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아팠던 것은 진보라는 언론들이었다. 칼럼이나 사설이 어찌 그리 사람의 살점을 후벼 파는 것 같은지, 무서울 정도였다." CBS 권민철 기자는 19일 <김현정의 뉴스쇼>의 '훅뉴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8년 전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로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생전의 고백을 끄집어 들었다.
이날 '훅뉴스'의 주제는 '누가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나'로 주목을 끌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8주년을 앞두고 '정치적 보복' 혹은 '정치적 타살'이란 당시 무거웠던 문제제기를 재조명한 것으로 관심을 끌만 했다.
그러나 '훅뉴스'는 "이 같은 노 전 대통령 발언이 최근 촛불대선 이후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과 진보언론 간의 SNS(Social Network Services) 상에서 노골화되고 있는 감정싸움의 근원과 무관하지 않다"고 진단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진보언론에서 이 문제를 제기할 정도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한편으론 가슴이 아팠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앞두고 진보언론 혐오논란 유감물론 '과연 그럴까?'하는 물음이 절로 나오게 할 정도로 무겁고 민감한 화두였다. 물론 이러한 의문의 한 가운데는 진보언론이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원인이 됐다는 논리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날 '훅뉴스'에서 권 기자는 당시 노 대통령 서거는 이명박 정권의 정치보복과 함께 언론들의 잇따른 폄훼·왜곡보도, 특히 진보언론의 날카로운 비판이 가세한 것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하지만 이 논리는 쉽게 납득할 수 없다. 진보언론에 국한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앞선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조사와 관련해 특종경쟁에 목마른 언론들은 오보경쟁까지 펼치면서 노 전 대통령을 위기로 내몰았던 것에는 일견 동의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진보든 보수든 어느 성향과 관계없이 언론들은 마녀사냥 식으로 보도경쟁을 했기에 결국 죽음으로 내몬 데는 백번 양보해서 진보언론도 한몫 가세했다 치자. 그러나 그 때의 앙금이 지금의 문재인 정권과 진보진영 언론과의 갈등으로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진단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 아닐까?
그런 후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우선 곱씹어 보아야 한다. 노무현 정부 이후 지난 9년 동안 우리 국민들은 강한 보수와 허약한 진보의 스펙트럼 사이에서 지난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 건강한 양 날개를 가질 때 궁극적으로 건강한 사회, 건강한 나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그동안 보수언론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편에서 편향적 의제설정에 주력하고, 권력은 늘 보수언론을 손에 쥐고 권력을 유지해 오지 않았던가?
그러는 사이에 누적된 병폐는 곧바로 우리 사회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종편날개를 단 보수언론의 거대 공룡화, 군림하는 통치권력, 불통의 권력, 오만과 탐욕의 권력, 타락의 권력으로 치달아 결국 온 국민들의 손에 촛불이 들려지도록 만들지 않았던가?
조금 세상이 나아지고 진보가 건강해지려는 순간, 최근 진보언론에 대한 혐오 논란이 SNS에서 노골적으로 거론돼 파급이 날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더욱이 새로운 정권 취임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를 앞두고 이러한 진보언론 혐오논란이 불거진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거울 자아' 연상시키는 진보언론 폄하, 누굴 위한 논쟁인가?
물론 정보전달과 표현의 과정에서 언론(인)이 실수하면 곧바로 사과하고 원인을 치유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실수를 인정하고 해명하는 과정에서까지 공인으로서 품격이 떨어지는 감정을 드러냈다고 하여 꼬투리를 잡아 이를 진보언론 전체 또는 진보진영으로 확대시켜 매도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
단적인 사례로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이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 얼굴 사진이 실린 표지를 페이스북에 공개하면서 많은 누리꾼들은 집중적인 성토와 비난을 쏟아 부었다. 해당 언론사 간부와 누리꾼들 간에 설전으로 비화됐고, 급기야 이 문제가 <한겨레> 또는 다른 진보언론들까지 표적이 되어 비난의 화살세례를 받는 형국으로 번지고 있는 것은 진보의 건강성을 해치는 심각한 행위나 다름없다.
SNS 상에서 갈수록 진보언론에 대한 공격적 표현들이 거칠어지면서 결국 '진보혐오'라는 말까지 등장할 정도니 누구를 위한 논쟁인지 걱정과 우려가 앞선다. 조기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불거진 진보언론 폄하논란과 최근 진보언론과 관련된 혐오논란을 보면 마치 '거울 자아(looking glass self)'이론을 연상케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쿨리 (Charles H. Cooley)가 제시한 개념인 '거울 자아'는 거울 속 자신을 보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 혹은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한다고 생각되는 그 모습을 내 모습의 일부분으로 흡수하여 자아상을 형성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이 나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인정해 주면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지만,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느껴지면 내 자아상도 부정적이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타인의 의견에 반응하면서 '사회적 자아'가 형성된다는 개념이다.
이런 현상이 최근 SNS 상에서 자주 나타나곤 한다. 즉, 자신의 글이나 자신이 지지하는 성향의 사람의 글에 대해 방문한 사람들이 올린 댓글이나 피드백을 보고 점점 그들의 기대에 부합하려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거울 자아 현상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건강한 진보, 집단지성의 힘으로 거듭나야 언론이 사회적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비난과 비판을 받는 건 당연하다. 국민의 알권리를 외면하고 자사의 이익에 급급한 나머지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하다는 소릴 듣는다면 그건 언론이 아니라 권력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편집과정의 소소한 실수나 말꼬리를 트집 잡아 무차별 공세를 취하는 것은 민주언론을 갈망하는 시민으로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무엇보다 새 정권이 조속히 수행해야 할 언론개혁 정책들이 헛돌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시절 내내 정권에 장악돼 권력의 편에 서서 국민의 알권리와는 거리가 먼 의제를 취급해 비난을 줄곧 받아 온 공영방송사의 시스템 개선, 종편에 대한 지나친 특혜구조 개선 등은 촛불대선 정국에서 거의 모든 진보진영 후보들이 약속한 바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청산과 함께 나락에 빠진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 등 언론의 정상화 정책에 앞장서겠다고 수없이 다짐하고 공언해 왔다. 그런데 대선 이후 진보진영 내부에서조차 진보언론을 폄훼하는 현상으로 치닫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자칫 진보진영 전체가 그릇된 '거울 자아' 현상에 빠져 서로가 서로를 헐뜯는데 힘을 소진하면 적폐청산과 언론개혁은커녕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언론과 정부의 적대관계로 회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국에 분열의 틈새를 보이는 순간 개혁의 칼 날 앞에서 바짝 움추러든 적폐세력과 그 세력을 비호해 온 보수언론들이 웃을 것이 자명하다. 그동안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우리는 숱하게 외쳐오지 않았던가? "적폐청산", 그리고 "죽 쑤어 개주지 말자"고.
그동안 우리는 험난한 정치상황에도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을 발휘하며 성숙한 시민의식을 촛불혁명으로 전 세계에 떨쳐왔다. 촛불시민혁명은 위대한 집단지성의 원천이다. 그릇된 거울 자아를 깨고 다시 집단지성의 힘을 합쳐 건강한 진보언론, 건강한 진보세력으로 거듭나도록 서로 배려하며 힘을 합쳐 나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