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서구의 학문'이라는 생각은 꽤나 보편적이다. 오늘날 동양 출신으로 노벨상을 수상하는 학자들이 많이 배출되며 이런 관념이 많이 희석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과학혁명이 시작된 무대와 이후의 발전사, 그리고 그로인한 사회의 급변이 이루어진 장소는 모두 서구였다. 이 때문에 동양은 과학이라는 극에서 조연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흥미롭다. <회남자&황제내경: 하늘, 땅, 인간 그리고 과학>은 철학자 강신주가 동양 전통 '과학사상'의 근간을 형성하는 데에 핵심이 되었던 두 고전에 대해 논하는 저서이다. 과학관의 토대를 이룬 <회남자>와 의학관의 기초를 만든 <황제내경>이 그 대상이다.
이들이 어떻게 쓰여졌고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통해, 과거 동양인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틀이 되었던 '유기체적 세계관'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이 서구 과학의 뿌리가 된 '기계론적 세계관'과 어떻게 차별화 되는지에 대한 담론이 이어진다. 즉, 동양에서도 독자적인 과학의 뿌리가 존재했음을 오늘날에 재발견 해보려는 시도이다.
태극에서 시작되는 세계의 조화
유기체적 세계관의 핵심은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 및 시공간들의 '질적 분화'와 '상보적 관계성'으로 규정될 수 있다. <회남자>에서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세상은 음과 양의 두 기(氣)를 근간으로 한다. 태극 무늬에서 두 주축으로 등장하는 이들이다. 음과 양은 대상에 따라 머무는 비율이 다르다. 땅은 온전히 음의 기운만으로 차있고 하늘은 양의 기운으로만 구성된다.
천둥, 비, 태양 등의 자연현상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은 각기 다른 음양의 비율을 통해 형성된다. 그리고 그 비율의 차이가 그들이 서로 합치될 수 없는 질적 차이를 만들어 낸다. 시공간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질적 특성들은 오행(五行)이라는 범주로 체계화 되는데, 이것이 곧 우리가 흔히 들어본 '음양오행'을 뜻한다.
한편 이런 질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음양을 바탕으로 형성된 존재들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이어진다. 이를 '오행상생설'이라 칭하는데, 가령 나무(木)가 불을 생기게 하고, 불(火)이 흙을 생기게 하며, 흙(土)이 쇠(鐵)를 생기게 한다고 보는 입장이 대표적이다.
이는 유기체적 세계관으로 이어진다. 세상은 이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거대한 통일체라는 생각이다. <황제내경>은 그런 유기체적 관념이 인체에도 적용된다고 본 의술서다.
이 같은 동양의 전통 세계관은 서양의 근대 사상과 완벽히 배치된다. 뉴턴과 갈릴레이를 기점으로 서구의 지성계는 우주부터 시작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구성양식을 취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기에 통일된 수학공식과 과학이론이 사용 및 연구되는 토대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또한 존재들 사이의 유기적 관계라는 관념도 부재했다. 이는 특정 대상에 대해 논할 때는 그 대상에만 집중한다는 접근방식을 보편화 시켰다. 현대의학이 질병의 발생시 문제시되는 신체 부위만을 한정적으로 검사, 치료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중국을 모태로 하여 동양에도 세계를 바라보는 고유의 틀이 있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의 경험에서 나온 것을 체계화한 이론이었고, 핵심에는 '질적으로 다른 것들의 유기적 결합'이라는 대전제가 있었다. 허나 그것은 서구의 과학혁명을 가능케한 환경과는 정반대의 것이었고, 그렇기에 동양과 서양의 과학사는 양자의 접촉 이전까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대과학의 대안인가 실체없는 망상인가동양 고유의 사상은 19~20세기 서구와의 격렬한 접촉을 거치며 빠르게 그 빛을 잃어갔다. 오랜 세월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던 관념들도 서구 물질문명의 우월함 앞에서 가치를 상실했다. 정약용은 '통일체'로서의 유기적 세계관을 부정한 뒤 무관계한 파편들의 '집합체'가 세계라는 서구의 입장을 지지했다.
음양, 기, 오행 등 <회남자>의 핵심적 개념들도 거부했다. 최한기는 근대적 수학과 실험도구를 활용해 자연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또한 인체를 다루는 <황제내경>의 방식을 거부하고 정밀한 기구들을 통한 신체 연구를 선도했다. 그렇게 서서히 동양 과학의 흔적은 곳곳에서 사라져갔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근래에 기계론적 과학관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며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의 발전은 '주관성을 떠난 객관적 현상'이라는 기계론적 방법론의 기초를 흔들기 시작했다. 이를 기점으로 서구에서 니덤같은 학자들은 '신과학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유기체적/시스템적 자연관으로 세계를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신과학운동의 기수들은 고대 중국의 과학에 강하게 매료되었다. 이들은 <중국의 과학과 문명>,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 등의 저작물들을 통해 "유럽은 지극히 오래되었으며 매우 현명하고 조금도 유럽적이지 않은 사고양식에 의지하게 될 것"이라며 동양적 과학관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적극 옹호한다.
하지만 앞에서 짧게 상술한 것에서도 드러나듯, 동양의 과학사상에는 분명한 한계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은 경험에 비해 지나치게 장대해진 사변화이다. 각 지역마다, 절기마다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음양과 오행의, 더 나아가 팔괘의 도면과, 그들을 통한 만물의 이해가 가능하다는 '주장'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현대인이 납득하기 힘든 논리적 비약이 가득하다.
서구는 과학이 경험을 수학과 논리학이라는 이성의 도구를 활용해 체계화되며 학문으로서의 압도적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반면 동양의 과학은 머릿속에서 신화적 상상력에 의해 확장되느라 충분한 기술력에도(나침반, 종이, 화약 등의 앞선 발명을 생각해보라) 유의미한 하나의 이론이나 사상이 전혀 형성되지 못했다. 이것이 저자 강신주의 바라본 동양 과학의 한계다.
이 책을 통해 일면 동양은 과학의 불모지라는 편협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면, 동시에 그럼에도 전통 사상이 현대에 그대로 적용되기란 불가능한 것이라는 확신 또한 느끼게 되었다. 판단은 책을 읽어나갈 개개인의 몫이다.
다만 과학의 대변혁이 예고되고 있는 최근에도 서구의 근대성 밖에서 존재하는 과학이라는 개념은 대다수 현대인들에게 생경하다. 과학을 시선을 비틀어 보는 계기는 반드시 필요할 것이고, 거기에 우리 선조들이 가졌던 과학관은 유의미한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