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노후 원전 폐로'와 '신규 원전 건설 중단'에 원전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의 속내가 복잡하다. 원전을 운영하는 곳인 만큼 폐로는 당장 회사의 존폐와도 이어진다. 하지만 공기업인 까닭에 정부의 정책을 따르지 않을 수도 없다.
18일 오후 이관섭 사장을 비롯한 한수원 측은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에서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을 만나 정부의 정책을 따른다는 원론적인 태도를 밝혔다. 그러면서 민주당 관계자들에게 한 브리핑에서는 신규 원전 건설 중단이 불러올 악영향을 부각했다.
이날 한수원이 적극적으로 부각한 건 매몰 비용이다. 전체 사업비 8조 6000억 원 중 이미 1조 5천억 원이 집행됐고, 계약해지 비용까지 따지면 2조 5천억 원 가량을 돌려받지 못 한다는 이야기였다. 여기에 원전 건설이 중단됨에 따른 각종 민원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인원 600만 명에 이르는 주 설비공사 일자리 감소와 부품 업체, 시공사 등 760개 기업의 경영 악화도 불러올 수 있다고 밝혔다. 아랍에미레이트(UAE)와 체코 등 해외 원전 수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판단은 달랐다. 민주당 측은 한수원의 셈법부터가 다르다고 지적한다. 한수원은 사업종합공정률이란 명목으로 공정률이 28%라는 점을 부각하지만, 설계와 구매를 제외한 실제 시공 공정률은 9%에 불과했다.
한수원은 2조 5천억 원의 매몰 비용만을 강조했지만 원전 건설이 중단될 경우 원전 운영을 명목으로 지역에 제공하는 3조 6200억 원을 거꾸로 줄일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정부와 한수원은 원전 유치의 대가로 울주군에 지역지원산업(1조 원), 지방세수(2조 2천 억 원), 지역상생지원금(1500억 원), 부지 추가 매입과 어선 보상, 집단이주 (2700억 원) 등을 제공할 예정이었다.
자연스레 한수원이 매몰 비용을 부각하기 위해 각종 수치를 부풀린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민주당 원전안전특위 위원장을 맡은 최인호 의원은 "매몰 비용을 획기적으로 늘려 신고리 원전 공사의 불가역적인 상황을 만들기 위해 의도된 행동이 아닌가"라고 따져 물었다. 하지만 한수원 측은 이와 관련해 정상적인 공정이며 부풀리기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수원이 말로는 정부의 공약을 따르겠다는 태도를 보이면서 속뜻은 원전 추가 건설을 이어가겠다는 의도를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질타는 이어졌다. 조용우 민주당 기장군위원장은 "(한수원이) 지역민의 피해를 강조하지만 중단에서 오는 긍정적 영향도 많다"라면서 "지역민이 원전 피해를 보는 것도 감안해 달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탈원전 정책을 계속해서 펼쳐나가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최인호 의원은 한수원과의 면담이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나 "원전 제로 정책은 앞으로 우리나라 전력 수급과 에너지 정책에 있어 근본적으로 채택이 되어야 한다"면서 "신규 원전 중단이라는 대통령 공약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