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 열흘이 지났다. 단양군농민회 손모내기 하고는 논에 오지 않았으니 여드레 만에 논에 왔다. 논물 빠지는 아랫다랑이가 영 마음에 걸리더니 역시나다.
가차없다. 하루라도 논물 보아주지 않으면 누가 대신 대어 주지 않는다. 게으른 농사꾼은 게으름에 대한 댓가를 치러야 한다. 그나마 우리 마을엔 큰 산인 금수산에 저수지가 있다. 왠만한 가뭄에도 부지런하기만 하면 논물을 댈 수 있다. 논물이 없어 모내기를 못하는 농민들, 모내기 후 논바닥이 말라 모가 죽어가는 농민들이 나를 보면 혀를 끌끌 찰 터이다.
그럼에도 올해는 이상스럽게 농사 짓기가 싫다. 민주정권이 들어섰어도 농민에 대한 얘기는 감감무소식. 서른 다섯에 농사 시작한 10년차 유기농 농사꾼은 진도 다 빠지고 농사법에도 회의가 든다. 알아주는 이도 별로 없는 유기농 어쩌구 하지만 트랙터로 논밭을 짓빠대면서 무슨 생명 농사 짓는다고 거들먹 거렸나.
부끄럽다. 거짓부렁이다. 식량주권? 그 전에 생명 주권이 먼저다. 인간이 먹고 산다는 핑계 아무리 대어보아야 인간에게 학살 당하는 뭇생명 입장에서는 다 개소리다. 혼란스럽다. 이 정도 타협은 어쩔 수 없다 했지만, 한 발만 먼저 가자 했지만 다 거짓부렁이다. 농사꾼 10년 만에 농사를 아예 모를 때보다 더 큰 수렁에 빠졌다. 어설프게 아는 건 모르니만 못하다는 건 진리다.
갈피를 못잡는 마음을 다스리려 5년 만에 다시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오라기의 혁명>을 꺼내 읽는다. 그의 농사법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보편타당한지는 의문이지만 그의 유기농과 관행농 비판은 옳다. 농업, 농사는 결국 자연을 파괴하고 약탈한 것이 맞다. 산업문명 전 단계에서도 마찬가지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영광에서 농사짓는 황대권 선생도 경향신문 칼럼에서 농업문명의 약탈성과 파괴성을 제기하고 있는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화전을 하고, 소와 말에 무거운 쟁기를 씌워 땅을 갈아 엎는 행위를 농업의 발달이라 예찬한다. 논에 물을 대고, 곤죽을 만들고 모를 키워 모내기 하는 이앙법이라는 수고로운 노동 또한 비판적으로 되돌아보아야 한다. 지금 트랙터와 이앙기, 콤바인으로 손쉽게 한다고 산업농 이앙법 논농사를 효율을 좇아 마냥 긍정만 해서도 안된다.
올해는 논에 거름을 넣지 않았다. 이제부터 뺄셈의 농사를 지어 볼 궁리를 한다. 아차하는 사이 지난 10년 수많은 덧셈을 했다. 그 결과 거름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석유를 먹는 온갖 농기계와 농자재가 가득 찬 비닐하우스 창고가 집을 둘러쌓았다. 고물상인지 쓰레기장인지 분간을 못하겠다.
땅도 자꾸 늘려 처음 시작할 때보다 두 배가 되었다. 6천 평이 넘는 땅을 어찌 다 건사할까? 석유 기계에 의존하는 농사법에 깊이 빠져들었다. 기계를 쓰니 땅을 늘리고, 땅을 늘리니 기계를 또 사들이고. 악순환이다. 정신줄 놓고 타협하고 또 타협하다보니 이리 되었다. 농사일에 허우적대다가 몸도 마음도 병들었다. 이러다 제 명에 못죽지 싶다.
비우고 빼야 한다. 뺄셈의 농사, 뺄셈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잘못된 길에 들어섰을 때는 주저 말고 일단 멈춰서야 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는 영영 바른 길을 찾지 못한다. 일단 멈춰서서 하나하나 다시 살펴보고 빼고 버리고 비우자. 우선 그것부터 해야 길이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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