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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 위해 검찰 차량을 타고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 위해 검찰 차량을 타고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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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도, 국정농단의혹 특별검사팀도, 검찰 특별수사본부도 박근혜 전 대통령을 믿지 않았다.

17일 특수본은 박 전 대통령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강요, 뇌물수수, 공무상 비밀 혐의등으로 기소했다. 파면당한 전직 대통령은 이제 피고인 박근혜다. 특수본은 그가 ▲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출연금 744억 원 강제 모금 ▲ 삼성·롯데로부터 368억 2535만 원 수수, SK에 89억 원 요구 ▲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지원배제명단) 작성 지시 등 18가지 범죄를 저질렀다고 봤다. 모두 '사실과 다르다'던 박 전 대통령의 말은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관련 기사 : '피고인 박근혜' 범죄사실만 18가지).

혐의 대부분은 헌재가 인정한 탄핵사유이기도 하다. 물론 헌법재판과 형사재판은 다르다. 헌법재판소법은 탄핵심판 결정이 피청구인의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하지 않고, 그가 파면되면 5년 간 공무원을 할 수 없다고만 정했기에 박 전 대통령 탄핵사유가 형사재판에 영향을 줄지도 불분명하다. 하지만 헌재 결정은 법원의 판단 방향을 점쳐볼 나침반이다. 특히 헌재가 판단을 미루거나 증거가 부족하다고 본 대목은 검찰의 섬세하고 명확한 입증이 필요하다.

[문체부 부당인사 의혹] "증거 부족" 넘어설 묘수 필요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 반대하는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조정실장 등 1급 공무원에게 사직을 강요했다는 혐의를 적용했다. 또 그가 최순실씨를 비판한 노태강 전 문체부 국장 등을 "나쁜 사람"이라며 좌천시킨 뒤 끝내 옷을 벗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헌재는 이 일을 탄핵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피청구인(박근혜)이 노태강과 진재수에 대하여 문책성 인사를 하도록 지시한 이유가 이들이 최서원(최순실)의 사익 추구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고 보기는 부족하고, 달리 이 사건에서 이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 또 피청구인이 유진룡을 면직한 이유나 대통령비서실장이 1급 공무원 6인으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도록 지시한 이유도 이 사건에서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분명하지 않다."

이 부분은 검찰에게 부담이다. 그런데 헌재는 '대통령 인사조치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다. '그만 두라'는 대통령의 말이 '부당한 지시'인지 결론내지 않았다는 얘기다.

특검이 먼저 재판에 넘긴 김기춘 전 실장은 자신이 문체부 1급 공무원들의 사직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설령 그들에게 사표를 내라고 했더라도 1급 공무원은 신분보장 대상이 아니기에 정당한 인사라고도 한다. 검찰과 특검은 앞으로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인사조치하라고 했는지, 그 지시는 정당했는지를 입증해야 박 전 대통령과 공범 김 전 실장의 죗값을 물을 수 있다.

[뇌물죄? 강요죄?] 헌재는 판단 유보, 법원 결론은...

뇌물죄 혐의는 법정 다툼이 치열할 부분이다.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공모여부, 이들과 기업 사이에 오고간 돈의 대가성 등이 성립해야만 법원의 유죄판단이 나올 수 있다. 헌재는 이 쟁점을 아래와 같이 판단했다.

"피청구인의 요구를 받은 기업은 현실적으로 이에 따를 수밖에 없는 부담과 압박을 느꼈을 것으로 보이고 사실상 피청구인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중략)...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하여 기업의 사적 자치영역에 간섭한 피청구인의 행위는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을 위반하여 해당 기업의 재산권 및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결정문만 보면 기업은 '피해자'로 보인다. 그런데 헌재가 이 사실관계를 규정한 근거는 재단 모금 등을 강요죄로 본 검찰의 수사기록이었다. 이 일을 뇌물죄로 판단한 특검 수사결과까지 반영했다면 헌재 결정문 내용은 달라졌을 수 있다. 또 헌재는 강요죄든 뇌물죄든 형사사건 혐의 성립 여부가 아니라 박 전 대통령 행위가 헌법과 법률에 어긋나는지만 따졌다. 검찰로서는 큰 부담을 덜어낸 셈이다.

다만 검찰은 뇌물죄를 두고 벌어질 법리 공방에 대비해야 한다. 특검은 이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서 그의 변호인단과 매 공판마다 각론을 두고 날을 세우는 중이다.

[나머지 혐의들] 헌재는 박근혜를 믿지 않았지만...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 수사 관련 결과를 발표할 예정인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로고에 빗방울이 맺혀있다.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 수사 관련 결과를 발표할 예정인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로고에 빗방울이 맺혀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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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서 유출 등도 탄핵심판의 쟁점이었다. 이때 박 전 대통령은 정호성 전 비서관을 시켜 최순실씨에게 인사나 정책 관련 문건을 보내거나 해외순방 일정을 알려준 적 없고, 최씨 부탁을 받고 KT·하나은행 인사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헌재는 "피청구인 주장을 믿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최서원이 피청구인의 해외순방 일정을 상세히 알고 여러 가지 조언을 했고 피청구인이 이를 수용한 점에 비춰보더라도 관련 문건이나 정보가 최서원에게 전달된 사실을 피청구인이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보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이런 사정에 비춰보면 인사에 관한 자료나 정책보고서 등 말씀자료가 아닌 문건을 최서원에게 전달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없다는 피청구인의 주장도 믿기 어렵다."

"피청구인은 대통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사기업 임원의 임용에 개입하고 계약 상대방을 특정하는 방식으로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으며 해당 기업들은 피청구인의 요구에 따르기 위해 통상의 과정에 어긋나게 인사를 시행하고 계약을 체결했다."

박 전 대통령을 믿지 않은 헌재는 표면상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형사재판은 탄핵심판보다 엄격한 증명을 요구한다. 법원까지 검찰을 믿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모든 것은 검찰에게 달려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원칙을 내세우는 재판부를 설득해 유죄 판결을 이끌어낼 책임은 오로지 검찰의 몫이다.


#박근혜#뇌물#검찰#피고인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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