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987년 6월 항쟁 30주년을 맞았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오마이뉴스>가 공동기획으로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 1987 우리들의 이야기' 특별 온라인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전시회 내용 가운데, 가상 시민 인터뷰와 시대적 풍경이 기록된 사진 등을 갈무리해 독자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 편집자 말커피숍을 운영하는 40대 사장님
처음엔 놀랐죠. 그 많은 사람이 매일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것에 놀랐어요. 그런데 사람 숫자가 점점 늘어나더라고요.
최루탄이 그렇게 많이 쏟아지는데도 물러서지도 않더라고요. 그때 알았어요. 이번엔 우리가 이길 수 있겠다는 걸... 물론 불안감이 다 사라졌던 건 아니에요. 이러다 사람들이 더 희생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더라고요. 광주에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서울에서도 그러지 말란 법은 없잖아요. 양손에 피를 묻혔던 사람들 속을 어찌 알겠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았어요. 우리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게 되면 누가 대통령이 될지 중학교 다니는 우리 아이도 알 수 있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던 노태우의 발표 내용이 믿기지 않았어요. 그냥 믿기엔 지금까지 그들이 쌓아 온 업보가 너무 많았죠.
정말 기뻤어요. 더 이상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기뻤어요.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게 됐다는 사실도 믿어지지 않았고요. 우리 커피숍에 들어오는 손님들은 벌써 헌법 개정과 대통령 선거 이야기로 신이 나 있는 것 같아요. 오늘은 6월 29일이에요. 잊을 수 없는 정말 좋은 날이죠. 그래서 오늘 하루 커피가 공짜예요.
20대 초반의 대학교 신입생
제가 지금 있는 곳은 학교가 아니라 감옥이에요. 6월 초에 선배들을 따라 거리 시위에 갔다가 백골단한테 잡혀 여기까지 끌려 왔어요.
닭장처럼 생긴 전경버스에 끌려가 두들겨 맞을 땐 정말 눈앞이 깜깜했어요. 매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고요. 경찰서에서 조서를 쓸 때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어요. 형사가 이것저것 묻길래 아는 대로 대답해 줬는데, 내가 읽은 책이 문제가 된 모양이더라고요.
우리 역사랑 사회과학 책을 읽으면 죄가 되는 세상이래요. 나는 지금 좌경 빨갱이라는 죄목으로 교도소에 갇혀 있어요. 여기는 또 하나의 세상인 것 같아요. 어제부터는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지금 저랑 같은 방을 쓰는 제소자 중에 바둑을 정말 잘 두는 형이 한 명 있는데 정말 고수거든요. 그 형은 못하는 게 없는 만능인 같아요.
다음 주부터는 양심수 형님들이 단식을 시작할 예정이에요. '민주 회복과 재소 환경 개선'이 목적이래요. 형님들이 징벌방으로 끌려가면 두 번째 단식이 이어질 거예요. 그땐 저도 참여하려고요.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밥 굶는 건데 여기선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요. 전두환이 빨리 물러갔으면 좋겠어요. 나도 밥 많이 먹고 맘 편히 공부 좀 하고 싶어요. 여가 시간엔 여기서 배운 바둑도 두고 싶고요.
* 사진 출처 : 박용수, 경향신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