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정책연구소에 몸담고 있는 나는 전국에 산재한 귀농학교에 매달 몇 차례 강의를 나간다. '전국귀농운동본부' 강의도 있지만 대구, 칠곡, 의성, 광명, 군포, 순창, 서울 등 지자체 강의도 나간다. 요즘은 더욱 귀농학교 수강생들의 계층 구성이 다양하다는 걸 체감한다. 귀농자의 연령도 다양한데 특히 젊은이가 늘고 있다. 어느 지역 귀농학교건 마찬가지다.
보수정부건 민주정부건 가릴 것 없이 모든 역대 정부들에 의해 버려졌다고 진단되는 우리의 농촌에 일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는 일시적인 현상일까? 우리나라만의 특징인가? 대도시는 도시농업에 열을 올리고 대기업도 농업투자를 늘인다. 왜일까?
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책이 나왔다. 도서출판 '따비'에서 나온 <농촌>이라는 책이다. 우리나라가 치중하는 농촌개발이나 마을 만들기, 촌락공동체 복원이나 농촌관광 등의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농촌에 역사적, 지리학적으로 접근하는 책이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역저 <사피엔스>에서 밀이나 감자, 쌀 등의 곡식재배가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면서 농업혁명을 인류에 대한 대 사기극이라고 도발적인 주장을 한 바가 있는데 <농촌>은 현실을 차분하게 인문학적으로 분석한다.
"농촌의 행사는 포용의 장소이자 배제의 장소다. 공동체의 통합에 기여할 수도 있지만, 공동체 규범에 따르지 않는 집단을 암묵적으로 배제할 수도 있다. 가령, 농촌 전통이 부활해 인종이나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면서 공동체 내부와 외부의 집단에게 공격적일 수 있으며...(261쪽)"이처럼 농촌의 생태공동체를 유토피아처럼 여기는 우리나라의 일부 흐름과도 차이를 두는 분석을 하고 있다. 여러 나라들의 역사를 아우르며 많은 실증 사례도 보여준다.
저자는 "특정 지리적 장소에 대한 소속감에서 비롯된 농촌공동체의 의미는, 거주와 실천의 지속성을 강조함으로써 외부자에 대한 불신과 의심을 야기할 수 있다"면서 영국의 지역공동체가 망명신청자용 수용시설 건설에 반대한 사례나 호주의 데일스퍼드에서 2008년 열린 게이·레즈비언 축제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읽는 사람에 따라 거기에 맞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
"소농을 농촌사회의 주춧돌이자 농촌환경의 지킴이로 부르는"(295쪽) 이유를 국제협약이나 개별 국가의 정책변화의 흐름에서 소개하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1958년에 설립된 로마협정이 공동농업정책(CAP Common Agricultural Policy)을 제안했던 사례가 그것이다.
CAP는 농산물의 최소가격 보장과 환경에 기여하는 방향으로의 농지운영, 농가의 생활보장은 물론 소비자에게 적정가격의 안전한 먹거리 공급을 선언하면서 농업의 문화유산 보호를 채택했다.
이 책의 구성은 독특하다. 제 1장이 '농촌에 접근하기'이다. 마지막 9장은 '농촌을 다시 만들기'이다. 그 사이에 농촌에 대한 상상하기와 소비하기, 살기, 농촌을 수행하기, 규제하기 등등의 쟁점들을 일목요연하게 배치해 놓고 있다.
요즘은 대선국면이다. 일부 언론매체들에서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 속에 농촌과 농업을 찾을 수 없다면서 농업공약의 취약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농가소득이나 농촌발전, 직불금이나 농민기본소득 등에 대한 획기적인 대책을 기대하는 논조라고 하겠다.
대통령 후보들의 다른 분야 공약들과 비교 하면 그런 주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책은 농업정책이 정녕 어디에 뿌리를 두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철학과 역사의 안목을 갖고 농업정책을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을 보강해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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