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직업상 기업들의 업무혁신(PI, Process Innovation) 프로젝트를 수행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개선 대상인 현행 업무의 문제점 분석을 통한 원인 도출입니다. 원인이 도출되면 그 해결책은 의외로 쉽게 풀리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원인 파악이 엉뚱하게 나오게 되면 해결책은 무용지물이 되기 마련입니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좀체 불황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가 혼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여 처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나 관료들은 경제 위기의 원인을 심도 있게 분석하기 보다는 설익은 해결책만을 남발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미국 국민들이 감당할 수 없는 빚에 기대어 과잉 소비가 주요 원인이라는 의견과 미국 은행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subprime mortgage loan)의 남발로 인한 것이라 의견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원인 분석은 표피적인 원인 분석에 그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국민들이 빚을 내서 소비를 이어간 이유는 무엇인지, 미 은행들이 위험을 안고 저신용의 국민들에게 무리하게 집을 담보로 대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 저자 로버트 라이시는 1930년 세계 대공황과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를 비교하며 현재의 대불황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하여 속 시원하고, 날카로운 분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소득 분배가 적정 수준에서 너무 크게 벗어나면 경제 조직을 재구성해야 폭넓은 중산층이 충분한 구매력을 확보해 장기적으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교훈...' (P41)조금 풀어보면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는 소득 재분배의 실패가 근본 원인이고 이를 해결할 방안은 중산층이 시장에 쌓여만 가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도록 실질 소득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라이시는 미국의 경우 총소득에서 상위 1퍼센트가 차지하는 몫은 세계공황과 세계경제위기 직전인 1928년과 2007년에서 모두 23퍼센트를 넘으며 최고치를 달했고, 미국의 대번영시대의 말기인 1970년대에는 8~9퍼센트의 최저치에 이르렀음을 여러 증거들 중에서 하나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소득분배의 실패가 근본 원인이라면 소득재분배 실패를 이끈 계기는 무엇인지가 또한 중요합니다.
'중산층 소득의 증가가 주춤해진 원인이 '세계화'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중략) 단순히 좋은 일자리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빼앗긴 것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바로 자동화였다. 전산화 시스템을 비롯한 새로운 기술 도구들은 사람이 하던 똑같은 업무를 휠씬 낮은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미국 내 수많은 공장들이 자동화 시스템으로 전환되면서 노동자들을 대거 해고했다.'(P91)저자는 빈부격차가 심화된 계기가 자동화라고 보고 있습니다. 자동화는 공장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빈곤층으로 전락하여 1970년대까지 미국 번영의 시대의 구매력의 버팀목이었던 중산층의 붕괴를 가져왔다고 주장합니다. 핵심을 찌르는 정확한 분석이라고 동의합니다.
1998년경 사회 초년생으로 경기도 군포에 있는 물류센터 단지의 어느 배송센터를 방문했을 때, 관계자가 최근에 도착지별로 배송물을 자동으로 분류할 수 있는 자동소팅시스템(Auto Sorting System)을 약 10억원을 투자해서 최근에 구현하였고, 작업자를 약 80명에서 20명으로 줄였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2000년를 기점으로 여러 분야에서 급속도로 공장의 자동화 및 정보시스템화가 진행된 점이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자는 '세계화'를 외국 노동자의 유입에 따른 일자리 구조변화만으로 보고 '세계화'를 소득분배 실패를 가져다 준 과정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외국 노동자가 경제에 미친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세계화'를 '신자유주의'의 산물로 본다면 빈부격차를 가져온 결정적인 정책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잠시 경제학의 흐름을 살펴보면 40대 중반 이후 분들은 학교에서 배운 '수정자본주의'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수정자본주의'는 1930년 대공황으로 종래 자유방임주의를 비판하고,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국가 정책, 소수 독점에서 자본의 대중화 등으로 미국의 1970년대의 대번영 시기를 이끌던 케인즈 학파의 경제이론입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부터 오일 쇼크 등으로 경제가 침체하자 다시 고전학파와 같은 뿌리를 가진 통화주의자들에 의해 과거로 회귀하여 자유방임주의의 주장이 고개를 들게 됩니다. '신자유주의'는 미국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만이 주창하고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과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실경제 분야에서 정책적으로 추진하면서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경제 체계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자유시장과 규제완화, 재산권을 중시하며, 경제의 규제를 전면적으로 완화하여, 쉬운 해고, 금융규제 철폐, 노동조합의 약화 정책으로 급격히 빈부격차를 심화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우리도 '신자유주의'를 세계적인 추세로 보고, 김영삼 정부를 시작으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구조조정이라는 이름하에 노동자들의 해고와 비정규직을 대량으로 양산하면서 중산층의 몰락을 가져왔습니다.
라이시는 마지막으로 불균형을 해결한 9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p197-p213 참고)
1. 역소득세 정책을 실시한다. 일정소득 이하의 중산층에게 정부가 일정 수준까지 현금 보전해주는 정책으로 구매력을 보장하여 경제의 선순환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근로장려금이 부족하나마 비슷한 정책으로 보입니다.2. 탄소세를 부과한다.3. 부자들의 한계세율을 인상한다. 일정소득 이상의 부자들에게 높은 비율의 소득세을 부과하는 정책으로 소득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는 근본적 대책입니다. 1951년 1980년까지 호황을 누리던 30년 동안의 미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70퍼센트에서 90퍼센트까지 달했고 경제 평균성장률은 3.7퍼센트였음에 반해, 1983년 대불황이 시작되었을 때 최고세율은 35퍼센트에서 29퍼센트, 평균성장률은 3퍼센트였습니다. 세계적으로 '부자세' 논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부자세'의 다소 징벌적 뉘앙스의 명칭이 반발을 더 크게 가져온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부자라서 내는 세금이라니? 일정 이상의 소득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에게 자신보다 소득이 적은 사람들을 도와 사회 기여에 이바지한다는 의미로 '기여세'라는 명칭으로 홍보한다면 보다 반발이 적어지지 않을까요? 어쩌면 자신이 '기여세'를 납부하는 것을 자랑스러워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4. 실업 대책이 아닌 재고용 대책을 세운다.5. 소득수준에 따른 학교 바운처 제도를 실시한다.6. 학자금 대출과 향후 소득을 연결시킨다.7. 전국민 메디케어 정책을 실시한다.8. 공공재를 활용한다.9. 정경유착을 지양하고 깨끗한 정치풍토를 마련한다. 미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공장의 자동화, 사무실의 정보시스템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와 '신자유주의'에 의한 쉬운 해고, 비정규직의 확대가 중산층의 몰락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중산층의 몰락은 실질 구매력을 가지는 유효 수요를 감소시키고, 기업은 매출이 떨어져 경쟁력을 잃게 되면서 경제가 선순환되지 못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라이시가 주장하듯 위기의 원인은 명확합니다. 소득분배의 실패, 가진 자들에게 너무 많은 부가 집중하여 더 이상 경제가 선 순환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득분배의 실패의 큰 동력의 축은 자동화와 '신자유주의' 정책입니다(라이시는 '신자유주의'를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으로 국가가 방임주의를 취할 때, 어떤 위기가 오는지를 두 번째로 겪고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이 흔히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경제체계는 항상 공정하고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자연의 법칙인지 의문시 됩니다.
경제는 국가의 정책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게 또는 누군가에게는 불리하게 적용되어지는 인공적이고 작위적인 체계가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경제정책의 목표는 국가 전체의 부를 최대화하는 것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건전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