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수석의 증언이) 도움 많이 됐다."
"나는 (김기춘) 실장님의 애국심, 충정을 의심한 적 없다."4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전 정무수석, 문체부)의 10차 공판기일의 오후 휴정시간, 311호 법정 앞.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 심리로 열린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 지원배제명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김 전 비서실장의 변호인에게 김 전 비서실장에 대한 존경심을 전했다.
박 전 수석은 2013년 8월~2014년 6월 정무수석으로 재직한 인물이다. 그의 후임은 조 전 장관(전 정무수석)이다. 특검은 정무수석실이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 지원배제명단)의 작성, 관리에 깊숙이 관여했다고 지목했다. 또 김 전 비서실장의 공소장에서 박 전 수석이 김 전 실장의 지시에 따라 '민간단체 보조금 TF'를 운영했다고 밝혔다. 좌파 성향으로 분류된 개인·민간단체에 지원된 정부예산을 선별하고 지원배제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전 수석은 재판심문 내내 정부예산의 편성을 살피며 블랙리스트의 근간을 마련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듯 보였다.
"나라가 너무 편향돼 있으니 바로잡아야 한다",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해야 한다는 김 전 실장의 국정 기조에 철저하게 동의했다는 것이다. 문체부 공무원들이 블랙리스트 작성지시를 따르며 괴로움을 호소한 것과는 다른 태도다.
그는 김 전 실장의 변호인이 "노무현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은 이념적 과잉에 갇힌 채 문화와 예술의 위상을 정치화시켰다"는 조희문 상명대 교수의 인터뷰를 들며 "개인의 창의성과 공동체적 자유, 품위와 연대감을 살릴 수 있는 건강한 문화예술의 회복이 중요한 과정이라는 말에 동의하냐"고 묻자 "공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참여정부의 문화예술 정책과 지원이 좌편향 돼 있었다는 지적에 동의한 셈이다.
30여 년 외교관이었던 박 전 수석은 재판 내내 수차례에 걸쳐 김 전 실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존경을 표했다. 박 전 수석은 "(나 역시) 외교관으로 일하며 나름대로 투철한 국가관이 있다고 자부했는데, 청와대에서 김 전 비설장과 대통령 모시며 그 정도는 약하다고 느꼈다"고 고백했다. 이어 "김 전 비서실장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늘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업무지시를 명쾌하게 했다"라며 "나라가 기울어진 것을 바로잡자는 결의를 보여 깊은 존경심을 느꼈다"고 했다.
"피고인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김기춘과 근무하며 부당이득 취한 거 봤나?""전혀 없다. 실장님께서는 공사 구분을 엄격하게 하시고, 늘 꼿꼿한 자세로 일하셔서 큰 감명 받았고 후배들에게도 본받기 위해 듣는 자세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김기춘 비서실장님의 애국심, 충성심에 대해 깊은 존경심 갖고 있다."'민간단체 보조금 TF'의 회의를 주재했음에도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증언한 그는 김 전 실장에 대한 업무태도에 대해서만큼은 또렷이 기억했다. 검찰이 "모철민 전 청와대 교육문화 수석이 TF 운영과 관련해 마음고생을 한 걸 알고 있냐"는 질문에 "그건 잘 모르겠다"고 답한 것과는 상반된 태도다.
"박근혜, 김기춘에 누가 될까..." 업무수첩 따로 보관하기도 박 전 수석은 지난해 특검이 블랙리스트 관련 조사를 시작하자 업무수첩을 따로 보관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과 김 전 비서실장에게 피해가 갈까봐 취한 조처다.
김 전 실장의 변호인이 "재직 중에 작성한 메모 수첩이 8개인데 이를 4권씩 분리해 보관한 이유가 뭐냐"고 묻자 박 전 수석은 "특검 조사가 시작되면서 업무수첩이 공개될 경우 본의 아니게 대통령이나 김 전 실장에게 누가 되겠다 싶었다"고 밝혔다. 이날 검찰은 그가 청와대에서 근무할 당시 작성한 업무 수첩 8권을 공개하며 신문을 진행했다. 박 전 수석은 수첩 대통령 주재회의, 비서실장 주재 회의 등에서 언급된 지시사항 등을 자필로 적었다.
수첩에는 2013년 8월 21일 김 전 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당시 '종북세력 문화계 15년간 장악. 재벌들도 줄 서. 정권 초 사정 서둘러야. 비정상의 정상화 국정과제'라는 메모가 나왔다. 그는 "내 필적이 맞다"고 인정하며 "김 전 실장의 지시사항이라고 생각이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