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메시 이야기가 그려진 도자기
유리도자기박물관에 있는 도자기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길가메시 도자기다. 도자기에 길가메시 이야기가 그려져 있어 길가메시 도자기가 되었다. 그럼 길가메시는 도대체 누구일까? 그는 수메르인의 서사시 『길가메시』의 주인공이다. 그는 초인적인 힘을 가진 영웅으로, 우륵(Uruk)이라는 도시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그가 기원전 2,800-2,500년경에 살았던 수메르 왕으로 보기도 한다.
그래선지 나하반드(Nahavand)에서 출토된 이 도자기가 기원전 2,000-3,000년경에 만들어졌다고 적혀 있다. 도자기 상단부에 사냥하는 인물들이 그려져 있다. 그렇다면 길가메시가 숲속의 거인 훔바바(Humbaba)와 싸우는 모습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다. 배가 불룩한 이 항아리는 곡식을 넣어두는 용기로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주변에 동물 모양을 한 채도(彩陶)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아리아인이 이란고원으로 이주해 온 것은 기원전 2,000년경이다. 그들은 유목민으로 양, 염소, 낙타 같은 가축을 키우며 살았을 것이다. 그래선지 이들 동물이 도자기로 표현되고 또 만들어졌다. 이들 도자기는 물 등 액체를 담는 용기로 사용되었다. 납작하면서도 줄을 묶을 수 있도록 만든 소형 도자기도 있는데, 이것은 휴대용 물병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1,400-1,200경 수사에서 제작된 여인상 도자기를 볼 수 있다. 이들은 두 손으로 젖가슴을 받치고 있다. 흔히 말하는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예술적인 수준은 낮은 편이다. 비슷한 시기 말리크 유적에서 나온 황소 형상 토기도 있다. 붉은색 채도로 광택이 난다. 종교의식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기원전 1000년경 이란 서부에서 만들어졌다는 도자기도 있다. 회갈색으로 기하학적 문양을 그려 넣고, 고리부분에 새를 그려넣은 것이 특이하다. 아래위로 긴 항아리로 배가 볼록하고 발이 뾰족한 것도 있다. 손잡이가 달린 것으로 보아 기름 같은 액체를 넣었을 가능성이 높다. 출토된 곳과 만들어진 연도는 잘 모르겠다. 손잡이가 달린 흑도(黑陶)도 있다. 손잡이에서 예술성이 느껴지지만, 용기 부분은 투박한 편이다.
니샤푸르에서 도자기산업이 발전한 이유는?
이곳 박물관에 진열된 도자기를 보면 거의 2,000년 공백이 있다. 기원전 1,000년에서 기원후 1,000년 사이 도자기를 볼 수 없다. 그럼 그 시대에는 도자기를 만들지 않았을까? 만들었지만 남아 있는 게 거의 없을 수도 있고, 예술성이 떨어져 수집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자료를 보면 초기 이슬람시대 도자기도 있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역시 설명이 빈약하다.
그 때문에 10세기 가즈나비시대(Gaznavid dynasty)와 셀주크시대부터 도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곳 박물관에 전시된 도자기 중 중세 이슬람시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9-10세기 것이 있다. 니샤푸르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로 유백색 바탕 안쪽으로 쿠파체 글씨를 써 넣었다. 10세기 것으로 동식물 문양을 넣은 도자기도 있다. 그림과 색깔 때문에 화려하게 느껴진다.
도자기에 꽃이나 인물을 넣기도 하고 기하학적 문양을 넣기도 한다. 이들 대부분이 니샤푸르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니샤푸르가 페르시아 도자기의 중심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니샤푸르에서 도자기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중국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 상에 위치하고 있어 도자기 기술이 일찍 전해질 수 있었다. 둘째 도자기의 재료가 되는 흙과 나무가 풍부했을 것이다. 세 번째 실크로드를 이용한 판매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 도자기는 11-12세기로 가면서 문양과 색깔이 다양해진다. 또 생산지역이 넓어지면서 도자기의 문양과 색깔이 아주 달라지기도 한다. 12세기 사베(Saveh)와 레이(Rey)에서 만들어진 것에서는 중국풍이 느껴진다. 그것은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교류가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12세기 고르간(Gorgan)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는 색깔과 문양이 또 다르다. 청색 계열이고 기하학적인 무늬다.
12-13세기 절정에 이른 도자기 명품 살펴보기
12-13세기 도자기 산업의 중심지는 니샤푸르, 고르간, 카샨이다. 이들 지역에서 최고의 제품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최고란 색깔과 문양뿐 아니라 조형성이 뛰어남을 의미한다. 도자기의 용도도 접시, 대접, 주발, 병, 주전자, 항아리 등으로 좀 더 다양해졌다. 니샤푸르 도자기는 가장 다양한 제품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 만큼 작업장이 많았기 때문이다.
고르간 도자기는 색과 조각기법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보여준다. 도자기 표면에 요철을 주거나 구멍을 뚫거나 갖다 붙이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고르간에서는 새로운 모양의 도자기가 많이 생산되었다. 카샨의 도자기 역사는 시알크 문명에까지 이어진다. 그러므로 카샨의 도자기 제조 전통은 이란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13세기 카샨 도자기도 색과 조형성에서 니샤푸르나 고르간 것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 중 명품 도자기 몇 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13세기 레이에서 만들어진 파란색 물병이 눈에 띈다. 물병의 몸통은 둥글게 양각을 했고, 목은 길게 늘였으며, 주둥이는 꽃처럼 벌어지게 만들었다. 양각의 안쪽으로 여인상을 그려넣어 변화를 주었다. 도자기의 색은 청색이다. 또 주둥이의 꽃도 튤립처럼 꽃잎의 갈라짐을 표현했다. 조형성과 예술성이 뛰어나다.
13세기 고르간에서 만들어진 투각(透刻)도자기는 색, 글씨, 문양, 조형 등 모든 면에서 최고의 제품이다. 이것은 물병인데, 손잡이를 만들어 주전자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특이한 것은 주구부(注口部)를 봉황머리(鳳首)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물을 담는 부분은 봉황의 몸통으로 투각을 했다. 그러므로 이 도자기의 이름을 봉수형 투각물병라고 이름붙일 수 있겠다. 색깔은 옥색과 검은색이 교차하는 가운데, 금색을 가미했다.
13세기 카샨에서 만들어진 주전자는 고르간의 투각 도자기와 같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봉수형 물병이라는 점은 같고, 투각 대신 표면에 요철을 만들었다. 카샨 도자기는 이처럼 조형성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보여준다. 몸통과 주둥이를 다양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몸통, 손잡이, 뚜껑을 동물로 표현한 것도 있다. 색깔은 흰색 바탕에 갈색이어서 단순해 보인다. 그렇지만 문양이 예술성을 더해 준다.
14세기 이후는 청화백자로 변해
13세기 들어 몽골족의 정복전쟁이 시작되었고, 13세기 중반 페르시아 지역에 일한국이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면서 왕족 등 지도층이 중국의 도자기를 선호하게 되었다. 또 실크로드가 활성화되어 도자기의 유통과 수입이 활발해졌다.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페르시아 도자기 산업이 위축되었다. 또 파란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중국 청화백자의 영향으로 14세기 이후 청화백자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페르시아 사람들은 사파비시대 이슬람사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페르시안 블루를 사용했다. 그러므로 생활용품으로서의 도자기 생산은 줄었지만, 사원 건축과 관련한 타일산업은 발전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도안과 그림에서는 페르시아적인 모티브 사용이 늘었다고 볼 수 있다. 청화백자 도자기와 타일 생산지로는 니샤푸르, 마슈하드, 케르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