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중구(구청장 김홍섭)가 105년이나 된 건축물을 지난 5월 30일 부쉈다. 중구는 이 부지에 주차장을 만들 계획이다. 한국 근대산업의 유산이 허물어지는 걸 지켜본 시민들은 분노했다.
이에 앞선 지난 5월 29일 시민단체들과 문화예술인 등은 '중구는 인천의 대표적 산업유산인 애경사 관련 건물 철거계획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중구가 송월동 동화마을의 주차장을 확보하기 위해 1912년에 건립돼 애경비누공장(애경사 운영)으로 사용됐던 건물을 철거할 예정"이라면서 "역사문화자원을 보전하고 관리해야 할 업무를 가지고 있는 중구가 근대문화재에 준하는 건축물 철거에 앞장서고 있다"라고 질타했다.
중구가 철거해 주차장으로 만들려는 이 건물(송월동 2가 4번지)은 1902년 지도에서부터 등장한다. 손장원 재능대학교 교수는 "이번 철거 대상 건물 세 개 모두 1930년대에 세워진 것으로, 건축물로서 가치나 역사적 용도에 있어서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근대 건축물"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중구는 당초 계획한 철거 개시일(6월 2일)을 앞당겨 철거를 반대하는 이들이 성명서를 발표한 다음날인 5월 30일 오전 8시부터 철거하기 집행하기 시작했다. 철거를 반대한 이들은 5월 31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김홍섭 중구청장은 인천 근대산업문화유산 상습 파괴범'이라고 규탄했다.
이 기자회견에서 민운기(스페이스빔 대표)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간사는 "어제(5월 30일) 오전에 미리 도착해 막아보려 했지만 철거업체에서 이미 철거 준비를 해놓은 상태였다"라면서 "중구 일대는 개항기 이후 근대 산업 관련 문화역사유산이 산재한 곳이다. 이것을 살리기는커녕 없애버리고 있다. 민간에서 조사·연구해 전달한 자료조차 활용하지 않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인천시립박물관이 2012년에 인천 근·현대 도시유적을 전수 조사해 발표한 학술보고서가 있다. 발표한 지 5년이 지난 지금 많이 사라졌다"라며 "보고서에 담겼던 보존 리스트가 멸실 리스트가 되고 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한 "2015년에는 중·동구 주민들이 이 일대 골목을 돌아다니며 방치된 건물과 장소를 조사해 '숨은 보물찾기'라는 제목으로 108개를 정리해 지도를 제작했다. 관에서 해야 할 일을 민간에서 만들어줬는데도 정책에 반영하기는커녕 오히려 파괴하고 있는 게 무능력한 행정의 현주소"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중구 관계자는 한 지역일간지와 한 인터뷰에서 "주차장 조성 계획이 진행되는 동안 이곳이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는 의견을 준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희환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공동대표는 "민간단체에서 이렇게 조사·연구해 알려줘도 의견을 준 사람이 없다고 말한 것이 기가 막힌다"라면서 "이게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어 임복진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운영위원은 '중구의 반(反)문화적 관광행정 사례'를 설명했다. 그는 "2012년에 남한 최초의 소주 공장인 '조일양조장'이 철거됐다. 고작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100여 년의 역사적 건물을 무너뜨리고 그곳에 표지석을 세웠다. 앞뒤가 맞는 일인가?"라고 개탄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이밖에도 신포동 동방극장과 국일관 건물 철거와 근대 문화재인 답동성당 주변 개발 사업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5월 30일 기습적으로 진행된 철거에 뒤늦게 인천시가 공사 중지 명령을 내리고 조동암 정무부시장이 현장에 도착해 건물 철거는 중단됐다. 하지만 건물은 대부분 허물어진 채 벽면만 남아있는 상태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남은 건물 일부라도 보전해 문화재 보전의 중요성을 알리는 역사현장으로 남겨야 한다"며 "인천 전역에 남아있는 근대산업 문화유산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이에 따른 체계적인 보전대책을 민관·전문가 합동으로 실시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