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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연일 폭염 경보가 날아듭니다. 숨만 쉬어도 열나는 요즘, 옷이라도 시원하게 입고 싶은데 따가운 시선이 돌아옵니다. '쿨비즈' 외치더니 반바지는 안 된다는 직장 상사, 노브라로 다니면 역정 내는 할아버지, 반소매 티셔츠 입으니 제모 안 하냐고 묻는 친구까지. 그야말로 '시원한데 열불나는' 사례들을 모았습니다. 타인의 옷차림을 재고 따지는 건 이제 그만! [편집자말]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관련 활동을 펼치는 '불꽃페미액션' 회원들과 여성의 옷차림을 규정하는 불편한 시선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속바지, 노브라 등등... 소재는 무궁무진했다.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관련 활동을 펼치는 '불꽃페미액션' 회원들과 여성의 옷차림을 규정하는 불편한 시선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속바지, 노브라 등등... 소재는 무궁무진했다. ⓒ pixabay

속바지, 왜 입어야 해?

"고등학교 때 여고였거든요. 선생님들이 속바지 좀 입으라고 막 그랬었어요. 편하게 앉으면 책상 밑으로 허벅지 다 보인다고 하면서요. 치마를 위해서 속바지도 입어야 되고 항상 정자세로 앉아야 되는..."

중학생, 고등학생 때는 교복치마를 입고 등교했다. 중학생 때에는 교복바지를 하나 맞춰서 가끔 교복바지를 입고가긴 했지만, 그래도 치마를 입을 때가 더 많았다. 교복치마를 입는 날에는 엄마가 매일 아침 내가 속바지를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검사했다.

"그러다 누가 보면 어떡해."

속바지를 입어야 하는 것은 보온이나 보호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누가 치맛속을 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내 치맛속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속바지를 입지 않은 내가 문제라는 것처럼 말했다. 치맛속을 봤는데 팬티가 아니라 속바지가 보여야 내가 더 안전하다는 것인가? 나는 납득이 잘 안 갔지만 반박할 수도 없어서 그때마다 속바지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여름은 더 심했다. 치마 속 온도가 올라가서 땀이 차더라도 나는 엄마의 눈치를 보느라 속바지를 꼭 입었다. 어쩌다 속바지 검사를 하지 않아서 몰래 속바지를 입지 않고 등교하는 날이면 가랑이가 얼마나 시원하고 짜릿하던지!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관련 활동을 펼치는 '불꽃페미액션' 회원들과 여성의 옷차림을 규정하는 불편한 시선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속바지, 노브라 등등... 소재는 무궁무진했다.

"브라 안 하면 안 추워"? 말이야 방구야

"겨울에 노브라였는데 안 춥냐고 물어본 남친이 있었습니다."

"여름에 노브라로 다녔다가 어떤 할아버지가 엄청 크게 '다 보인다'고 말하셨어요."

"최근에 노브라 민나시 입고 올해치 시선강간 다 당했습니다. 젖꼭지 좀 보이는 게 뭐 그리 문제라고 가게 점원부터 길가는 사람들까지 다 한 번씩 저랑 눈이 마주치더라고요."

겨울에는 상대적으로 노브라로 다니기 편하다. 옷이 두꺼워서 젖꼭지가 겉으로 잘 티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에는 브라를 안 하면 뭔가 허전해서인지 추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노브라에 익숙해지자 추운 것은 기분탓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작년부터 여름에도 노브라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해 6월, 알바노조에서 활동하면서 국회 앞에서 단식 노숙농성을 했다.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을 위해서였다. 밥도 못 먹어서 배고프고 지치고 건강이 악화되는데 답답한 브래지어까지 입고 있기 싫었다. 그래서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지냈다.

하지만 겉으로 티 나는 건 싫어서 늘 진한 색 티셔츠를 입었다. 진한 색 티셔츠를 입으면 상대적으로 젖꼭지가 덜 드러났기 때문이다. 어쩌다 밝은색 티셔츠를 입어서 젖꼭지가 보일 것 같으면 알바노조 조끼를 덧입었다. 더웠지만, 민망한 시선을 마주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물론 같이 단식했던 두 명의 남성들은 별다른 속옷을 챙겨입지 않은 채 흰 티셔츠를 자주 입었다. 젖꼭지가 비치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 자유를 나도 누리고 싶었다.

색색의 브래지어들 어떤 사람은 브래지어를 착용할까 말까 고민이라는 나에게 '불편하면 입지 말고 시선을 감내하고, 시선이 더 불편하면 그냥 참고 입으라'고 말했다.
색색의 브래지어들어떤 사람은 브래지어를 착용할까 말까 고민이라는 나에게 '불편하면 입지 말고 시선을 감내하고, 시선이 더 불편하면 그냥 참고 입으라'고 말했다. ⓒ pixabay

어떤 사람은 브래지어를 착용할까 말까 고민이라는 나에게 '불편하면 입지 말고 시선을 감내하고, 시선이 더 불편하면 그냥 참고 입으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쩐지 찜찜하다. '시선'의 권력은 어디에 있는가. 분명히 존재하는 가슴을 브래지어로 가려야 하는 여성들은 늘 시선의 대상이 된다.

2001년 가수 조영남은 딸의 가슴이 예쁘다고 언급하면서 여자들은 젊었을 때에는 가슴을 가리고, 늙어서는 간수를 안 한다고 말해 빈축을 샀다. 우리가 가슴을 가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있다. 조영남처럼 여성의 가슴을 아름다운 것, 성적인 것으로만 보는 시선 때문이다. 성적대상화를 당하는 여성들은 불편해도 가슴을 가리는 게 차라리 편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여성들이 더운 여름에 답답한 브래지어를 입는 건 이런 시선을 견디기 어려워서다.

여성의 가슴은 그렇게 '야한 것'이 되었다가도, 전혀 다른 이미지로 소비된다. 모유 수유하는 엄마의 가슴은 모성애의 상징이다. '야한 것' 취급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늙어서는 '간수해야 할 것', 다시 말하면 보이면 안 되는 것으로 취급받는다. 철저히 이성애자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몸을 바라본다.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이렇게 남성중심적이다.

남자는 탈의, 여자는 노출?

벌써 날씨가 많이 더워졌다. 문자로 폭염주의보가 날아온다. 더울수록 시원하게 몸을 드러낸 옷들을 입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하지만 나는 아침마다 옷을 입을 때 핫팬츠나 민소매 옷을 입었다가도 금방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거울에 보이는 내 모습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몸을 드러냈을 때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기 때문이다. 나처럼 여름에 짧은 옷들을 입는 것이 꺼려질 때가 있는지, 혹시 있다면 어떤 경험 때문인지 불꽃페미액션 액션단들에게 물어보니 별별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팔에 살 있는데 어떻게 민소매 입냐고. 본인들이 원하는 몸이 아니면 가리길 바라는 거..."

"마침 민소매에 좀 짧은 팬츠 입고 나왔는데 벌써 대여섯 명의 아저씨들이 다리를 훑고, 미묘한 시선을 보내고. 두 명의 남자 청년들이 '저기요' 하고 따라붙었어요. 결국 저녁에 추울까 봐 가져온 셔츠를 허리에 묶었습니다."

"저는 나시에 얇은 카디건 입는 거 좋아하는데 매년 부모님한테 욕 먹는 거 같아요. '질 낮아 보인다'고. 옷이 잘못된 게 아니라 사람들이 너 무시하고 평가한다고."

"반팔 입었을 때는 제 동기 중에 한 명이 제모 안 하냐고 물어보기도 했고요. 동기 중에는 본인이 짧은 옷 입은 모습을 보기 싫다고 일부러 긴팔 긴 바지 입고 다니는 사람도 있어요."

"강남역 살인 사건 추모제 때 앉아 있는데 속옷 보인다고 친절히 말해준 남자 있었습니다. 브이넥 입었는데 가슴골 보인다며 직접 손으로 가려주신 남자분도 만났어요.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네요. 너무 얼어서 제대로 반응도 못 했어요. 심지어 고맙다고 말한 것 같은..."

"여름에 노브라로 다니면 티 많이 나니까 할아버지들이 쳐다보고, 짧은 옷 입고 지하철이나 대중교통 타면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이 막 만져요. 살이 어쩜 이렇게 고와, 날씬하다, 허옇네, 안 춥니 등등. 나쁜 의도가 아니라 뭐라고 말하진 못하고 그냥 자리를 피해요."

여러 부침을 듣고나니 이 말이 떠오른다.

"내가 벗겠다는데 니들이 왜? 뭐?"

 땡볕아래에서 농구를 하는 불꽃여자농구팀
땡볕아래에서 농구를 하는 불꽃여자농구팀 ⓒ 이가현

그럼에도 우리는 벗고 싶다

불꽃페미액션에는 일요일 아침마다 농구코트에서 농구를 하는 불꽃여자농구팀이 있다. 가장 최근엔 서강대학교 농구를 했다. 날이 너무 맑고 햇볕이 쨍쨍해서 조금만 움직여도 탈진할 것 같았다. 헉헉거리면서 농구를 하고 자장면을 시켜 먹은 뒤 쉬고 있었다. 농구코트에 여러 남성이 와서 농구를 했다. 점심시간이라 아침보다 햇볕이 더 뜨거웠는데, 그 남성 중 한 명이 윗옷을 벗었다.

불꽃여자농구팀 멤버들은 그동안 "웃통 까고 할까?"라는 말을 농담처럼 주고받았지만 지금까지 윗옷을 벗고 농구한 적은 없었다. 여성이 상의를 벗으면 '경범죄'나 '공연음란죄'가 되어서 잡혀갈 것 같고, 당연히 우리의 가슴이 구경거리가 될 테니. '남성들은 더우면 훌렁훌렁 벗을 수 있어서 좋겠다'고 생각하며 우리는 일제히 한숨을 쉬었다.

민망함을 제쳐둘 때, 남성의 나체가 여성들에게는 위화감, 불편함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저 성기노출만으로 여성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 가능한 '바바리맨'이 존재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하지만 여성의 나체는 공포감을 조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함부로 쳐다보고, 만지고, 상상해도 되는 사물처럼 취급된다.

구글에서 상의 탈의를 검색하면 남성들의 상반신이 나오고, 상반신 노출을 검색하면 젖꼭지를 가린 여성들의 상체가 나온다. 남성은 '스스로 옷을 벗는' 주체이고, 여성은 '드러나서 보여지는' 객체로 여겨지는 것이다. 남성은 타의에 의해 노출되는 객체가 아니다. '탈의'와 '노출'에서 성별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언니미티드'라는 페미니스트 단체는 올해 3월에 열린 '페미답게 쭉쭉간다' 행사에서 브라보관소를 운영하고 '찌찌해방' 뱃지를 판매하면서 노브라를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언니미티드'라는 페미니스트 단체는 올해 3월에 열린 '페미답게 쭉쭉간다' 행사에서 브라보관소를 운영하고 '찌찌해방' 뱃지를 판매하면서 노브라를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 언니미티드 텀블벅 갈무리

'언니미티드'라는 페미니스트 단체는 올해 3월에 열린 '페미답게 쭉쭉간다' 행사에서 브라보관소를 운영하고 '찌찌해방' 배지를 판매하면서 노브라를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노브라를 실천하고, 속바지를 벗어던지고,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몸이 드러난 옷을 입거나 벗는 여성들의 실천은 보여지는 대상이기만 했던 여성들이 주체가 될 수 있는 경험이었다.

여성은 쇼윈도의 마네킹이 아니다. 사람이고 인격체다. 내 몸 좀 쳐다봐달라고 짧은 옷을 입는 것이 아니고 더워서 또는 옷이 예뻐서 벗거나 입는 것이다. 짧은 치마나 바지를 입은 여성을 봤다면 그냥 지나가시라. 어쩌다 옷 안에 드러난 젖꼭지를 보게 되면 그냥 당신이 보던 스마트폰이나 계속 보시라. 민소매를 입은 여성이 겨드랑이 제모를 했는지 안 했는지 궁금해하지 마시라. 여성들이 벌거벗고 길거리를 다닌다고 하더라도 성적인 대상으로만 소비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우리의 몸을 관람할 권리가 당신에겐 없기 때문이다.


#불꽃페미액션#노브라#속바지#노출#시선강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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