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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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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본사에서 교육을 받는 날이다. 매번 단팥빵 하나씩 주더니 오늘은 웬일로 두유까지 챙겨준다. 나는 아직까지 단 한번도 교육 받으러 가서 받은 단팥빵을 먹어본 적이 없다. 항상 챙겨와서 아내를 준다. 저녁에 퇴근한 아내에게 따끈한 차 한 잔과 가방 속에서 납작하게 눌린 빵을 내밀면 맛있게 먹는 모습이 좋아서인데.

어렸을 적 방학을 하자마자 그날로 고향 할머니에게 달려가면 차부까지 아재가 마중을 나왔다. 아재 손을 잡고 문턱을 넘어서면 내 양볼은 할머니의 뽀뽀로 침범벅이 되었다. 할머니와 부둥겨안고 뒹구는 사이 아재는 학교에서 받아온 옥수수빵을 내 앞에 수북히 꺼내놓고는 했다. 어린 마음에도 자기 입으로 들어갈 빵을 서울 있는 조카에게 준다고 안 먹고 모아놓는 스스로가 대견했으리.

내가 교육 가서 받아온 빵을 아내 앞에 내놓는 마음과 어릴 적 아재가 옥수수빵을 내 앞에 내놓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그 마음이 같다면 지나친 비유일까마는 내 입에 들어갈 것을 아꼈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준다는 그 흐믓한 마음은 같을 터이다.

서정춘 선생의 시 한 수 감상하자.

30년 전

서정춘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떴다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

1959년 겨울 서정춘(1941~ )


1960년대 방앗간 손자인 나는 보릿고개가 무슨 말인지도 몰랐지만 내 고향 친구 태숙이 동생은 어린 나이에도 돈을 벌겠다고 서울로 올라갔었다. 명절날 고향을 가면 태숙이 동생도 즈이 아버지 어머니 내복과 술 신문지에 둘둘 말린 돼지고기 몇 근 그리고 오빠 술 사 마시라며 오빠 손에 쥐여주는 막걸리 몇 되값, 이렇게 바리바리 싸들고 고향엘 왔다.

태숙이네 집을 놀러가면 흙바람벽에 빈대를 눌러잡은 뻘건 자국이 비린내를 풍길 정도로 누추했지만 서울서 내려온 태숙이 동생 하나로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 사이 작은엄마와 동창인 태숙이 오빠 동수는 나이 어린 누이가 준 막걸리값을 가지고 돌사탕 몇 개와 막걸리 동이 하나 놓고 장사를 하는 과수댁 부엌에서 아궁이에 양미리를 구워가며 아재들과 술타령이었다.

서정춘 시인의 '30년 전'처럼 참 없이도 살던 시절이었다. 내가 가방에 납작하도록 눌린 빵을 아내 앞에 내놓는 것도 어쩌면 어릴 적 아재가 나에게 베풀어 준 그 사랑의 기억이 너무도 뚜렷하게 남아서인지도 모르겠다. 태숙이 동생이 서울 가서 하루 두 끼 먹어가며 번 돈으로 오빠들 술값을 주었듯이.

지금은 허기진 배를 안고 잠을 청하는 시대는 지났지만 그래도 내 입에 들어갈 것을 침을 삼켜가며 참았다가 가족이든 누가 되었든 남에게 준다는 일은 참으로 마음을 넉넉하게 해 주는 그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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