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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성' 기획은 10대들이 열린 공간에서 성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하고, 그들이 스스로의 욕구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시민사회의 바람을 담아 진행됩니다. 나아가 10대를 대상으로 한 성평등적인 성인지 교육도 활성화돼, 성소수자를 포함한 '나와 다른 젠더'에 대한 이해도가 사회 전반적으로 높아지면 좋겠습니다. [편집자말]
십대에게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사회적 합의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성행동을 시작하는 연령대가 낮아졌으며 십대가 성적 주체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와 달리 제도권 성교육이 여전히 부실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교육 만족도가 낮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성교육을 해야 한다는 당위에만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현재 성교육에 대한 진단이나 어떤 성교육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판단,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 환경 조성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학교 성교육의 문제는 현재 교육 환경 및 십대의 위치성과 연결된다.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에서 비입시 과목은 소외되고 있다. 특히 정규 교과가 아닌 성교육의 경우, 성폭력예방과 같은 필수교육 이외의 성교육을 실시하고자 할 때, 성교육 담당자와 학교 관리자의 의지가 일치하여야 하고 주요 과목에 더 집중하라는 양육자들의 문제제기가 없어야 한다.

십대가 '성적 주체'가 되는 것을 막는 성교육?

교육부가 만든 학교 성교육 표준안중 일부
 교육부가 만든 학교 성교육 표준안중 일부
ⓒ 백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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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조건들이 모두 갖추어진다고 하더라도 관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과학, 도덕, 가정 등 다양한 교과교사들에게 성교육 업무가 역분되기도 하지만 주로 보건교사에게 배정된다. 보건 교사는 대부분 학교당 1명 배치되어 있으며 혼자서 전교생과 교직원에 대한 응급처치 및 보건 교육, 행정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교육은 주요 업무가 아니라 가외의 업무가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비정규직 기간제 보건교사 비율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는 관리자에게 해당 보건교사가 성교육 시수 확보 및 예산 배정을 주장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성교육의 위상이 낮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또 있다. 성교육을 단순 지식 전달 교육이라 생각해서 1회기 혹은 방송 강의, 강당 강의로도 즉각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는 점이다. 성교육에서 지식 전달 측면도 분명히 있지만 지식 전달만을 한다고 해도 여러 번에 걸쳐야 교육 참여자가 이해하거나 기억할 수 있다.

정체성, 역할 규범, 스킨십, 자위, 성관계 등 성행동, 고백, 연애, 다툼, 이별 등 친밀한 관계, 감정(표현), 차이와 차별, 성적 위기 경험과 같은 주제들은 자기 인식 및 타인과의 관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지식 전달 이외에도 행동 양식을 발달시켜야 한다.

다회기 성교육을 했을 때에도 청소년의 의사결정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많다. 친구나 어른들과 같은 주변 사람들, 방송매체, 사회 이슈 등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으므로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꽤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해가 없는 상황에서 학교 성교육은 생색내기에 그치는 수준, 1회기 집단 강의로 진행되고 있다.

교육부가 만든 '학교 성교육 표준안' 중 일부
 교육부가 만든 '학교 성교육 표준안' 중 일부
ⓒ 백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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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비해서 십대의 성행동이나 연애문화가 긍정되는 분위기이지만 동시에 성폭력 피·가해, 원치 않는 임신 등 성적 위기경험의 원인으로 쉽게 지적되고 있다. 십대는 미성숙함을 전제로 한 학생 규범에 따라 엄격한 보호 대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회 구조상의 문제이든, 뇌 과학의 문제이든, 발달 단계 상의 문제이든 십대의 미성숙함이 필연적이라면 금지나 규제는 미봉책에 불과할 수 있다.

성교육에서는 십대가 경험할 수 있는 성적 위기 상황에 대해 입체적으로 탐색해 보게 하고 어떤 의사 결정을 할지에 대해 자기 고민을 할 수 있도록, 즉, 성적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편이 효과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건전한' '이성 교제'의 방향을 지도해 달라거나 연애나 스킨십을 못하게 해달라, 성관계 금지(혹은 겁주기)에 대한 요청은 외부 기관이 학교 성교육을 의뢰 받을 때 자주 접하는 주문이다.

현행 성교육, '인권'도 생각해야

교육부가 6억 원의 예산을 들여 개발한 2015 국가 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은 앞서 설명한 십대를 성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문제와 더불어 성폭력 통념, 성별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성적 다양성을 배제하는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2015년 3월 배포된 전달 연수 자료에서는 '성 정보교육이 되지 않도록 다가치(多價値) 교육'을 표방하면서도 '동성애, 성적 소수자에 대한 지도 금지', '결혼의 의미와 다양한 가족 관계를 결혼의 의미와 가족관계의 이해로 수정, 1인 가족, 독신가족 용어 사용에 신중' 등이 포함되어 더욱 논란을 빚었다. 교육부는 여성단체 및 청소년단체, 성소수자단체 등의 지속적인 문제제기 및 국제인권단체의 권고에도 수정 없이 표준안을 지속하겠다고 지난 1월 발표했다.

이런 태도는 성인지 관점 및 청소년 주체성, 다양성 개념을 중립에 어긋나는 특정 정파의 견해쯤으로 여기는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성교육의 핵심목표를 두고 입장이나 가치관이 상이할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혐오를 조장하는 것은 '차이'나 '다양성' 차원으로 일단락 지을 수 없는 분명한 인권 침해다.

교육부는 해당 부처의 비전을 홈페이지를 통해 '모두가 함께하는 행복교육, 창의인재 양성'이라고 밝히고 있고 이는 제도 교육의 목표와 동일할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부가 말하는 '모두'에서 여성, 성소수자,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외의 가족 구성 등은 배제되어도 되는가?

2016년 8월에 있었던 'No 경직! 라운드테이블 - 성교육을 말하다' 행사 당시
 2016년 8월에 있었던 'No 경직! 라운드테이블 - 성교육을 말하다' 행사 당시
ⓒ 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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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에 의한 대학살을 목격한 당대의 사람들은 어떤 차이에 대해서도, 어떤 이유로도 차별을 정당화 할 수 없다는 UN 세계인권선언을 발표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르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출생지, 등록기준지, 성년이 되기 전의 주된 거주지 등을 말한다),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 조건, 기혼·미혼·별거·이혼·사별·재혼·사실혼 등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前科), 성적(性的) 지향, 학력, 병력(病歷) 등으로 하는 차별행위는 평등권 침해'이다.

인권감수성을 바탕으로 할 때 표준안에서 드러난 문제 즉, 소위 '정상'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서, 혹은 정치적이므로,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았으므로 배제할 수 있는가? 그 판단은 누가 하는 것인가? 존중받을 수 있는 인권과 존중받지 못하는 인권이 따로 있다면 UN인권선언에 담긴 인권의 보편성은 유지될 수 있는 것인가? '생물학적 남성', '기혼', '성인', '백인', '정상가족' 등에 대해서 사회적 승인이나 제한, 호불호, 찬반의 여지를 다툴 수 있는가?

각 개인의 정체성은 생애 조건, 경험 등을 통해 구성된 다양한 범주를 교차하여 형성된다. 특정 요소를 추출해내거나 선택의 영역이냐 아니냐를 따질 수 없는, 한 개인 그 자체라는 의미이다. 누군가를 규범적으로 '여성', '성소수자', '십대', '장애인', '유색인' 등으로 일반화할 때 차별은 발생한다. '정상' 범주와 다양성 개념은 차별의 효과를 진단하고 차이에 부착된 차별을 개선, 철폐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국가 교육제도 및 방향을 총괄하는 정부부처에서 성인지 감수성-십대 주체성-성적 다양성 등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인권 개념에 대한 이해 없이 차별적인 표준안 내용을 만들고 이로 인한 여파마저 고려하지 못한 점이 안타까운 이유이다.

물론 모든 학교 성교육이 문제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과로에 시달리면서도 십대에게 효과적인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학교 내외의 여러 자원을 탐색하고 배치하는 보건교사들도 있다. 성교육을 더 제공하기를 제안하는 양육자들도 있다. 여성단체를 비롯한 청소년단체, 인권단체, 성소수자단체 등은 교육부, 교육청, 일선 학교에서 십대가 포괄적 성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도록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 성교육이 당면한 문제는 개인의 기여나 민간의 차원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사회 인식 및 구조와 관련된 문제이므로 성교육만 따로 떼어놓고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 성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은 제도적 개선 뿐 아니라 오용된 다양성 및 인권의 개념을 재검토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백목련씨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 활동가입니다



태그:#성교육, #학교 성교육, #인권감수성, #성인지적 관점, #십대 주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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