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대병원이 백남기 농민 사망 262일 만에 진단서에 적힌 사망 원인을 기존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했습니다. 병원 측은 이번 사인 변경이 "정치적 이유 때문은 아니"라 해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망의 종류는 선행 사인(원사인) 기준으로 선택한다'는 대한의사협회 지침과 유족·의학계·시민단체의 강한 비판에도 그간 백 농민의 사인을 '병사'라 고집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대병원이 '박근혜 정권 눈치'를 봐 왔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사망진단서를 정정한 시점이 감사원의 병원 예비감사 시기와 맞물려있다는 점은, 이 같은 행보가 전문가적 양심이 아닌 정치적 고려에 따른 것임을 의심케 합니다.
조중동 보도량 나란히 1건, 1면 보도도 '없음'관련 보도량은 경향신문 6건, 한국일보 4건, 한겨레 3건 순으로 많았으며, 조중동은 모두 각각 한 건의 보도를 내놓았습니다. 관련 보도를 1면에 배치한 것도 경향신문과 한겨레, 한국일보 뿐이었습니다. 조선일보는 관련 보도를 2면에, 동아일보는 12면에, 중앙일보는 14면에 배치했습니다.
사설을 내놓은 것은 경향신문 뿐입니다. <사설/백남기 병사에서 외인사로 변경, 이젠 진상 규명할 차례>에서 경향신문은 유족에 위로를 전하며 "다음 순서는 진상규명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고인을 죽음에 이르기 헸는지 밝혀야 한다" "고인의 사망원인이 병사로 둔갑하게 된 과정도 조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과학적으로 사인 밝힐 기회, 유족 부검 거부로 사라졌다는 조선 조선일보의 경우 보도 내용에서의 문제점이 더 두드러졌는데요. <정권 바뀌자… 서울대병원, 백남기 사망 원인 병사→외인사 로 수정>(6/16 이기훈·윤수정 기자 https://goo.gl/fJn7RG)에서 조선일보는 "백씨의 사인은 처음부터 논란이 됐다"며 백씨의 사인과 관련한 '논란'을 주치의와 유족, 그리고 의료계의 입장을 들어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습니다.
"당시 주치의였던 백선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사인을 '병사'라고 판단했다. '환자 측이 연명 치료를 중단하기로 했고 결국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는 이유였다. 유족 측과 일부 시민단체는 '경찰이 쏜 물대포 때문에 사망한 것'이라며 '외인사'가 사인이라고 주장했다. 의료계에선 '부검을 통해 사인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으나 유족 측이 거부했다. 과학적으로 사인을 밝힐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해당 구절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구절은 "의료계에선 '부검을 통해 사인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으나 유족 측이 거부했다. 과학적으로 사인을 밝힐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입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완전히 다른 서술입니다.
우선 서울대병원의 백남기 농민 '병사' 주장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이미 지난해 10월 5일 입장문을 내고 "협회가 발간한 진단서 등 작성․교부지침에 따르면 사망의 종류는 직접적인 사인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선행 사인으로 결정해야"하는데 "고인의 경우 선행 사인이 '급성 경막하 출혈'인데 사망의 종류는 '병사'로 기재돼 있다"며 "외상성 요인으로 발생한 급성 경막하 출혈과 병사는 서로 충돌하는 개념"이라 지적한 바 있습니다. 국제기구인 WHO의 지침 역시 '사망원인에는 질병, 손상, 사망의 외인을 기록할 수는 있지만 심장마비, 심장정지, 호흡부전, 심부전과 같은 사망의 양식은 기록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울대학교를 비롯해 전국 의대생·간호대생·약대생·한의대생들과 동문들 역시 서울대 병원의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에 대해 해명 및 수정을 촉구하는 성명을 연이어 발표한 바 있습니다. 즉 의료계의 '주된' 입장은 유족과 마찬가지로 백 농민의 사인이 '병사'가 아닌 '외인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부검을 통해 사인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을 가장 전방위적으로 펼친 것은 의료계가 아닌 검찰과 경찰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마치 '전문성을 지닌 집단'은 '병사'와 '부검'을, '뭘 모르는 유족과 일부 시민단체'는 '외인사'를 주장한 것처럼 사실관계를 왜곡해 전달하고 있습니다. 물론 조선일보는 '병사' 판단이 대한의사협회 진단서 등 작성 교부지침을 위반한 것이라는 사실 역시 전혀 전달하지 않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조선일보는 "과학적으로 사인을 밝힐 기회가 사라진 것"이라며 유족의 부검 거부 때문에 마치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고 있기도 한데요. 협회와 국제 기준에서의 지침을 어긴 진단서가 발부되는 나라에서 "과학적"인 부검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요? 당시 상황에서 유족의 결정은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것이었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6월 16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신문 지면에 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