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3월 마지막 날. 부산평화나비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460여 일째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노숙농성 중인 '소녀상지킴이'를 만났다. 부산평화나비의 기습방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반갑게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 안녕하세요. 부산평화나비 김성엽 입니다. 여러분들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를 해주세요.
김세진(아래 김) : 안녕하세요. 저는 30살 김세진이라고 합니다. 저는 뭐... 딱히 소속되어 있는 곳은 없고요. 그냥 개인적으로 참가하여 '소녀상지킴이' 활동하고 있어요.
윤희주(아래 윤) : 네. 저는 25살 윤희주입니다. 저는 희망나비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김남희(아래 희) :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도 희주언니와 마찬가지로 희망나비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작년 새내기 때부터 희망나비에서 활동하면서 '소녀상지킴이'도 함께 하고 있어요.
- 어떠한 계기로 '소녀상지킴이' 활동을 하게 되었나요?김 : "2015년 12월28일 한일 '위안부' 합의가 터지고, 많은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분노하였습니다. 그리고 29일 평화나비의 일본대사관 기습시위를 계기로 다음 날 30일부터 현재 이 자리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이렇게 길게 갈줄은 몰랐어요. 노숙농성은 겨레하나와 평화나비가 주도해 시작하게 됐죠. 저는... 12월 30일부터 시작한 것은 아니고요. 흠... 정확한 날짜는 기억 안 나는데 2016년 1월 초부터 노숙농성을 시작하게 되었고, 현재까지 하고 있습니다."
윤 : "뭐... 오빠와 다를 것은 없는데요. 12.28 한일 '위안부' 졸속 합의가 터지고, 저희 희망나비에서도 '희망나비대책위'를 구성하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평화나비와 많은 대학생 단체들과 함께 대책위를 함께 꾸렸고, 지금까지 노숙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희 : "저는 작년에 대학교 새내기였습니다. 처음부터 시작한 것은 아니고요. 원래부터 이 문제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대학생 입학하고 바로 희망나비와 저도 함께하게 되었고요. 작년 3월부터 쭉 지금까지 '소녀상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어요."
- 저 같은 경우에는 2015년 12월28일 한일 '위안부' 합의가 터지고 그 이후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이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계셨나요?김 : "그 이전에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은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자세히는 알지 못 했고 역사교과서에서 짤막하게 배우는 정도? 그 정도였어요. 원래 이 문제에 대해 매우 잘못됐다는 시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12.28 한일 '위안부' 합의가 발생하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됐습니다."
윤 : "저는 희망나비 활동은 이전부터 계속해왔습니다. 12.28 한일 '위안부'합의가 발생하면서 이전보다 더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농성을 병행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현재는 휴학을 하고 소녀상지킴이 활동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희 : "저는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신입생부터 활동하고 있어요. 저도 희주 언니처럼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하지만, 희주 언니와 다른 점은 저는 휴학은 하지 않았고요.(하하) 학교생활과 '소녀상지킴이' 활동을 병행하기 위해서 짬을 내서 활동하고 있고요. 흠... 아무래도 노숙농성을 하는 학생들이 많이 부족해요. 그래서 주 1~2번은 '소녀상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어요."
- 소녀상지킴이 활동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요?김 : "이 부분은 저희 3명 모두 똑같은 생각일거에요. 아무래도 인원 파악이 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고요. 주기적으로 꾸준히 '소녀상지킴이'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이 20여 명 정도 돼요. 아무래도 학기 중이라서 방학 때에 비해서 인원이 부족해서 조금은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만, 그래도 이 친구들이 있기에 몸은 힘들더라도 마음은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윤 : "저도 세진 오빠하고 같은 생각이에요... 근데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몸은 힘들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전혀 힘들지 않아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텨야죠!"
희 : "저도... 같이 활동하는 친구들과 언니, 오빠들이 있기 때문에 딱히 힘든 점은 없어요."
- 저희 부산평화나비는 여러분처럼 24시간 365일 '소녀상지킴이' 활동을 할 수는 없더라도 시간을 짬짬이 내서 '소녀상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부산에서 '소녀상지킴이' 활동을 하면서 가끔 보수단체 어르신들이 와서 언성을 높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도 비슷한 일 많이 겪었죠? 김 : "왜 없겠어요. (하하) 소녀상 앞에서도 철거하라고 시위한 적도 있고요. 저희의 노숙농성을 보고 '불순세력'이라면서 언성을 높이며 가시는 분들도 계시고... 소녀상 농성하면서 정말 다사다난했던 일도 많았어요. 그래도 그런 분들 보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더 많아요."
윤 : "작년에는 망치테러를 했던 적도 있어요. 그때 정말 화도 났었고, 슬펐어요. 하지만, 세진 오빠 말씀대로 그런 분들보다 저희를 응원해주시는 시민들이 더 많아요.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에는 많은 시민들이 후원 물품도 지원해지고 도와주시고 계세요. 어떨 때는 후원물품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저희보다 더 필요하신 분들에게 따로 기부하기도 해요. 그런 점에서 많은 시민들이 저희를 이해해주고 응원해줘서 더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희 : "처음에는 조금은 무섭기도 했고 두려웠기도 했어요. 근데, 이제는 그런 분들이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제 나름대로 노하우도 생겼죠. (하하) 요즘은 완전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어요. 언니 오빠들과 함께 하고 많은 시민들이 응원해주기 때문에 견딜 수 있는 것 같아요."
-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요?김 : "처음에는 제가 '소녀상지킴이'를 하는지 부모님께서는 몰랐어요. 결국 나중에는 부모님도 알게 되었죠. 처음에는 아무래도 조금은 탐탁지 않게 여겼어요.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저를 응원해주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부모님께 정말 감사드려요."
윤 : "부모님의 반대가 많이 심했어요. 얼마 전까지도 부모님의 반대는 있었고요. 하지만, 1년이 넘어가면서 부모님도 인정해주시고, 세진 오빠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저희 부모님께서도 누구보다 저를 응원해주십니다. 한편으로는 죄송스러우면서도 이해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 소녀상지킴이 활동은 언제 구성되었고 현재 어떻게 유지되고 있나요?김 : "흠...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2015년 12월 30일 기습노숙농성 시위로 활동하게 되었고요. 현재는 개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과 여러 대학생 단체들이 함께 연대하고 있어요. 그게 바로 '대학생공동행동'이고요. 현재 '대학생공동행동' 대표는 최혜련 학생이 맡고 있어요. 저는 딱히 어디 소속되어 있지는 않고 개인자격으로 참여하는 학생이죠. 시작을 했으니 끝까지 함께 해야죠."
윤&희 : "네 오빠 말대로 저희는 연대해서 활동하고 있어요. 오빠는 개인자격으로 참여하고 계시고요. 저희 둘은 '희망나비'에서 활동하며, '대학생공동'으로 소녀상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어요. 방금 전 오빠가 말했던 '대학생공동행동' 최혜련 대표는 아쉽게도 오늘(2017.03.31.)은 오지 못해서 부산평화나비와는 만나지 못 할 것 같네요. 저희 '대학생공동행동'에는 회원들이 딱히 직책은 없어요. 그냥 함께 '소녀상지킴이' 활동을 하면서 행동하고 있어요."
- '소녀상지킴이' 노숙농성을 하면서 건강 유지는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김 : "아무래도... 활동하고 있는 학생들 대부분이 사시사철 감기는 달고 살아요. 노숙농성이 장기화되기 시작하면서, 학생들이 이전보다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부분도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어떤 학생은 3~5일 씩 '소녀상지킴이' 노숙농성 활동을 할 때도 있어요. 최소 노숙농성장에 1명은 무조건 있어야 하니까요... 사실상 작년 3월부터 학생들이 많이 줄어들기 시작해서 그 점이 조금 아쉽기는 해요.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도 버텨야죠? (하하)"
윤 : "감기는 기본이고요... 겨울에 추위는 당연하고... 여름에 더운 것은 어느정도 참을 수 있는데, 모기는 기본이고 온갖 벌레들이 출몰해요... 특히 바퀴벌레가 많이 나와요... 정말 그 부분이 제일 힘든 점인 것 같아요. 건강유지도 중요하지만요."
- 박근혜 정부가 탄핵되었습니다. 그래서 5월 9일 장미대선이 치러집니다. 대략 계산해보니 장미대선 전후로 '소녀상지킴이' 노숙농성한지 500일이 되더라고요. 혹시 차기정부에게 바라는 점이 있으신가요?김 : "이 부분은 제가 남희와 희주를 대표해서 말씀드릴게요. 저희의 기본방침은 굴욕적이고 졸속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를 전면폐기하고 무효화를 선언하는 거예요. 차기정부에게 가장 바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 정부의 요구이기도 한 소녀상 철거는 절대로 받아주어서는 안 되고, 저희도 용납하지 못 합니다. 그리고 일본 정부가 진정으로 반성한다면 피해자 할머님인 이용수 할머님 말씀대로 도쿄 중심에 소녀상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된다면 일본의 인권의식 자체가 한층 더 성숙해지겠지요."
- 끝으로 '소녀상지킴이' 활동을 하면서 서로에게 고마운 점과 바라는 점이 있나요?김 : "하하... 꼭 해야 되나요? 쑥스러운데요... 여기에 나와서 함께 행동하는 것에 정말 고마워요. 이 친구들한테 배운 점도 너무 많고, 저 자신도 한층 더 성숙해 진 것 같아요. 무엇보다 바라는 점은 첫째도, 둘째도, 건강 챙기기! 건강을 꼭 챙기면서 활동했으면 좋겠어요."
윤 : "소녀상을 지키면서 많은 친구들과 '사람 사는 이야기' , '인생 이야기' 등등 서로에 대해 알아가면서 서로의 가치관을 공유하며 저 또한 한층 더 성숙해진 점이 있어서 같이 활동하는 친구들에게 고마워요. 사실 제가... 참 고맙다는 말을 잘 하지도 못 하고 표현을 잘 못해요. 저희는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에요. 바라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고 함께 활동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희 "저도 쑥스러운데요... (하하) 고마운 점은 사시사철 더울 때나 추울 때나 모든 고난을 견뎌내며 열심히 소녀상을 지켰다는 점. 그리고 지금 현재까지도 이 자리에 함께 있다는 점이 고마워요. 바라는 점은 앞으로 힘을 모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 소녀상을 지키면서 열심히 활동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건강도 챙기면서요!"
두 시간의 인터뷰를 마치면서 많은 숙제를 안고 가게 되었다. 비록 사는 곳과 활동하는 지역 그리고 활동하는 방법은 다르더라도 많은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함께 행동하고 기억해주고 있다는 것을 또 한번 느끼게 되었다. 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일본군'위안부'합의 전면폐기를 위해 할머님들 곁을 지켜 주며 "기억·함께·행동"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덧붙이는 글 | 두 시간의 인터뷰를 마치면서 많은 숙제를 안고 가게 되었다. 비록 사는 곳과 활동하는 지역 그리고 활동하는 방법은 다르더라도 많은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함께 행동하고 기억해주고 있다는 것을 또 한번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일본군‘위안부’합의 전면폐기를 위해 할머님들 곁을 지켜 주며 “기억·함께·행동”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