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도교육청은 아이들이 중심인 '잘 놀고, 잘 배울 수 있는' 유아 성장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또 인권이 존중되는 안전한 유치원, 소통하고 공감하는 유치원을 강조한다. 공교육 현장에서 유아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오마이뉴스>가 충남 유아교육 현장을 둘러보았다. 현장탐방은 오는 11월까지 월 두 차례 연재 예정이다. [편집자말] |
유치원 입구에 신발이 나란히 놓여 있다. 부여 마정초 유치원 원아는 모두 세 명이다. 그런데 아이들 신발은 열세 짝이나 된다.
유치원에 들어섰다.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교실 안에 가득하다.
"임천 유치원에서 왔어요.""장암 유치원에 다녀요."인근에 있는 임천초 병설유치원(원장 정희순)에서 3명, 장암초 병설유치원(원장 문제명)에서 7명 등 10명의 원아가 몰려왔다. 무슨 일일까? 아이들을 인솔하고 온 강현순 유치원 교사가 의문에 답한다.
"소규모 유치원들이 모여서 공동 수업을 하는 날이에요. 오늘 모인 아이들이 세 곳 유치원 전체 원생이거든요."3곳의 병설유치원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아이들은 공동수업이 낯설지 않은지 서로 손을 잡고 위아래로 뛴다. 아이들만의 반갑다는 인사법이다.
"올 들어 8번째 만나거든요. 지난달에는 모여서 병원 놀이를 같이 했어요."목욕에 빨래까지.. 엄마 같은 선생님이 있는 '유치원'
갈수록 원아들이 줄어들고 있다. 마정초가 있는 부여군 지역 면 단위 병설유치원 원아는 대부분 10명 미만이다. 임천초 유치원의 경우 지난해 5명에서 올해 3명으로, 장암초 유치원은 지난해 13명에서 7명으로 줄었다.
정은희 마정초 유치원 교사는 제법 규모가 큰 공주 지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지난해 이곳으로 왔다.
"와 보니 원아 수가 모두 5명이에요. 와글와글 시끌시끌한 곳에서만 일해 왔는데 여기는 너무 정적인 거예요. 신명이 나지 않았어요.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뭘 해야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죠."다행히 점차 시간이 지나며 곧 적응할 수 있었다.
"'그래, 재미있게 수업을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았죠. 할 일이 많았거든요. 아침밥을 안 먹고 오는 아이 밥 먹이기, 아침 일찍(8시 10분) 등원하는 아이들과 같이 운동하기, 간혹 목욕에 빨래도 하기도 해요... 엄마 같은 선생님이 제 역할이 되더군요"소규모 유치원만의 장점은 많았다.
"우리 학교 병설유치원은 만 3-5세까지 혼합반이거든요. 무엇보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두고 봐줄 수가 있어요."그래도 한계는 있었다.
"한 학부모집에 가서 아이를 우리 유치원에 보내 달라고 요청했더니 '3명 갖고 수업이 되겠냐'고 물어요. 좋은 점이 더 많다고 답했지만 다양한 경험을 하기가 부족하고, 특히 사회성이 떨어질 수 있는 단점이 있는 게 사실이었죠."고민 끝에 인근 소규모 병설유치원을 모아 협력 수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마정초 병설 유치원을 거점유치원으로, 임천초 병설과 장암초 병설이 동참하기로 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현장 학습이 가능해졌다. 아이들은 다양한 친구를 만나 사회성을 기를 기회가 생겼다. 올 들어서만 부소산 봄나들이에 뮤지컬 관람, 인형극 관람, 병원놀이 등을 함께 했다. 서로 배려하고 협력하는 교육이 가능해진 것이다. 교사 간 잦은 교류로 전문성도 향상됐다.
"한 달에 두 번꼴로 생활주제별 공동수업을 해요. 11월이 되면 많은 경쟁력을 뚫고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 응모한 것이 선정되어 미술 분야의 전문가인 교수님들이 오셔서 문화 예술교육도 할 예정이에요."소규모 유치원 공동수업으로 '고민 해결'
이날 공동수업은 '독서퀴즈대회'다. 사전 공지한 네 권의 책이 문제 출제 범위다. 퀴즈대회가 시작됐지만, 아이들 표정은 해맑기만 하다.
먼저 O, X 퀴즈대회가 열렸다. '금도끼, 은도끼에 나오는 주인공의 직업은 나무꾼이다'는 문제는 13명 전원이 답을 맞혔다.
'사지선다형' 문제가 시작되자 주변이 어수선하다. 살짝 정답에 해당하는 번호표를 골라 들어야 하는데 서로 답을 말하느라 바쁘다.
"선생님이 질문을 듣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던 답의 번호를 골라야 해요.""4번이요 4번!""아냐 2번이야!"아이들은 정답을 맞힐 때면 "와!"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헷갈릴 때면 살짝 옆 아이 것을 보고 번호표를 드는 아이도 있었다.
이날 전체 20문제 중 17개를 맞춘 3명의 아이가 상을 탔다. 세 곳 유치원에서 골고루 수상자가 나왔다. 상을 못 타 아쉬워하는 아이들에게 최승희 교사가 다짐하듯 말한다.
"2학기 때 '독서 골든 벨' 할 거예요. 그때 한 번 도전해 봐요."2학기 때에는 '독서 골든 벨' 외에도 궁남지 연꽃축제 관람, 어린이 교통공원 견학, 사과농원 견학, 영화관람 등의 공동수업이 예정돼 있다.
"방학 때도 아이들을 위해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어요. 사실 방학 때는 직접 반찬까지 사다 날라야 할 만큼 일이 많아요. 그렇지만 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어요. 재미있어요."강현순 장암초병설유치원 교사가 정 교사의 말을 거든다.
"작은 학교가 지원도 많고, 아이에게 관심도 많이 가져줘요. 하지만 학부모들은 아이를 읍내 큰 학교로만 보내려 해요. 너무 아쉬워요."
부여 마정초 황의태 교(원)장은 "유치원이 활성화되어야 초등학교가 산다"는 소신으로 유아교육에 관심을 쏟고 있다.
마정초 전교생은 14명이다. 지난해 16명에서 2명이 줄었다. 특히 올해는 1학년 신입생이 한 명도 없다. 반면 조리주무관, 교무행정사를 포함하여 교직원은 모두 16명이다. 학생보다 교직원 수가 더 많다.
작은 학교의 장점은 많다. 점심시간에 급식실 풍경은 이 학교의 강점을 잘 보여준다. 아이들 3~4명이 교사와 함께 앉아 식사한다. 유치원 교사는 아이들 입에 직접 밥을 떠먹이기도 한다.
"학생 수가 적어 개별화 교육이 가능해요. 교사들의 관심도도 높아요. 맞춤형 교육이 가능해요. 유치원을 예로 들면 발달수준에 맞는 맞춤형 교육이 가능합니다. 학교에서 방과 후 특성화 교육은 물론 특기적성교육까지 전담합니다"이 학교에서는 아침에는 뇌를 깨우는 운동과 게임 활동으로 하루를 즐겁게 시작하도록 돕는다. 방학 중에도 방과 후 교육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진다.
하지만 황 교장의 고민은 깊어진다. 그는 "농어촌 학교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지만 워낙 학생 수가 적어 한계를 느낀다"며 "유입 인구가 없고 가능성도 낮아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유치원 공동수업'과 같은 '공동교육과정 운영'을 대안으로 꼽았다. 이어 그는 "소규모 유치원의 경우 방학 때 단독 운영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로 연령별로 1개 면에 1개씩 단설유치원이 설립됐으면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초등학교 운영과 관련해서도 "소규모 학교를 분교화해 거점학교가 관리하는 방식으로 최소 인력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작은 학교도 살리는 대안 모색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교직원들이 전교생이 내 아이, 담임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며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읍내로만 보내지 말고 작은 학교를 믿고 아이들을 맡겨 달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