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국빈방문 마지막 날인 28일 오전(현지시간) 작센주 드레스덴공대를 방문, 교수. 학생등을 대상으로 통일 프로세스를 밝히고 있다.
▲ 통일 구상 밝히는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국빈방문 마지막 날인 28일 오전(현지시간) 작센주 드레스덴공대를 방문, 교수. 학생등을 대상으로 통일 프로세스를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상징적 기구였던 통일준비위원회가 결국 해체됐다.

지난 1일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통일준비위원회를 비롯한 5개 위원회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며 "비서실장 주재 상황점검회의에서 논의된 결과"라고 밝혔다(관련 기사 : [단독] 통일준비위·문화융성위 등 박근혜 정부 5개 위원회 폐지)

이에 따라 통일준비위원회는 2014년 7월 출범 이후 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통일준비위원회, 무엇을 남겼나

통일준비위원회(아래 통준위)는 지난 2014년 1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통일대박론'과 뒤이어 언급한 통준위 발족 구상에 따라 그해 7월 대통령 직속기구로 출범했다. 위원장은 대통령이 직접 맡고 민간 부위원장과 정부 부위원장(통일부 장관)을 두어 민·관 협업 체제를 갖췄다.

대통령령으로 규정된 「통일준비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통준위는 ▲통일준비를 위한 기본방향 ▲통일 준비 관련 제반 분야의 과제 발굴·연구 ▲통일에 대한 세대 간 인식 통합 등 사회적 합의 촉진 ▲통일 준비를 위한 정부기관·민간단체·연구기관 간 협력 ▲그밖에 통일 준비에 관하여 대통령이 위원회에 자문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사항 등을 관장하도록 되어있다.

이를 위해 통준위는 각각 외교안보분과, 경제분과, 사회문화분과, 정치·법제도분과 등 분과별로 민간·전문위원 70여 명을 두고 시민자문단, 교육자문단, 언론자문단, 국회협의체, 기획운영단을 설치해 민·관 협업으로 다양한 활동을 추진해왔다.

실제로 통준위는 지금까지 대통령 혹은 민간 부위원장 주재로 열린 전체회의를 비롯해 매달 분과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분과회의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결정된 정책들을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역할을 했다.

출발부터 삐걱거린 통준위

그러나 통준위는 출발부터 순조롭지 못했다. 출범 당시 통준위가 수행하게 될 역할을 두고 통일부·민주평통과 업무가 중복되어 '옥상옥'이 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현실로 나타났다. 2015년 국정감사 당시 국회는 통준위의 업무가 기존에 설치된 통일부·민주평통과 크게 차별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각 기관의 자문위원들이 서로 겸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6년 국정감사에서도 해당 문제가 재차 지적될 정도로 이 부분에 있어 개선이 더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더욱이 통준위가 정해진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통일준비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 6조 3항에는 '정기회의는 분기마다 1회 개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원칙대로라면 12차례 이상 열렸어야 했지만 확인 결과 2017년 현재까지 열린 전체 회의 횟수는 8차례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올해 들어서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민의당 박주선 의원실(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관련 법령을 정해놓고 개최하지 않은 건 문제"라며 "통준위의 방만한 운영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고 꼬집었다.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민간 부위원장이 지난 2015년 3월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콘서트홀에서 열린 '연세-김대중 세계미래포럼' 기조연설을 한 뒤 기자들과 만나 '통준위 내 흡수통일 준비팀' 논란과 관련해 자신의 용어선택이 부적절했다고 해명했다.
▲ 정종욱 "흡수통일 준비팀 없다"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민간 부위원장이 지난 2015년 3월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콘서트홀에서 열린 '연세-김대중 세계미래포럼' 기조연설을 한 뒤 기자들과 만나 '통준위 내 흡수통일 준비팀' 논란과 관련해 자신의 용어선택이 부적절했다고 해명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3년간 투입된 예산 총 138억 원, 성과는?

다양한 의견 수렴을 위해 통준위가 운영하고 있는 자문단의 역할 역시 미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통준위에 자문단체로 참여하고 있는 A 단체 관계자는 "회의가 있을 때 초청장을 보내서 가봤더니 발언권은 없고 앉아서 듣기만 하는 역할이었다"며 "자문단이라고는 하지만 자문을 요청받은 적도 없고 실제로 자문한 적도 없기에 통준위가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자문단체로 참여하고 있는 B 단체 관계자 역시 "처음에는 기대를 품고 갔는데 막상 가보니 기존의 논의되고 있던 거대 담론 수준의 통일정책을 되풀이하는 수준에 불과했다"며 통준위의 실질적인 성과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준위에 배정된 예산이 2017년 올해까지 약 138억 원(14~17년 배정액 약 138억 원, 14~16년 집행액 + 17년 배정액 약 116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혈세 낭비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B 단체 관계자는 "그렇게 많은 예산이 들어간 줄은 몰랐다"며 "그 정도 예산을 투입해 이 정도 성과밖에 내지 못했다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통준위의 성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에 대해 통준위 관계자는 "북한의 지속적인 핵실험으로 남북관계가 굳어지면서 통준위 활동도 위축되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가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했던 DMZ 세계평화공원, 경원선 철도 남측 구간 복원 등의 정책들도 통준위 차원에서 논의되고 대통령에게 건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의 거듭된 핵실험과 무력 도발, 이에 대응해 이뤄진 개성공단 폐쇄 등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모두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표류하고 말았다.

남북관계 악화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통준위가 오히려 남북관계 악화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노무현 정부 당시 통일외교안보정책을 담당하기도 했던 김진향 전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연구교수는 "통준위에 참여한 인사들을 분석해보니 대통령을 비롯해 대부분 급진통일과 분단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인물들에 가까웠다"며 "통준위가 통일준비를 위한 기구인지 분단 심화를 위한 기구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북한은 통준위 출범 당시 '흡수통일을 위한 기구'라며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새 정부에서도 통준위 존속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국내 언론보도를 통해 흘러나오자 즉각 "괴뢰통일준비위원회는 응당 해체되어야 한다"며 논평을 발표했을 정도로 통준위에 대한 북한의 적개심은 매우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에서 통준위 해체를 결정한 것 역시 성과도 없는 통준위의 존속이 오히려 남북관계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 아니냐는 해석이 있을 수도 있다.

지난 4월 10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국진보연대, 615남측위 등 적폐청산평화행동 소속 단체 회원들이 '퇴진광장에서 적폐청산의 광장으로! 적폐청산 30일 평화행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30일동안 광화문광장에 시민들의 평화통일 메시지를 모아낼 수 있는 시민참여형 조형물을 설치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 적폐청산 30일 평화행동 지난 4월 10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국진보연대, 615남측위 등 적폐청산평화행동 소속 단체 회원들이 '퇴진광장에서 적폐청산의 광장으로! 적폐청산 30일 평화행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30일동안 광화문광장에 시민들의 평화통일 메시지를 모아낼 수 있는 시민참여형 조형물을 설치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해체된 통준위, 새 정부에서의 앞날은?

한편 통준위가 해체됨에 따라 통준위의 기능과 역할을 대신할 기구가 새롭게 만들어질지에 대한 여부도 주목된다. 실제 여당 내부에서도 통준위를 대체할 기구로 '국민통일위원회'의 필요성을 정리한 문건이 작성되는 등 새로운 기구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유력한 상황이다.

대북문제 전문가들도 여전히 통준위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통준위에 민간위원으로 참여했던 A 교수는 "통준위가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통준위의 기능과 역할의 필요성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김진향 전 카이스트 교수 역시 "통준위가 문제는 많았지만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면 비판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통일부는 실질적인 정책을 수립·집행하고, 민주평통은 헌법적 자문기관으로서 대통령에게 정책을 건의하고, 통준위는 수립된 정책을 대중들에게 확산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통준위를 대체할 기구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대통령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존의 통준위가 대통령 직속기구였던 탓에 박 전 대통령 눈치 보기에만 급급해 실질적인 논의를 이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준위에 참여했던 한 민간위원은 "박 전 대통령이 급진통일, 흡수통일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며 "통일방안을 위한 청사진을 만들었으나 대통령이 관심이 없어 발표조차 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또 "(통준위가) 개성공단, 사드와 같은 현안에 대해서는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며 "당면 현안 해결과 같은 과정으로서의 통일도 중요한데 대통령이 통일 이후 문제에만 관심이 많아 거대 담론으로만 이끌어가려는 경향이 있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통준위는 대통령령으로 만든 위원회라는 약점 때문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해체되어야 하는 운명일 수밖에 없다"며 "국회 입법을 통해 여·야·정 협의체로 구성해 정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우리 사회의 통일 문제를 꾸준히 논의할 수 있는 기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결국 이번 결정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야심차게 출범했던 통준위는 혈세만 낭비한 채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오명과 함께 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남북관계 걸림돌로 여겨지던 통준위가 해체됨에 따라 이번 결정이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악화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귀추가 주목된다.


태그:#통일준비위원회, #대통령, #박근혜, #북한, #문재인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