있다. 바로 이 도심 한 가운데 교통센터의 옥상에 공항을 설치하자는 계획이었는데, 당시 그는 작고 태세 변환이 빠른 프로펠러기가 대세가 될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2017년 지금은 엄청난 '뚱보'나 다름없는 제트기가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가는 시대.

먼 미래에 제트기가 헬리콥터마냥 수직으로 착륙하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고서야, 또는 엄청난 정밀 착륙 기술이 개발되어 도로와 활주로를 동시에 쓰면서 무소음으로 착륙하는 '진기명기'급 기술이 개발되지 않고서야 불가능할 일로 보이지만, 그가 꿈꾸었던 도시의 모습이 거의 모두 이루어졌으니 언젠가는 그의 바람대로 도심 한 가운데 공항이 떡하니 자리잡는 모습도 상상해볼 만하지 않을까.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한계라는 이름의 숙제

 르 코르뷔지에 전에 전시되었던 그의 도시계획안 설계도.
르 코르뷔지에 전에 전시되었던 그의 도시계획안 설계도. ⓒ 박장식

"보시다시피 저는 바보 같은 늙은이입니다. 그러나 아직 머릿속에는 적어도 100년 분량의 계획이 있죠. 그럼 나중에 봅시다!" - 1965년 8월 27일 오전 11시, 르 코르뷔지에가 최후를 맞은 지중해의 바닷가에서, 걱정하는 주민에게 남긴 '유언'.

<빛 나는 도시>라는 그의 저서는 분명 현대 도시를 먹여살리는 에너지가 되었을 정도로, 르 코르뷔지에가 도시와 교통에 미친 영향은 크다. 하지만 그에 반해 한계 역시 많다. 화가로써는 <열린 손>을, 건축가로써는 롱샹 성당을, 도시로서는 사후 브라질리아 건설에 영향을 미친 그이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반비례 공식이 적용했다.

 롱샹 성당
롱샹 성당 ⓒ pixabay

대표적인 한계는 도시가 삭막해졌다는 것이다. 그가 일으킨 도시 혁명으로 인해, 도시는 박공건물이 여럿 늘어서는 대신 하나로 획일화된 아파트가 들어섰다는 것. 그리고 자동차가 너무 많이 보급되었다는 것. 사람 중심이어야 할 거리와 길이 자동차로 둘러싸여 보행폭을 너무나도 줄어들게끔 했다는 것이 그의 한계로 꼽힌다.

하지만 그가 남긴 한계를 조금만 뒤집으면, 그가 21세기의 새로운 도시환경에 맞는 '숙제'가 태어난다. 그는 좁고 불결하고 낡았던 도시 이미지를 바꾸었던 20세기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렇다면 21세기에는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까. 직선을 찬미하던 그가 곡선의 '롱샹 성당'을 지었던 것은 아마 그가 21세기 사회에 주는 과제의 '참고문헌'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한국에서의 <르 코르뷔지에 전>은 끝났지만, 우리가 걷는 거리, 그리고 차를 타고 달리는 도로, 도로가의 아파트까지, 지금도 세계 곳곳의 현대적 감각을 지닌 도시는 그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셈이다. 미세먼지가 걷히고 나면, 봄기운 담아 도시 한복판을 걸으며 그의 숙제를 생각해볼까.


#르 코르뷔지에#도시계획#현대 도시#교통계획#현대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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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이야기를 찾으면 하나의 심장이 뛰고, 스포츠의 감동적인 모습에 또 하나의 심장이 뛰는 사람. 철도부터 도로, 컬링, 럭비, 그리고 수많은 종목들... 과분한 것을 알면서도 현장의 즐거움을 알기에 양쪽 손에 모두 쥐고 싶어하는, 여전히 '라디오 스타'를 꿈꾸는 욕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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