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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미개는 아이를 가진 채로 떠돌이 개가 되어 보호소에 들어왔다. 임신을 한 채로 버려진 건지, 버려진 후 임신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꼬리를 힘차게 휘휘 흔드는 것이 꼭 그네를 타는 것 같아 그렇게 어미개의 이름은 그네가 되었다.

그네는 식탐이 좀 많았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먹는 것에 예민해 다른 아이를 물기도 했다. 먹을 것에 욕심이 있으니 훈련도 척척 할거라고 생각해서 브리더에게 입양을 보낼까 생각도 했었다.

"얘 어째 살이 찌는 것 같은데 임신한 거 아냐?"

설마 했는데 진짜 임신이었다. 초음파를 해보니 아기집이 일곱개나 되었다. 그네는 뭐 잘못되었냐며 해맑게 우리를 쳐다보았다. 허준도 아니고 보자마자 임신을 했는지를 알 수는 없는지라 생각도 못 했는데 임신이라니. 상태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아이를 바로 병원으로 옮겼다.

그네는 참 참을성도 많았고 모성애도 많았다. 임신한 동안 제 새끼들을 생각해서인지 밥도 잘 먹고 산책도 꾸준히 잘했다. 그렇게 조심조심 임신기간을 보내고는 일곱마리의 새끼를 나았다. 엄마 닮은 갈색의 강아지, 새하얀 강아지, 점박이, 미니핀 무늬... 비글 믹스인 엄마를 따라 건강하고 해맑은 아이들이 세상에 나왔다. 무사히 나와 주었다는 감사함만큼이나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아이들은 태어나는 그 순간 유기견이 되어버렸다.

여기, 지금, 우리가 나아가는 한걸음

수원시의 경우에는 17개의 수원시 동물병원에서 분담하여 유기동물을 보호하고 있다. 이번엔 특이하게도 유기견의 새끼를 입양하는 행사를 가졌다.
▲ 유기견 무료분양 하고 있습니다! 수원시의 경우에는 17개의 수원시 동물병원에서 분담하여 유기동물을 보호하고 있다. 이번엔 특이하게도 유기견의 새끼를 입양하는 행사를 가졌다.
ⓒ 김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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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사랑실천단에서 활동하는 우리에게도 이번 봉사는 퍽 힘든 일이었다. 평소보다 적은 인원이었지만 해야할 일은 많았다. 다들 강아지를 신경쓰면서도 빨리 시작하기 위해 서둘렀다. 햇살이 하루 중 가장 뜨거운 정오 즈즘이었지만 다들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어 햇살이 뜨거운 것조차 잊어버렸다. 작년 수원시에서 지원받았던 천막과 테이블을 부랴부랴 펴고, 서명 용지를 정리했다. 동물보호 조례 제정과 강아지들의 입양이 봉사의 주된 내용이었다.

작년 5월 15일, 그러니까 약 1년 전 TV 동물농장에서 강아지 공장의 실태를 전해 동물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발칵 뒤집어지는 일이 있었다. 그로부터 1년, 약 11개월이 지나가는 지금은 그 당시보다야 가라앉았지만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것들이 있었다. 작년 10월 20일에는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관련 법 공청회가 있었고, 7월부터 시작된 동물 관련 법률 개정을 위한 촛불집회는 인사동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금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15일에도 국회의원 회관 2층 제 2 세미나실에서 동물 보호 시민 공청회가 있었다.

더 도울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준비한 것이 서명용지를 들고 길로 나가는 것이었다. 지난해에도 4000명이 넘는 사람의 서명을 모아 전달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태어나자마자 유기견이 되어버린 어린 강아지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시는 분들, 마음 아프다며 꼭 안아주는 아이들... 유모차에 앉아 강아지를 꼭 안고 노래를 불러주는 아이는 감동을 주기도 했다.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니 서명해주시는 부모님들, 강아지들의 마음 아픈 사연에 볼펜을 들어주시는 분들 덕에 무사히 봉사를 끝낼 수 있었다.

이번 행사를 통해서 두 마리 아이는 입양을 갔고, 네 마리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전처럼 아이들에게 미안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얘들아. 너희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아. 너흰 축복받은 아이들이야."

모두가 잘 사는 세상, 어려운게 아니잖아요

이 아이들이 바로 이번 행사를 통해 입양 된 아이들이다. 입양 행사 전의 마지막 단체사진. 아이들은 입양 행사를 앞두고 때 빼고 광내느라 피곤했던 모양이다.
▲ 안녕하세요? 이 아이들이 바로 이번 행사를 통해 입양 된 아이들이다. 입양 행사 전의 마지막 단체사진. 아이들은 입양 행사를 앞두고 때 빼고 광내느라 피곤했던 모양이다.
ⓒ 김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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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지난 1일 방영되었던 MBC <무한도전 >을 보셨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 방송을 보는 내내 한 화이트보드에 시선이 꽂혔다.

한 국민의원 화이트보드에는 강아지 그림이 있었다. 화이트보드가 풀로 화면에 잡히지 않아 그 화이트보드의 내용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나는 '입양'이라는 한 단어를 보았다. 그 한 단어가 참 가슴 아팠다.

물론 우리나라의 고쳐져야 할 문제가 그것 뿐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문제점이 가장 긴급하다는 의미도 아니고. 그럼에도 마음이 아팠던 건, 태어나자마자 유기견이 된 아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유기동물 관련 일을 하다보면 여러모로 상처를 받게된다. 동물 애호가들과 애호가의 탈을 쓴 애니멀 호더들의 속에서 머리가 터져나간다. 진짜로 유기동물을 위하는 사람과 유기동물은 무료로 입양할 수 있으니 그냥 동물을 갈아치우는 호더들을 구분할 방도는 없다.

동물사랑실천단처럼 산책 봉사하면서 응원해주시는 분들,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지만 반대로 입에 담기 힘든 욕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 실제로 오래 나온 봉사자들과 같은 경우에는 '이제 다 개소주 담가버려야 한다'는 말에도 신경쓰지 않고 다른 봉사자들을 달래며 산책 봉사를 진행할 정도로 달관해버렸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유기동물을 위해, 그리고 나아가 동물 관련 법을 위해 나아가야 할 걸음이 너무나도 많다. 그게 아마도 더 나은 동물 문화를 위해 힘내시는 분들을 주저앉지 못하게 하는 힘이 아닐까 싶다.

고3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쪼개고 쪼개 이번 봉사에 참여한 박하은 (19)양은 이번 봉사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아이들이 강아지를 예뻐하면서, 유기된 사정을 듣고 자기가 데려가면 안 되냐고 마음 아파했어요. 그 마음을 커서도 가지고 있었으면 해요. 사실 밖에서 아이들의 입양을 위해 소리지르고 서명받고 하는 게 쉬운 건 아니거든요. 저희도 힘들고 부끄럽고 가끔은 심한 말에 답답하기도 하구요. 그래도 이렇게 고생하는만큼 조금씩 바뀌였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은 어려운 게 아니면서도 어렵다. 그 모두에서, 동물들에게 한켠을 내줄 수 있었으면 한다.



태그:#유기견, #유기견새삶, #청소년동물사랑실천단, #수원시동물보호소, #자원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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