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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강사가 수업 중 학생에게 폭언하고 때리기까지 한 일이 문제 되자 사과를 했지만 '선배의 진정성' 운운하며 양해를 구하는 선에 그쳤다. 학교 측은 별다른 조치를 취할 계획이 없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지난 5월 20일 페이스북 '한국외국어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 제보가 올라왔다. 내용은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학생을 때렸다", "그밖에도 각종 외모 비하 발언, 폭언, 중국인 비하 발언 등등 수도 없이 많다"며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여러분의 조언을 구한다"는 것이었다.

해당 게시글에는 어떤 수업인지 이름이 나와 있지 않았으나, 몇몇 학생들은 특정 수업을 지목하며 "논란이 될 줄 알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 정도로 학내에 알려져 있다는 얘기였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광고 일부. 글로벌 융복합을 지향하는 한국외대에서 시간강사 김아무개씨는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광고 일부. 글로벌 융복합을 지향하는 한국외대에서 시간강사 김아무개씨는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했다.
ⓒ 한국외국어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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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못하면 등 때리고... "예쁜 여잔 엉덩이 쿠션감 좋나?"

취재 결과 해당 강사는 2003년부터 한국외대에서 강의해온 시간강사 김아무개씨였다. 이번 학기 김씨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그가 수업시간에 각종 인격 모독, 외국인 비하, 성희롱성 발언을 수차례 해왔다고 증언했다.

우선 학생들은 김씨가 중국인 유학생에게 하는 차별적 발언이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김씨는 지난달 12일 한국말이 서툰 한 중국인 학생에게 "한국말도 못 알아듣는 놈"이라며 소리를 질렀다. 수업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너는 나가야겠다. 인마. 그게 공부하는 태도야? 너는 몇 학년이야. 응? 1학년? 중국에서 왔어? 뭐하러 왔어? 뭐하러 왔냐고. 이러려고 왔어? 응? 뭐 가지고 왔어. 지금. 공부할 준비가 뭐냐고. 나갈래 쫓겨날래 아니면 뭐 꺼낼래, (큰 소리로) 고개를 끄덕이면 뭐야 인마! 한국말도 못 알아듣는 놈이 아무런 대비도 없고, 공부할 준비도 안 되어 있고. 책이랑 노트랑 연필이랑. 노트도 없고? 앞으로 노트 없이 오지 마. 아니 이놈 자식들 너희들 나로 하여금 말이야 너희를 어른스럽게 대접할 수 있게 해줘."

같은 달 19일에는 또 다른 중국인 학생에게 "넌 왜 한국 사람처럼 생겼어. 중국사람 맞아?"라고 물으며 "잘생겼다 이런 뜻(에서 말했다)"고 덧붙이는 등 중국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45개의 전문화된 외국어교육을 바탕으로 인문, 상경, 사회, 법, 이공학을 아우르는 세계 수준의 글로벌 융복합 선도대학을 지향'하는 대학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성희롱성 발언도 있었다. 김씨는 지난달 19일 강의에서 '아이러니'라는 단어를 설명하다 질문에 답변을 못 한 학생에게 "너는 겉으로는 예쁘장하게 생겼는데 리얼리티는 전혀 아니다"라고 하는 한편, 그리스 신화 내용을 강의하면서 "우리가 조금만 살아보면 알지만 그렇게 생긴(예쁘게) 애일수록 싸가지가 없지?", "예쁜 여자가 뭐가 좋나? 어떻게 엉덩이의 쿠션감이 좋은가?" 등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을 이어갔다.

또한, 김씨는 학생들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거나 학생을 하대하는 듯한 호칭도 수시로 했다. 다수의 학생은 김씨가 질문에 대답을 못 하는 학생을 향해 "외대가 얼마나 망해가고 있는지 (알겠냐)"고 말하는 일이 수차례 있었다고 증언했다. 평소에 학생들은 부를 때 '정신 빠진 놈', '인마', '이 자식', '이 새끼'와 같은 부적절한 호칭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폭언 외에도 김씨가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했다는 제보도 이어졌다. 김씨의 수업을 수강했던 여러 학생은 그가 질문에 답하지 못한 학생들의 등을 때리는 것을 목격했으며, 수업에 늦은 학생에 대해서는 모든 학생이 보는 앞에서 손을 강하게 쥐어서 망신을 주었다고 전했다.

김씨로부터 이 같은 폭력을 당한 한 학생은 기자에게 "눈물 날 정도로 손을 꽉 잡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하며 "학생들 앞에서 그렇게 한 데에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장난, 농담이었다, 엄격하게 하느라 그랬다"

학생들이 폭언과 폭행으로 받아들인 말과 행위에 대해 김씨는 "큰 의미나 의도 없이 했던 일", "장난이 섞인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김씨는 지난달 29일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예쁜 여자가 뭐가 좋나? 어떻게 엉덩이의 쿠션감이 좋은가?'라고 한 발언에 대해선 "(그리스 신화를 설명하다) 아프로디테가 엉덩이가 큰 여자란 뜻이 있으니까 그랬다"며 농담으로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그는 학생들에게 부적절한 호칭을 사용한 것은 "애들하고 충분히 교감이 될 거로 생각했는데 내가 의사소통 기법이 잘못된 것"이라고 설명했으며 물리적 폭력 행사에 대해선 "대형 강의라 학생들이 통제가 잘 안 된다. 그래서 조금은 엄격하게 한다고 했던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중국인 학생에 차별적인 발언을 한 일에 대해 "영국 사람들은 '좋은 것을 보면 영국적이다'라고 하는데, 이런 얘기를 하다가 농담으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중국인 학생에게 '한국말도 못 하는 놈'이라고 말했다는 학생들의 증언에 대해선 "내가 어투가 강하긴 한데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했을 리 없다"고 부인했다. 기자들이 해당 발언 녹음파일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내놓은 해명이었다.

수업에서 공개사과 "선배의 진정성 이해해달라"

김씨는 논란이 커지자 문제가 된 수업 중 한 수업에서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대나무숲' 제보를 접한 대학 교무처장이 김씨를 면담한 후였다.

지난 26일 김씨는 강의를 시작하면서 약 5분간 "내 강의 스타일이 여러분이랑 안 맞았던 같다. 그 점에 대해서는 사과를 하겠다. 하지만 여러분 선생이고 선배로서 여러분을 대하는 진정성은 이해를 해줬으면 좋겠다"며 "언어 같은 측면에서 여러분이 용납이 안 된다면 반성을 하고 바꾸도록 하겠다"고 사과했다.

학교 측은 김씨의 사과로 사태가 일단락됐다고 보고 있다. 한국외대본부 관계자는 지난 25일 기자와 한 전화 통화에서 "김씨가 책임감을 느끼고 사과하겠다고 하니까 학교에서 조치를 취할 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학내 독립언론 <외대알리>의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hufsalli/?fref=t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외대, #외대폭력, #언어폭력, #외대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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