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에서 소방정책을 수립하는 사람들로부터 종종 미국소방 사례에 관해 문의하는 전화를 받곤 한다. 대화를 나누다가 눈살이 찌푸려지는 대목이 있다면 미국에서는 잘못한 소방관에게 어떻게 징계를 주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 징계라는 단어 자체가 그리 유쾌한 주제는 아니기 때문에 매번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물론 미국의 소방서들은 자체적으로 소방관의 일탈행위와 그에 상응하는 징계의 기준들을 마련해 놓고 있다.
하지만 보통은 징계보다 안전전문가로서의 행동윤리를 강조해 동기를 부여하는 쪽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금전적 인센티브와 같은 현실적인 보상을 통해 소방대원들이 보다 자율적이고 주도적으로 규정을 지킬 수 있도록 권장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소방관에게 건강한 체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체력측정을 통해 일정 기준에 미달될 경우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주는 것보다는 그 이전에 체력측정을 통과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즉 결과보다는 그 과정을 격려해 함께 좋은 결과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 의용소방대협회는 소방대원의 건강한 심장을 위한 금연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금연 실적이 좋은 소방서에는 소방차를 포함해 필요한 장비를 구입할 수 있도록 보조금을 지급한다. 그야말로 건강도 챙기고 소방차도 선물로 받으니 일석이조가 아닐까.
한편 오하이오 주 소방서는 소방대원을 위한 '건강 마일리지'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다. 꾸준히 건강검진을 받으면 일정 마일리지를 지급하고, 피트니스 클럽에 등록한 회원증 또는 건강박람회 참가증을 제시하면 또 다시 가점을 부여한다. 이렇게 소방서에서 정한 일정 마일리지에 도달한 소방대원에게는 500달러의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소방서의 경우 '100달러 도전 프로그램($100 Challenge Program)'을 운영한 적이 있다. 소방서장이 항시 현찰을 가지고 다니다가 소방대원 누구라도 소방서장이 제시한 몇 가지 기준을 그 자리에서 보여주면 현금 100달러를 보너스로 지급하는 내용이다.
그 기준은 허리 사이즈는 32인치이어야 하며, 팔굽혀펴기는 1분에 50개, 윗몸 일으키기 1분에 50번, 마지막으로 2.4킬로미터 달리기를 9분 30초 이내에 달리면 그 자리에서 현찰을 선물로 받는다.
이렇듯 115만 명이나 되는 미국 소방대원들은 다른 이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성실히 소방인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소방관이라고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심각한 범죄행위에는 해고를 포함한 엄격한 징계가 따른다.
직장에서 음란 동영상 파일을 다운로드 받은 소방관, 페이스북에 인종차별적 발언을 적은 소방관, 물건을 훔친 소방관 등은 모두 일자리를 잃었거나 강력한 징계를 받았다.
최근 대한민국에서도 입에 담기도 힘든 흉악한 소방관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도박 빚에 시달리자 이웃을 살해하고 방화까지 한 소방관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는가 하면, 만취에 뺑소니까지 한 소방관, 술에 취해 지나가는 여학생을 때린 소방관, 그리고 절도 등 범죄양상도 다양해지고 있다.
어떤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것은 항상 옳다.
"잘못된 행위는 곧 징계"라는 공식보다는 어떻게 하면 소방인으로 살아가는 과정들을 격려해 진정으로 '사람을 살리는 전문가'라는 위상에 맞게 처신할 수 있도록 만들어 갈지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