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장미와 데이지가 어우러진 담양 죽화경. '숲속의 전남' 만들기를 추진하고 있는 전라남도가 지정한 민간정원이다.
 장미와 데이지가 어우러진 담양 죽화경. '숲속의 전남' 만들기를 추진하고 있는 전라남도가 지정한 민간정원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나만의 정원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정원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죠. 10여 년 전부터 죽화경을 가꿔 왔는데, 주변 사람들의 재촉에 못 이겨 문을 열기 시작한 게 벌써 4년 됐네요."

'대나무고을' 담양에서 민간정원 '죽화경'을 운영하고 있는 유영길(50) 씨의 말이다. 유씨는 정원 디자이너다. 2013년 열린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서 한국전통 정원을 재구성한 기업정원 'The castle&Line'으로 호평을 받았다. 우리 전통의 견고한 성을 바탕으로 부드러운 선과 공간의 여백을 강조해 입체적으로 디자인한 작품이었다.

민간정원 죽화경을 일군 유영길 씨. 유 씨가 지난 1일 죽화경을 꾸미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민간정원 죽화경을 일군 유영길 씨. 유 씨가 지난 1일 죽화경을 꾸미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유영길 씨가 지난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출품한 기업정원. 박람회가 시작되기 직전의 모습이다.
 유영길 씨가 지난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출품한 기업정원. 박람회가 시작되기 직전의 모습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전라남도 담양군 봉산면 유산리 산자락 1만2611㎡에 들어앉은 죽화경은 대나무와 장미, 들꽃 등으로 어우러져 있다. 100여 종의 장미와 은사시나무 등 나무 250종, 데이지 등 수십 가지 꽃이 한세상을 이루고 있다. 전통의 나무와 아름다운 현대 꽃의 조화다.

정원의 모태인 1만 개의 대나무는 인생이란 긴 시간을 의미하고 있다. 장미를 받쳐주는 365개의 기둥은 일 년 사계절의 변화를 표현하고 있다. 강직하면서도 부드러운 대나무의 고장 담양의 이미지를 연출했다. 그 사이로 조그마한 냇물이 흐른다. 정원에서 책을 볼 수 있는 정원북과 잔디광장도 뒀다. 정원 전체가 하나의 작품인 셈이다.

죽화경에는 꽃과 나무에 대한 설명 팻말이 없다. 대신 유영길 씨의 자연에 대한 느낌을 담은 정원북이 설치돼 있다.
 죽화경에는 꽃과 나무에 대한 설명 팻말이 없다. 대신 유영길 씨의 자연에 대한 느낌을 담은 정원북이 설치돼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대나무를 기둥으로 삼은 죽화경의 장미정원. 대나무의 고장 담양의 이미지를 연출했다.
 대나무를 기둥으로 삼은 죽화경의 장미정원. 대나무의 고장 담양의 이미지를 연출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죽화경에는 수목원 같은 데서 으레 볼 수 있는 꽃과 나무의 설명 팻말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어린이들이 설명판에 연연하고, 부모들이 그걸 읽어보도록 강요하는 경향이 있어서 부러 매달지 않았다. 꽃과 나무, 그리고 정원을 가슴으로 느끼면 충분하다는 게 유 씨의 생각이다. 죽화경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죽화경은 전라남도가 '숲속의 전남' 만들기 사업의 하나로 생활 속 정원을 찾아서 지정한 제2호 민간정원이다. 한국관광공사에서 가볼만한 곳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담양-고창을 잇는 호남고속국도 우회도로가 죽화경 옆을 지나면서 내지르는 소음이 옥의 티다. 전라남도와 담양군이 한국도로공사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고 있다.

장미와 데이지가 한데 어우러진 담양 죽화경. 인공적이지 않고 자연스런 멋이 묻어난다.
 장미와 데이지가 한데 어우러진 담양 죽화경. 인공적이지 않고 자연스런 멋이 묻어난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노란 창포와 하얀 데이지가 줄지어 핀 죽화경. 그 사이로 길이 다소곳이 나 있다.
 노란 창포와 하얀 데이지가 줄지어 핀 죽화경. 그 사이로 길이 다소곳이 나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제 아버지께서 산림직 공무원이셨습니다. 어깨 너머로 배운다고, 어렸을 때부터 꽃과 나무에 관심이 많았어요. 오래 전 도서관에서 책을 통해 국제정원박람회를 알게 됐죠. 박람회 출품작으로 초가와 장독대, 꽃이 어우러진 한국정원 사진도 봤고요."

유씨의 나이 20대 때였다. 아버지는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지만, 정원에 대한 그의 관심은 더 깊어만 갔다. 정원박람회에 출품된 우리나라의 정원 사진을 보고 무시당하는 느낌마저 받았다. 자신이 하면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유씨는 검정고시를 통해 들어간 대학에서 유전공학을 전공했다. 식물의 육종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내친 김에 조경학과 대학원까지 다녔다. 한편으로는 증권과 펀드 관련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보란 듯이 제대로 된 정원을 만들 생각으로 열심히 뛰었다.

하얀 데이지와 노란 창포가 숲과 어우러져 한세상을 이루고 있는 죽화경 풍경. 죽화경은 전라남도가 지정한 민간정원이다.
 하얀 데이지와 노란 창포가 숲과 어우러져 한세상을 이루고 있는 죽화경 풍경. 죽화경은 전라남도가 지정한 민간정원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죽화경을 찾은 관광객이 파라솔이 설치된 정원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6월 1일 오후다.
 죽화경을 찾은 관광객이 파라솔이 설치된 정원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6월 1일 오후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지금의 죽화경 터를 처음 사들인 건 1990년대였다.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터를 조금씩 넓혀갔다. 나무와 꽃도 하나씩 심기 시작했다. 급하게 마음먹지 않고, 혼자서 틈나는 대로 했다. 자연을 소재로 글을 짓고 나무판에 적어놓은 정원북도 설치했다. 학교 다닐 때 크고 작은 대회에서 상을 휩쓸다시피 했던 그의 예능 감각을 발휘했다. 속된 말로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했다.

"정원의 콘셉트를 기(氣)의 충천으로 잡았어요. 동양의 상징 대나무와 서양의 상징 장미를 조화롭게 배치했죠. 데이지는 수채화 분위기를 내려고 했고요. 잔잔한 울림이 전해지도록 여백도 두고요. 인위적이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출하려고 했습니다."

죽화경에 담긴 유씨의 구상이다. 값비싼 정원수나 석물로 채워지는 정원이 아닌, 살아 있는 생명으로 가득 찬 정원을 그렸다. 수익을 생각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라남도의 민간정원으로 지정된 담양 죽화경. 정원디자이너 유영길 씨가 자연미를 최대한 살려 가꾼 정원이다.
 전라남도의 민간정원으로 지정된 담양 죽화경. 정원디자이너 유영길 씨가 자연미를 최대한 살려 가꾼 정원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죽화경에서 만난 버드나무. 암수가 한데 어우러져 다산목으로 불린다.
 죽화경에서 만난 버드나무. 암수가 한데 어우러져 다산목으로 불린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우리의 정원은 자연과 인간을 따로 떼어놓지 않았어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전통과 현대미가 한데 버무려지는 예술 정원을 만들고 싶어요. 보고 따라서 할 만한 정원이 없어서, 작업이 힘든 게 사실입니다. 모든 걸 혼자서 다 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제가 해야죠."

유씨는 죽화경을 갖가지 체험 활동과 함께하는 우리나라 정원의 본보기로 만들 생각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묵묵히 할 생각이다. 이제 걸음마 단계인 우리나라 정원산업 발전에도 작지만 보탬이 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나무와 꽃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담양 죽화경. '숲속의 전남' 가꾸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전라남도가 지정한 민간정원이다.
 나무와 꽃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담양 죽화경. '숲속의 전남' 가꾸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전라남도가 지정한 민간정원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태그:#죽화경, #민간정원, #유영길, #정원디자이너, #장미데이지축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