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세습은 청년 세대의 경제활동 의지를 좌절시키고, 사회계층 이동성을 약화시켜 궁극적으로 국가의 활력 그 자체를 좀먹는 암적 요소로 작용한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은 '부의 영속적 세습 방지'를 사회적 합의로 도출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를 두고 있다. 그것이 상속(및 생전 상속행위인 증여)에 대한 중과세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속세 및 증여세법(아래 '상증세법')에 따르면 30억 원을 초과하는 상속재산에 대한 한계 세율은 50%이다. 즉, 상속가액이 30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 초과분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거액 상속의 경우 대를 거듭할수록 상속받는 재산은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예를 들어 상속세율이 50%(=1/2)인 비례세이고, 편의상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핵심 계열회사를 X회사라고 하고, 이병철 회장의 재산이 X회사에 대한 지분 50%로 구성되었다고 해보자. 이 경우 2세인 이건희 회장을 거쳐 3세인 이재용 부회장에까지 이 지분이 상속될 경우, 상속세를 정상적으로 납부한 이후의 잔존 지분은 12.5%(=50%/4)로 줄어들게 된다. 창업 단계에서 50%의 지분은 전체 그룹을 지배하기에 충분했지만 2세를 거쳐 3세로 내려오면 지분이 15%에도 미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경영권 승계'가 총수 일가의 핵심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를 회피하는 변칙적 수단부의 세습에 관한 사회적 합의는 '몇 대에 걸쳐서 금수저를 세습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합의를 그대로 준수하면 재벌 3세나 4세는 사실상 경영권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다양한 합법 또는 불법 수단들이 등장하게 된다.
불법 수단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일감 몰아주기 등의 형태로 회사의 재산이나 돈 벌 기회를 후계자를 위해 빼돌리는 것이다. 이것은 하책(下策)이다. 명시적으로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사용하기 쉬운 순환출자를 통한 지배 역시 최근에 불법이 되었다. 이런 불법적 방식을 제외한 조금 고상한 방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먼저, 공익재단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공익재단은 좋은 일 하겠다는 기특한 목표를 표방한 재단법인이다. 통상 국가는 이런 공익재단을 갸륵하게 여겨 이 법인에 대한 증여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물리지 않는다. 따라서 공익재단에 X회사의 주식을 증여하여 증여세를 생략한 후, 이 공익재단의 지배권을 차지하면 돈 한 푼 내지 않고 경영권을 넘길 수 있다.
이 방법의 장점은 대대손손 돈 한 푼 내지 않고 경영권을 세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세습은 자신이 물러나고 자신의 자식을 새로운 이사장으로 임명하면 그뿐이다. 이 방법의 단점은 경영권은 확보할 수 있지만, 주식을 직접 보유할 때와는 달리 배당이나 시세차익 등 직접적인 재산적 이익은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적은 돈으로 큰 회사를 지배하는 또 다른 방법은 '남의 돈', 즉 금융계열사를 활용하는 것이다. 부채비율이 매우 큰 회사, 즉 금융회사를 설립하여 남의 돈을 크게 빌린 후 이를 활용하여 그룹의 계열회사를 지배하는 것이다. 삼성이 삼성생명의 계약자 돈을 이용하여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이 방법의 장점은 자기의 지분도 지배권과 수익권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배당과 시세차익도 정상적으로 누릴 수 있다. 단점은 금융회사가 피 규제기관이므로 끊임없이 감독 당국과 입법기관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과 산업이 얽힐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에 금산분리 논의가 나올 때마다 구조 전체에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것이 문제다.
마지막으로 고려할 수 있는 것이 지주회사 체제다. 지주회사는 소위 피라미드 조직을 만들어 적은 돈으로 여러 회사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다. 특정 회사를 지주회사 체제로 변화시키는 대표적인 방법은 인적 분할과 자사주를 활용하는 것이다. 인적 분할은 현존하는 한 회사를 두 개의 회사로 쪼개는 것을 말한다. 이때 분할 전 회사가 가지고 있는 자산과 부채는 임의로 두 회사 중 아무 곳에나 배치한다. 물론 이렇게 되면 두 회사의 순 자산 가치가 달라지겠지만, 그 문제는 원래의 주주들에게 이 신설 회사 두 곳의 주식을 모두 종전의 보유 비율에 따라 배분하는 것으로 해결한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인적 분할을 이용할 경우 총수는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하나는 두 신설 회사 간에 지배관계를 만들어 내는 일이고(하나는 지주회사, 다른 하나는 사업을 하는 자회사), 다른 하나는 둘 중 지주회사 노릇을 하게 될 회사에 대한 총수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때 전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법이 자사주를 활용하는 것이다.
원래 자사주는 소각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한 법적 근거도 없이 단지 법원의 판례에 의해 회사가 분할될 경우 자사주에도 분할 회사의 신주를 배정한다. 따라서 총수는 장차 지주회사 노릇을 할 신설회사에 자사주를 집중시키면 이를 통해 지주회사가 사업회사 노릇을 할 회사의 신주를 배정받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두 신설 회사간에 지배 및 종속관계가 생성된다.
다음으로 지주회사 노릇을 할 회사에 대한 지배권을 증가시키는 방법은 사업회사의 주식을 팔고 그 돈으로 지주회사의 주식을 더 확보하는 것이다. 총수에게는 지배권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지배권을 강화한 대표적 사례가 SK 그룹이다. 물론 삼성도 정확히 이 길을 따라가고 있다.
경영권 확보 위해 이재용 부회장이 선택한 방법이재용 부회장의 문제는 돈 없이 삼성을 지배하려고 욕심을 내는 데 있다. 그래서 무리를 할 수밖에 없다. 첫 번째 무리는 없는 돈을 조금이라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등의 방식으로 선대의 이건희 회장이 이학수 등을 시켜 이미 실행했다. 남은 문제는 앞에서 언급한 여러 방식 중 하나를 택해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되어서 사용 불가다. 금융계열사를 통해 다른 계열회사를 지배하려는 것도 금산분리 원칙 때문에 불가능하거나 매우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 남은 것은 공익재단 활용과 지주사 전환 두 가지뿐이다. 그중 공익재단 활용은 보조 수단이므로 핵심적인 해법은 지주회사 전환일 수밖에 없다.
지주회사 전환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회사의 분할과 합병이 수차례 반복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때마다 주주총회를 열 경우 자칫 중요한 의사결정이 주주총회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2014년 11월 19일에 있었던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은 국민연금의 반대 등으로 무산되었다. 따라서 가능한 한 주주총회 없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합병 등 구조변화를 끌어 내는 것이 이 부회장에게는 안전한 길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규모 합병에는 주주총회를 면제하도록 하는 원샷법(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제정이 필수였다.
두 번째 문제는 그룹 전체의 컨트롤 타워 노릇을 할 회사를 확실하게 지배하는 것이다. 삼성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는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를 공고히 하는 것인데, 문제는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권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한 삼성물산을 확실하게 지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제값 다 주고 합병하자니 돈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이 부회장은 합병 비율을 조작하였다. 여기서 이 부회장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벗어나 명시적인 불법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삼성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데 있어 마지막 문제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전자 지분을 처리하는 문제다. 그런데 보험회사의 특성상 인적 분할을 하면서 자산과 부채를 임의로 재배치할 수 없다. 보험회사가 충족해야 할 건전성 규제나 보험계약자 보호 의무 등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하는 경우 그 매각수익을 유배당계약자와 나누는 것도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인적 분할 후 지주회사가 사업회사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자사주의 활용이 가능해야 하는데 회사 분할 전에 자사주를 의무적으로 소각하거나, 또는 자사주에 신주를 배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 입법 발의되어 있는 것도 이 부회장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무리한 세습보다 좋은 경영자가 되어야이재용 부회장은 적은 돈으로 삼성을 계속 지배하려고 불법의 길을 걷다가 낙마했다. 그렇다면 비록 뒤늦은 후회지만 이 부회장이 어떤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현명했던 것일까? 그것은 삼성에 대한 (불법적인 방법으로 획득한) 완벽한 지배력 구축이라는 미망(迷妄)을 버리고 좋은 경영자로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다.
재벌의 경영권 세습에 관한 정책적 함의 역시 바로 여기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돈도 없이 공룡 같은 회사들을 지배하겠다고 헛꿈 꾸는 재벌 3세들에게는 깨끗하게 경영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그 방식 중 가장 쉬운 것은 국민연금의 두둑한 지갑을 동원하여 국가가 주요 재벌기업의 주식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다.
"어차피 네가 국민연금을 이길 수 없으니 부질없이 경영권 확보하겠다고 불법 저지르지 말고, 좋은 경영자가 되거나 그냥 주식배당 받으면서 행복하게 살거라." 이때 비로소 부의 과도한 세습을 방지하자는 우리 사회의 합의가 달성되는 것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전성인님은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