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도, 그의 변호인단도 여전히 "아니다, 틀렸다"고만 했다.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1차 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은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진 뒤 줄곧 '엮였다, 몰랐다'고 말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변호인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영하 변호사는 재판부에게 "이 사건 공소사실은 엄격한 증명이 아니라 추론과 상상에 기인했다"며 25분간 열띤 변론을 이어갔다.
그는 "범행동기가 없다"는 주장부터 펼쳤다. 박 전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등으로 이득 볼 일이 없다는 얘기였다. 유 변호사는 "재단 돈은 기본·보통 재산이 있는데 기본 재산은 누구도 사용할 수 없고, 보통 재산 사용도 엄격하다"며 "(박 전 대통령이) 왜 자기가 쓰지도 못하는 돈을 받아 재단을 만들려 했겠냐"고 했다. 또 공소장 어디에도 박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공모 관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여전히 '아니다'라고만 하는 박근혜유 변호사는 검찰이 언론 보도를 지나치게 많이 증거로 제출했다고도 했다. 그는 "기사는 참고자료"라며 "언제부터 대한민국 검찰이 언론 기사를 형사사건 증거로 제출했는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논리라면 지금 '돈 봉투 만찬' 사건으로 감찰받는 사람들을 부정처사 후 수뢰죄로 얼마든지 기소 가능하다"고 했다. 언론 보도만으로 사실관계를 확정할 수 없는데, 검찰이 억지로 박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웠다는 뜻이었다.
변호인단은 또 공소장과 수사기록에는 박 전 대통령의 범행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방기선 전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이 수사 과정에서 '2015년 2월 안종범 전 수석 지시로 문화·체육재단 설립 계획서를 작성했다'고 진술했는데, 공소장에 적힌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재단 설립 공모 시점은 그해 5월이라는 이유였다. 유 변호사는 검찰에게 "방 행정관의 문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냐"며 "대통령 지시로 재단을 설립했다는 전제가 틀렸다"고 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공모 관계도 다시 한번 지적했다. 특검이 제3자 뇌물죄 성립을 위해 최씨가 박 전 대통령 대신 삼성동 집을 사고, 옷값도 냈다는 등 두 사람이 '경제공동체'라고 주장했지만, 박 전 대통령이 반박하자 '공범' 논리를 꺼냈다는 얘기다. 유 변호사는 "그렇다면 도대체 두 사람이 언제 어디서 만나서 어떻게 모의했는지 설명이 필요한데 공소장을 봐도 없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삼성과 롯데, SK로부터 그룹 현안을 해결해달라는 청탁을 받은 적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변호인단은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 지원배제명단)' 관련 혐의 역시 부인했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은 블랙리스트 관련 지시나 보고받은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검찰이 "문화가 좌편향됐으니 바로 잡아야 한다"는 박 전 대통령 발언을 근거로 블랙리스트 사건의 책임을 묻는 것은 "살인범을 낳은 그 어머니에게 살인죄 책임을 묻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말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집행에 소극적인 문화체육관광부 1급 공무원들과 최순실씨 쪽을 비판하는 보고서를 작성한 노태강 전 문체부 체육국장의 사직을 강요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다른 혐의를 해명할 때도 똑같았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현대자동차에 최씨 지인의 회사 물건을 납품받으라고 지시한 적도, 이미경 CJ 부회장의 퇴진을 강요한 사실도 없다고 했다. 또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에게 정부 정책이나 인사 등 공무상 비밀이 담긴 문건을 최씨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때부터 '최씨에게 연설문 표현이나 문구에 대해 의견을 들어보라고 한 사실은 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고 했다.
'정치재판' 주장도... 검찰 "법과 원칙 따라 기소"
검찰은 "앞으로 증거조사과정에서 충분히 입증하겠다"며 변호인단 주장을 간략히 반박했다. 이원석 부장검사는 "대통령인 피고인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며 "(블랙리스트 등은) 공모공동정범 법리에 따라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 법정은 정치 법정이 아니다"라며 "수사 시작할 때는 현직 대통령이었던 피고인을 어떻게 여론과 언론 기사로 기소할 수 있냐"고 반문했다.
한웅재 부장검사는 검찰이 촛불집회‧대통령 탄핵심판 등 상황에 따라 적용 법조를 "변화무쌍하게" 바꿨다는 최씨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의 말을 받아쳤다. 그는 "이 사건 수사는 지난해 10월부터 진행됐는데 특검이 출범하면서 뇌물 혐의 등 기록 일체를 넘겼고, 특검 종료 후 다시 기록을 인계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법정에서 이 사건 심리와 관계없는 촛불시위와 정치지형을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