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선일보는 오히려 새 정부가 개혁과제를 시행할까봐 걱정하는, 황당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25일에는 마치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새 정부를 향해 '촛불을 빌미로 무리하고도 이기적인 요구를 쏟아내고 있다'는 뉘앙스를 담은 보도를 1면 머리기사와 3면 머리기사로 배치하기도 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대표 타깃이 된 것은 전교조였습니다. 이는 최근 공개된 민주연구원 보고서 속 촛불개혁 10대 과제에 교원노조 합법화 문제가 포함되어 있던 것을 의식한 행보로 보입니다.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 <전교조가 당선 빚 같으라며 팩스 투쟁>이라니<전교조, 당선 빚 갚으라며 팩스 투쟁>(5/25 김연주 기자 https://goo.gl/J356A6)은 이날 1면 머리기사입니다. 주제는 전교조가 "국정기획자문위를 상대로 '팩스 투쟁'을 벌이기로 했다"는 것인데요. 조선일보는 이를 "현 정권 집권에 '우군(友軍)'이었다고 자처하는 세력이 '우리가 기여한 만큼 돌려달라'는 요구가 새 정부 초기부터 이어지고 있"는 한 사례라고 정의 내렸습니다.
기사는 익명의 청와대와 여당 관계자들의 "고마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요구대로 국정을 운영할 수는 없어서 곤혹스럽다"는 반응이나 "전교조는 더 공격적으로 '빚 갚으라'고 압박할 것"이라는 익명의 교육계 인사 발언을 전달하고 있기도 합니다. 해당 기사의 부제는 <"우리 덕에 들어선 정부, 노조 합법화 해달라"… 국정기획위 압박> <노동·진보단체도 문재인 정부 초부터 우군 자처하며 '지분' 요구>입니다.
조선일보는 같은 1면 <팔면봉>(5/25 https://goo.gl/zxeRW6)에서도 "전교조, 새 정부에 '도와준 것 잊지 말라' 계속 압박. 이제 '빚진 쪽'이 어떻게 할지 볼 차례"라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라는 요구를 일종의 '거래'로 묘사했습니다.
'전교조 합법화'가 떼쓰기나 빚 독촉이 아닌 이유전교조 법외노조화 결정은 현 시점에도 보수 정권의 정치 탄압에 따른 결과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사안입니다. 조합원이 6만 명에 달하고 17년간 합법적으로 운영되어온 노조를 9명의 해직 노조원이 소속되어 있다는 이유로 법외 노조로 통보하고 불법단체로 몰아붙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014년 6월 15일∼12월 1일 기간 나흘에 한 번꼴로 전교조 탄압을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 있기도 한데요. 특정 노조만을 겨냥해 법외 노조를 통보하는 정권의 행태 자체도 우려스럽지만, 단순 법 적용의 문제가 아닌 기획된 정치공작의 문제라면 이는 즉각 해결해야 할 심각한 사회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정치공작 여부를 떠나 전교조 법외노조화 결정은 그 자체가 국제법과 국제기준과도 배치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실제 한국 정부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직후 국제노동기구 ILO 이사회 노동자대표단은 "한국 정부가 해고자 조합원 자격은 노조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의 거듭된 권고를 어기고 아무런 근거 없이 전교조를 법외노조화했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마이나 키아이 유엔 집회와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 역시 지난해 1월 회견을 통해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에 관한 일반 논평 31호는 법원이나 행정부처는 최대한 포괄적으로 법 조항을 해석해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는 방향으로 판결하도록 하고 있다"며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을 '인권을 제약하는 판결'이라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를 개별 노조의 존폐 문제로 치부하며 '단체의 이해'를 운운한다면, 이 사안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모든 촛불과제 실현 요구 목소리를 '친여 성향 단체'의 '빚 독촉'으로 몰아가조선일보가 문제 삼은 것은 전교조만이 아닙니다. 3면 머리기사 <이 정권은 촛불이 만든 것…입법·국정과제 들이미는 단체들>(5/25 황대진 기자 https://goo.gl/tPjpMF)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친여 성향 각종 단체의 입법 요구와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조선일보는 이 과정에서 각 세력들의 촛불 과제 실현 요구 중 일부를 자의적 잣대로 분리해 "단체의 이해와 관련된 것"으로 치부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각종 단체의 요구 중에는 사드 배치 철회 등 외교 안보 사안이나 재벌·검찰 개혁 등 장기적 국가 운영과 관련된 주제도 있지만, 전교조의 법외노조 철회 요구처럼 단체의 이해와 관련된 것도 적지 않다"고 말한 뒤 조선일보가 나열한 사례는 △금속노조의 재벌 개혁, 제조업 발전, 노조 파괴 금지 요구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석방 △전교조 합법화 △참여연대의 과거 행적에 문제 있는 경제관료 경제부처 공직임명 배제 요구 등이었습니다.
그러나 촛불시민들의 요구사항이기도 했던 재벌 개혁이나 노조 할 권리 보장을 위해 내세운 노조 파괴 금지 요구, 국제인권법에도 어긋나는 자의적 기준으로 구금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석방 요구 등이 대체 어떻게 특정 개인 혹은 단체의 이해관계를 위한 요구사항이라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촛불민심과 함께하는 정권교체"임을 강조해왔고, 실제 문재인 정부를 출범시킨 19대 조기 대선의 뒤에 광장의 촛불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 정부가 이 같은 요구를 의제화해 개혁 작업을 추진해 나가는 것은 반드시 이뤄져야 할 일일 것입니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새 정권이 선거 당시 내놓았던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는지, 혹은 그런 의지를 보이고 있는지를 감시해야 할 시점이기도 합니다.
조선일보는 참여연대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인사에 관한 요구 사항을 내놓고 있다" "특정 인사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이런 사람은 인선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지적하기도 했는데요. 참여연대가 실명을 언급해가며 인선 배제를 주장한 인사들은 론스타 사태 연루자인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과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박근혜 게이트에서 최순실 측근인 차은택에게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임종룡 현 금융위원장 정도입니다. 과거 행적에 문제 있는 경제관료를 경제부처 공직임명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이런 상식적 주장을 마치 무리한 횡포라도 되는양 전달하고 있는 셈입니다. 조선일보는 이런 서술 뒤에 "조국 민정수석은 참여연대 출신"이라는 정보를 슬쩍 덧붙이기도 했는데요. 참여연대의 요구가 '불순한 것일 수 있다'는 인상을 주는 서술 방식인 셈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5월 25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신문 지면에 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