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987년 6월 항쟁 30주년을 맞았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오마이뉴스>가 공동기획으로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 1987 우리들의 이야기' 특별 온라인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전시회 내용 가운데, 가상 시민 인터뷰와 시대적 풍경이 기록된 사진 등을 갈무리해 독자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 편집자 말대학가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는 40대 아주머니
오늘은 동네가 너무 조용해서 을씨년스럽네요. 경찰 물고문으로 대학생이 죽었다는 뉴스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아요.
대학교 근처 동네의 겨울은 유난히 쓸쓸해요. 여름방학 때랑 달라서 해도 많이 짧아지고 거리에 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네요. 낮에는 최루탄 소리에, 밤에는 술 마신 학생들의 고성방가에 시끌벅적한 동넨데, 겨울방학만 하면 이렇게 적막에 쌓이곤 하죠.
그런데 골목에서 서성대는 저 험상궂은 사내들은 뭐하는 사람들인가요? 경찰 같아 보이긴 하는데 우리 동네에서 왜 저러고 다니는지 모르겠어요. 눈에 불을 켜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펴보는 살벌한 눈빛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네요. 그럴 때마다 마음이 참 안 좋더라고요. 사람 많은 동네에서도 저러고 다니는데, 보는 눈이 없는 곳에선 오죽하겠어요.
아까 낮엔 우리 집 하숙생이 기별도 없이 고향에서 돌아왔어요. 개강 때나 돼야 다시 오곤 했는데 오늘은 좀 유별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학생이 저녁 먹으며 했던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도네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뉴스와 너무 다른 말을 하기에 입조심을 시키긴 했어요. 무서운 세상이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문이라니요. 경찰이 학생을 고문해서 죽이다니요. 그것도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말이에요.
출판사에서 근무하는 30대 직장인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요? 설마, 그 말을 믿어 달라는 건가요?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순 없습니다.
새해가 밝았지만 새로워진 건 하나도 없네요. 모든 게 뒤죽박죽이에요. 연말에 나왔어야 하는 책은 아직도 교정 중이고요. 올해 첫 책은 무엇으로 하면 좋을지 회의를 하다가 소식을 들었어요. 편집장이 낮부터 술이나 한 잔 하자네요. 하긴 술 없이 맨 정신으로 버텨내기가 어디 그리 쉬운 날들인가요.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고문이나 실종이 처음은 아니잖아요. 이번에 고문 받다 죽은 학생은 수배자도 아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엔 경찰이 좀 너무한 것 같아 보여요. 무고한 사람 끌고가 죽여 놓고 하는 변명이 너무 어이가 없잖아요. 소설의 핵심은 리얼리티예요. 리얼리티가 떨어지면 3류가 되기 마련이지요. 경찰이 B급이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거겠죠. 정말 참담한 심정이에요.
그런데 요즘 박종철 군 고문 사망 관련 뉴스가 확연히 줄어든 것 같아요. 김만철씨 가족 탈북 소식이 모든 걸 다 덮어버리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11명 가족이 한꺼번에 탈출한 사건이다 보니 다른 뉴스 가리기가 쉬운가 봐요. 그런데 그 가족이 마지막으로 향할 '따뜻한 남쪽 나라'는 어디쯤 있을까요. 차가운 겨울바람에 매서운 북풍이 겹으로 몰아치는 대한민국엔 언제쯤 따뜻한 봄날이 찾아올까요.
* 사진 출처 : 박용수, 경향신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