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발 안보논란 속에서도 대선 열기가 뜨겁다. 열띤 토론과 정장정책 소개가 TV 화면과 지면을 가득 메운다. 후보들은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다. 그 성과는 고스란히 지지도로 나타난다. 지지도 변동에 따라 정당 대선 캠프의 희비가 엇갈린다. 하지만, 춤추는 지지도에 상관없이 외길 걷는 이들이 보인다. 매달 당비를 내며 자신의 철학을 정당정치에 쏟아붓는 당원들이다. '진성 당원'들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 문제점은 무엇이고, 이상적인 정치는 어떤 모습일까? 5당(정의당·바른정당·국민의당·자유한국당·더불어민주당)의 '진성' 청년 당원들을 만나 속내를 들어봤다. -기자 말'신물 난 기성 정치에 사이다 같은 정의당'지난 21일 만난 임의진(30)씨는 학창시절부터 진보정당에 관심이 많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정의당을 후원했다.
"여성과 노동 문제에 관심을 두는 정의당의 정체성이 마음에 들었어요."세무사인 그녀는 전문성을 활용해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의 고충을 상담해주는 정의당 '민생사이다' 활동에 적극적이다.
"여성들의 가려운 마음을 긁어줄 수 있는 진짜 후보라고 생각해요."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에 대한 임씨의 평가다. 심 후보가 여성정책을 언급할 때 가장 공감한다며 강한 추진력으로 개혁할 수 있는 '돌파형 리더'라고 칭찬한다. 하지만, 탈당 사태와 같이 정의당 내부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다소 아쉬운 면도 보인다고 꼬집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녀차별에서 비롯되는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국 사회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 사회에 대한 임씨의 진단이다. '한번 비정규직은 영원한 비정규직'인 구조에서 비정규직은 부를 얻을 가능성을 빼앗긴다. 임 씨는 보수언론이 노조에 씌운 '귀족' 프레임도 문제라고 본다. 근로조건을 사측에서 쥐고 있는데 노조에 책임을 묻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사회에 나와 일을 하면서 보니 여성이 살아가기 너무 힘든 환경이더라고요."임씨는 출산 여부를 고민하지 않는 사회를 희망한다. 출산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여성의 경력단절이 적은 이유에서다. "먼저, 의회나 정부가 출산·육아 복지제도를 만들어야죠." 이어 남성의 가사참여가 활발해지면 출산율, 나아가 여성차별이나 여성혐오 문제도 조금씩 개선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인터뷰 4일 뒤 다시 연락이 닿았다. '사표 심리' 때문에 심상정 후보에게 투표할지 고민했지만 TV 토론을 보고 결국 심 후보로 마음을 굳혔다고 들려줬다. 우리 사회의 미래 방향을 제시한 건 심 후보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임씨가 정의당을 정의한 키워드는 '희망'이다.
'보수의 가치를 걸고도 부끄럽지 않은 바른정당'22일 만난 바른정당 당원 정두현(27)씨는 대학 시절 정치에 관심이 적었다. 그를 정당으로 이끈 건 대학에서 알선해준 '새누리당 청년 인턴'이었다. 처음에는 새누리당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으로 어색했지만, 겪어보니 생각보다 깨어있는 사람이 많았다. 결국, 입당을 결정했고, 대학생 위원회에 들어갔다.
새누리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겪으며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쪼개졌다. 정 씨를 자유한국당이 아닌 바른정당으로 이끈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법 농단'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검찰 공소장을 '상상으로 쌓아 올린 사상누각'이라며 반성 대신 불만을 쏟아냈다. 또 특검 수사는 '정치적 중립성이 의심 된다'며 거부했고, 헌법재판소 또한 '편파적'이라며 깎아내렸다.
"대통령이 검찰 수사는 안 받을 수 있죠. 그런데 검찰, 특검, 헌법재판소까지 모두 비난하는 건 사법 체계를 흔드는 거잖아요. 당원이라는 게 그래요. 돈을 받으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돈 내면서 활동하는 건데, 내가 속한 당 때문에 부끄러울 수는 없잖아요"소속 정당 의원들이 촛불집회에 대해 목소리를 아끼고 있었으나 정씨는 "촛불집회는 야당의 목소리가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였기 때문에 촛불집회에 참여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분명한 목소리를 냈다.
정 씨는 불평등 해소를 위해 토지공(共)개념이 도입돼야 한다는 진보적 입장을 보인다. "토지공개념은 원래 노태우 정권에서 처음 언급했어요. 보수 정권에서 나온 정책이죠. 이 부분은 바른정당도 공감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토지공개념 도입을 통해 일한 사람이 일하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정의'가 실현돼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서 달라진 보수정당 젊은이들의 가치관이 읽힌다.
'상식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길, 국민의당'국민의당 광주광역시당 대학생 위원장을 맡은 김성찬(27)씨는 현재 안철수 대선후보 청년특보로 활동하느라 눈코 뜰 새 없다. 지난 25일 그와 서면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김씨는 2014년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를 주창하며 결성한 새정치추진위원회 청년위원회 멤버로 정치활동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안철수 의원을 따라 새정치민주연합에 들어갔다. 야당 내부 체질 개선에 일조하고 싶어서였다. 2016년 안철수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의당을 창당할 때 망설임 없이 그를 따라 옮겼다.
"국민의당은 지난 2014년 세력화되지 못한 정치세력이 머나먼 길을 돌아 만든 정당입니다. 애당초 보수와 진보로 나뉘지 않고 정책별로 판단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국민의당이라 생각하며 활동 중입니다."
김씨는 촛불집회에 꾸준히 나갔다. 박근혜 정부의 헌법 유린은 물론 과거에 얽매여 이념논쟁에만 매달리는 소모적 정치를 끝내자는 희망이 그를 광장으로 이끌었다. 광장의 촛불에서 '상식이 통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시대정신을 봤다.
과거 나라의 위기상황에서 먼저 행동하는 세대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불황과 취업난으로 청년들이 사회문제에 소극적인 자세로 변해갔다. 김씨는 촛불집회와 청년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 청년들이 분노하기 시작했고, 문제 해결의 주체로 다시 나서기 시작했다고 봅니다."김씨는 우리 사회가 세대, 남녀, 성 소수자를 비롯한 다양한 불평등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고 비판의 날을 세운다. 87년 쟁취한 민주화가 형식에 그치고 사회를 내부에서부터 변화시키는 데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정치체제만 변했습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불평등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김씨는 심화되는 불평등을 정치가 해결해야 할 몫으로 남겨 놓았다.
'젊은 보수가 택한 자유한국당'24일 서면 인터뷰를 진행한 김건호(27)씨는 자유한국당을 선택한 이유를 "정치영역에서 보수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자유한국당 대학생위원회 교육분과위원장과 미래세대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김씨는 홍준표 후보를 어떻게 바라볼까?
"도지사직을 수행할 때 행정시스템의 개혁만으로 경남도 재정상태를 안정화시킨 경험을 높이 삽니다. 어려움에 처한 경제, 민생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할 자질을 갖춘 후보지요"김씨는 홍 후보가 달성하기 힘든 정책, 효과가 불분명한 정책들을 앞세워 표를 속이듯이 얻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법치와 제도는 민주주의가 지켜지기 위한 기본 요소다. 보수주의자인 김씨는 그래서 촛불집회에 참여했다고 털어놓는다.
"촛불집회에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시민의 열망이 담긴 것 같습니다. 설마 했던 입시 비리는 물론 각종 부당한 일들이 드러나자 이를 바로잡기 위해 시민들이 촛불을 든 것입니다." 촛불집회에 부정적인 당 소속 정치인들과 다른 모습이다. 그는 청년이 많이 참여해 정치권을 움직인 점은 고무적이지만, 탄핵이 가결된 이후 촛불집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엄연히 제4의 권력으로 독립된 존재인데 광장에서 열리는 대중 집회가 재판 과정에 압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촛불 이후의 새로운 시대에 대해서는 "적폐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사회적 분열 최소화를 염두에 두고 촛불집회에 녹아 있던 시대정신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일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청사진을 내놓는다.
보수주의자는 불평등 문제에 관대할 것이라는 인식과 달리 김씨는 불평등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불평등의 원인에 대해서는 "계층 이동을 위한 '사다리' 부족과 불평등을 너무 당연시하는 사회의 분위기"라고 분석했다. 나아가 소득재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을 꼽았다. 상속세나 증여세 탈루, 50%가 넘는 간접세 비율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진보정당의 인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합리적이고 실력 있는 더불어민주당'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대학생본부 상황실장 조원영씨는 2012년 대학 새내기 때 입당해 지금까지 당원 활동을 이어온다. 24일, 서면으로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군사독재에 맞서 싸우며 걸어온 길, 민주주의와 복지, 평화적 남북관계를 지향하는 민주당의 노선이 나의 정치적 성향과 맞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개혁하고 진일보시킬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실력 있는 정당입니다."조씨는 촛불집회를 어떻게 바라볼까?
"박근혜 정권의 부정부패와 무능에 분개한 국민적 저항이 촛불로 표현됐습니다. 물리적 폭력을 수반하지 않고 부패한 정권을 심판한 촛불집회는 그 자체로 성숙한 민주주의를 대변합니다."
이어 촛불 정국에서의 청년의 분노와 정의에 대한 갈망이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이끈 주요한 동력이었다고 덧붙인다.
97년 IMF 경제 위기 이후 뿌리내린 구조적 불평등은 공동체 분열과 미래 희망을 좌절시키는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보수 정권과 언론, 재벌 등은 카르텔을 만들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한다. 노력한 만큼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사회 원칙'을 깨트린다.
"기득권 카르텔 해체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사회적 분배 모델을 수립해야 합니다." 조씨가 생각하는 불평등 해소 방안이다. 조씨는 자본을 보다 평등하게 분배하고 약자와 소외계층을 끌어안을 수 있는 복지·교육 정책을 소속당이나 후보가 실현할 것으로 믿는다. 과연 그럴까? 어느 당이랄 것도 없다.
각 당의 청년활동가들은 정당 지도부나 후보들의 구색 맞추기 진열품이 아니다. 제 목소리를 내는 진정한 정치 동반자로 합리적 활동을 펼치지 못한다면 그들이 들려준 희망은 물거품으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크다. 청년당원, 청년정치인들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