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장수군에서 유기농으로 농사짓는 백화골에서 2013년부터 세계 여행자 자원봉사 프로그램의 호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대여섯 시간 정도 일손을 거들어주면 무료로 숙식을 해결해주는 나누기 프로그램입니다. 일손이 필요한 농부와 현지인 집에 머물며 한국 문화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은 여행자들의 요구가 맞아 떨어지는 셈이지요.
한국 사람들도 잘 모르는 저개발지역인 장수군으로 낯선 외국인들이 오는 것을 보면서 마을 노인분들이 한 마디씩 합니다.
"이런 시골에 왜 외국인들이 오는 거야? 뭐 볼 게 있다고?" 처음에는 우리도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 한 프랑스 친구는 세 번이나 방문해서 한 달씩 머물다 가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1년 정도 여행하다 프랑스로 돌아가 몇 개월 일을 하고 다시 한국을 방문합니다. 왜 그렇게 한국을 계속 여행하느냐고 물어봤습니다.
대답은 "한국이 너무 좋다"였습니다. 왜 좋은가 물으니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가 우연히 한국에 한 번 왔는데 한국이 너무 좋았다, 특히 활기 넘치는 분위기, 오랜 전통을 가진 음식,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매력적이다"고 하더군요.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사회, 5천년 역사와 문화를 가진 나라이제 5년째, 총 30여 나라에서 온 150여명의 외국 손님들과 지내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한국도 꽤나 매력적인 나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끝마다 '유럽에서는', '미국에서는'을 달고 사는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진보건 보수건)이 지배하는 사회에 삽니다.
서구화에 목을 매던 일제가 뼛속 깊숙이 심어 놓은 서구 사대주의와 미국의 영향으로 우리는 서구 사회가 마치 정의롭고 평등하고 아름다운 곳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행복도 북유럽에 가서 찾고, 정당 정치도 유럽의 모델을 그대로 한국으로 가지고 옵니다. 그리곤 우리 스스로를 혐오합니다.
유기농 농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농업 분야에는 희한하게도 농민들은 전혀 쓰지 않는 외래어들이 공무원들이나 농업 연구원들을 통해 여기저기 퍼져 있습니다. 보통 유럽의 유기농이 한국보다 훨씬 발전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농경국가인 한국의 유기농법은 유럽보다 훨씬 오랜 전통과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신석기 시대 이래로 지혜롭게 자연을 보존하고 모든 생활 쓰레기를 퇴비로 만들어 농사지어온 유기농의 원류 국가입니다.
박정희 정권 이후로 화학비료와 화학농약, 제초제가 들어오면서 유기농사가 멈추었지만, 아직도 많은 유기농사법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백화골에서도 한국의 전통적인 유기농법인 다품종 소량생산, 돌려짓기를 통해 농사짓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나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
우리가 소위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식민지 수탈을 통해 현재의 민주주의와 부를 축적한 나라들입니다. 외국 친구들이 말해주는 한국은 출발선부터가 달랐습니다. 한국 전쟁 이후 모든 것이 파괴된 상태에서 일어난 나라,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빠른 성장을 이룬 나라, 5천년을 이어오는 역사를 간직한 나라라는 점입니다. 부족한 것도, 문제도 많지만, 어느 나라나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북유럽에서 온 친구들은 한국 사람들이 북유럽을 이상사회라고 생각한다고 했더니,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지만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라며 일단 겨울이 길고 추워서 날씨 때문에 힘들고, 물가가 너무 비싸서 1년에 외식하는 횟수는 손으로 꼽을 정도라고 합니다.
많은 나라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는 어느 나라나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는 것. 문제가 있으면 고치려고 노력하고, 민중의 힘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왔던 한국은 가능성 있는 멋진 나라라는 것입니다.
역동적인 한국의 유기농 농부로 산다외국 친국들이 최고로 뽑는 한국의 매력은 '역동성'입니다. 겨울 내내 1500만 명의 국민이 거리에 뛰쳐나와 평화 시위로 대통령을 탄핵시킨 것은 역사적으로 찾아보기 힘듭니다.
보통 시위가 일어나면 사람들이 흥분해서 각종 폭력 사태가 일어나기 마련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시위든 사그라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그 어떤 나라에서도 이루지 못한 평화로운 시위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올해도 많은 외국 친구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우리 농장을 방문하고 싶다고 연락을 합니다. 사실 외국인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한국에 대해서도 편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특히 한국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타인의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셈입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2017년 봄, 또 엄청난 격변의 한 해가 될 이 뜨거운 한국에서 우리는 언제나처럼 유기농 농부로서의 자리를 지키며 한국의 문화와 유기농 정신을 세계 여행자들과 함께 나누어나갈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