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쉐 로스탐은 어떤 곳인가?
낙쉐 로스탐은 페르세폴리스 북쪽으로 12㎞쯤 떨어진 후세인산(Hussain Kuh) 남쪽 벽면에 조성된 아케메네스제국 황제들의 영묘군(靈廟群)이다. 이곳에는 다리우스 1세, 크세르크세스 1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다리우스 2세의 암벽 영묘가 있다. 그리고 이들 영묘 아래 사산시대 황제들의 업적을 표현한 마애부조가 있다. 이들 영묘와 마애 부조는 이란 고대사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오전 내내 페르세폴리스를 구경한 우리는 낙쉐 로스탐으로 가는 도중에 점심식사를 한다. 식당에 마침 책방이 있어 나는 낙쉐 로스탐에 대한 권위 있는 안내서를 한 권 산다. 페르시아 고대 역사학자인 샤바지가 쓴 <낙쉐 로스탐>(2015)이다. 그러고 보니 페르세폴리스에 대한 글을 쓰면서 참고한 책도 샤바지가 쓴 <페르세폴리스>(2012)였다.
그리스 사람들은 낙쉐 로스탐을 페르세폴리스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네크로폴리스라 불렀다. 그것은 죽은 사람들이 묻힌 묘지이기 때문이다. 낙쉐 로스탐은 어원으로 보면 로스탐의 부조(Relief)가 된다. 여기서 로스탐은 페르두시의 『왕들의 서』에 나오는 고대 영웅이다. 이곳에 묻히거나 부조로 새겨진 사람이 고대의 영웅이기 때문에 낙쉐 로스탐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낙쉐 로스탐은 사산제국의 몰락 후 역사 속에서 잊혀져왔다. 이것이 다시 발견된 것은 1923년 독일 고고학자 헤르츠펠트에 의해서다. 그는 낙쉐 로스탐의 가치를 알아보고 다리우스 1세 영묘 명문을 주조해 연구했다. 그리고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슈미트가 이끄는 시카고대학교 동양학연구소팀에 의해 발굴과 연구가 이루어졌다.
1974년부터는 샤바지가 이끄는 아케메네스연구소에 의해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는 1979년까지 파르스 지역에 있는 고대 문화유산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대표적인 유적이 페르세폴리스, 낙쉐 로스탐, 파사르가데다. 그의 연구로 이들 고대 아케메네스제국의 역사와 문화유산의 실체가 어느 정도 밝혀지게 되었다.
왜 저렇게 높은 곳에 묘지를 만들었을까?
버스를 타고 낙쉐 로스탐으로 들어가다 보면 거대한 황토 언덕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절벽을 깎아 십자가 형태를 만들고, 그 안에 구멍을 판 모습을 볼 수 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니, 기둥을 받친 건축 형태와 그 위에 새겨진 부조가 보인다. 이를 통해 이 구조물이 의도적으로 만든 건축물이자 조형물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낙쉐 로스탐으로 불리는 구조물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버스를 내린다.
낙쉐 로스탐 앞에는 나지막한 언덕이 있다. 그래서 먼저 언덕으로 올라가 건너편 낙쉐 로스탐 구조물을 조망한다.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4개의 영묘가 있다. 그 순서는 크세르크세스 1세, 다리우스 1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다리우스 2세다. 이들 영묘가 이렇게 암벽 위에 만들어진 것은 조로아스터교 영향 때문이다.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은 죽은 자를 땅(Soil)에 묻어서도 안 되고, 불(Fire)에 태워서도 안 되고, 물(Water)속에 넣어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장사지낼 수 있는 곳이 땅과 불과 물로부터 떨어진 공중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공중에 매장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 대안으로 절벽이 채택되었을 것이다. 암벽이니까 흙은 아니며, 불이 날 가능성이 적으며, 물이 침투할 가능성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다리우스 1세 때 와서 그러한 장소로 낙쉐 로스탐이 선택된 것이다. 그 전까지 아케메네스제국은 이집트처럼 미라를 만들어 집 형태의 무덤에 안장했다.
그 예가 파사르가데의 키루스대제 무덤이다. 여기서도 땅, 불, 물과 멀리하기 위해 몸을 미라로 만들어 돌무덤 집 속에 안치했다. 그러나 다리우스대제 시대에 와서 돌무덤 집이, 높고 멀리 떨어진 암벽 집으로 변형된 것이다. 조로아스터교에서 죽은 사람을 조장(鳥葬)하는 풍습이 지속되었는데, 그것은 이러한 믿음과 관련이 있다. 새를 통해 육신이 공중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리우스 1세를 위해 만든 사후 궁전
암벽 무덤 형태로 낙쉐 로스탐에 가장 먼저 생긴 것이 다리우스 1세 영묘다. 영묘는 크게 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단부에 다리우스 1세 부조와 명문이 새겨져 있다. 부조는 다리우스 1세의 종교적 또는 세속적 의식을 보여준다. 명문은 페르시아어와 엘람어 설형문자로 이루어져 있다. 상단부 부조는 폭이 10.9m, 높이가 8.5m인 직사각형 형태다.
중앙부에 기둥과 지붕 형태를 갖춘 궁전 형태의 무덤이 있다. 이것은 다리우스 1세가 죽은 후 영생을 누릴 궁전으로 만들어졌다. 4개의 기둥이 있고, 기둥머리를 등을 맞댄 쌍둥이 황소가 받치고 있다. 기둥의 높이는 6.22m고, 기둥 사이 간격은 3.15m다. 네 개의 기둥과 양 모서리로 이루어지는 궁전은 다섯 칸으로, 폭이 18.57m에 이른다. 기둥 위에 톱니형태의 처마와 슬라브 형태의 천정이 있다. 그러므로 궁전의 높이는 7.63m나 된다.
전체적으로 페르세폴리스의 타차라 궁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가운데 두 기둥 사이에 출입문이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했다. 문의 폭은 1.4m, 높이는 2m쯤 된다. 문 안으로 들어가면 앞에서 뒤로 방 형태의 현실이 세 개 있다. 이들 현실에 각각 세 개의 묘실이 갖춰져 있으니 모두 9개의 묘실이 있는 셈이다. 내부 바닥에는 물길을 만들어 묘실로 물이 들어가는 것을 차단했다. 묘실은 깊이 1.05m, 길이 2.1m다.
연구자들은 이곳을 다리우스 1세 가족묘로 보고 있다. 다리우스 1세 외에 그의 부모와 두 아내가 함께 묻혔기 때문이다. 두 아내 중 하나는 키루스 대제의 딸인 아르티스투네아(Artistuneah)고, 다른 하나는 크세르크세스 1세의 어머니인 후타오사(Hutaosa)다. 그리고 크세르크세스 1세를 제외한 자식들이 함께 묻혔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족묘 내부 공간의 크기는 길이 18.72m, 폭 2.13m, 높이 3.7m다.
하단부에 조각이 전혀 없는 벽이 만들어져 있다. 이것은 장례 후 왕위 계승자가 더 이상 조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미완성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사후 세계를 상징하는 신성한 공간에 접근하는 것을 막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상단부 조각이 전해주는 이야기
이에 비해 상단부 조각에는 이야기 거리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이 조각의 중심에는 아후라마즈다상이 있다. 그 왼쪽에 그의 축복을 받는 다리우스 1세가 있다. 그는 오른쪽에 있는 불꽃 제단(불 향로)을 향해 경배를 드린다. 그의 키는 2.7m로 실제보다 크게 표현되어 있다. 그의 뒤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그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가 아후라마즈다에 대한 경배와 기도다. 두 번째가 다리우스 1세와 조상들의 업적에 대한 찬양이다. 세 번째가 이곳에 새겨진 부조에 대한 설명이다. 다리우스 황제가 얼마나 많은 나라를 통치했는지 알고 싶으면 부조에 새겨진 인물들을 살펴보라는 것이다. 모두 28개국 대표들이 2층의 황제 제단을 받들고 있다. 그리고 제단 밖에 2개국 대표가 더 표현되어 있다.
제단의 가장자리 기둥머리에는 포효하는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제단 양쪽에는 불사친위대가 호위하고 있다. 제단 위 오른쪽 하늘에는 보름달이 다리우스를 사후세계로 안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달이 잘 보이질 않는다. 부조의 마모가 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각이 가장 선명한 것은 크세르크세스 1세 영묘다. 크세르크세스가 왼손에 화살을 들고 있는 모습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가운데 아후라마즈다가 크세르크세를 향해 축복을 내리는 모습도 선명하다. 오른쪽 위에 있는 보름달뿐 아니라 황제 제단을 받들고 있는 인물들 모습도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부조의 내용을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조로아스터교 이야기
아케메네스제국 황제들이 믿고 신봉한 조로아스터교는 기원전 10세기경 선지자인 조로아스터(Zoroaster: 일명 Zarathustra)에 의해 창시되었다. 조로아스터교에 의하면 이 세상을 창조한 최고의 신이 아후라마즈다(Ahuramazda)다. 그는 인간과 함께 악의 화신인 아리만(Ahriman)을 물리치고 완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한 세상은 인간이 착한 생각(Humata), 착한 말(Hukhta), 착한 행동(Huvarshta)을 할 때만 이루어질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죽은 다음 영혼이 분리되어 심판의 다리를 지나간다. 이곳에서 영혼은 이 세상에서 저지른 행동에 대해 심판을 받는다. 선업을 행한 자는 천국으로 가고, 악행을 저지른 자는 지옥으로 떨어진다.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은 언젠가 구세주(Sosayant)가 나타나 천국과 지옥에 가 있는 모든 인류를 부활시킬 것으로 믿고 있다.
그 때 모든 인류는 금속이 용해된 뜨거운 강물을 건너 불멸의 세계로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그곳에는 정의와 선만이 존재한다. 이러한 조로아스터교는 사산제국시대까지 페르시아 문명권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슬람교가 지배하는 우마이야시대 이후 세력을 잃기 시작해 지금은 2만5000명 정도의 신도를 가진 소수종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리는 신성한 도시 야즈드(Yazd)에서 조로아스터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