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증언을 거부하도록 하겠습니다."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진행된 박근혜 전 대통령 17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황성수 삼성전자 상무가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신문에 내뱉은 첫 마디였다.
황 상무는 대한승마협회 부회장을 지내며 대한승마협회 회장이었던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의 지시에 따라 비선실세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승마를 지원한 뇌물공여 혐의로 지난 2월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과 재판을 받고 있다.
불구속 상태로 같은 재판을 받고 있는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과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도 이날 박 전 대통령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으나 자신들의 형사재판에서 추가로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이 나올 우려가 있다며 미리 증언거부 사유서를 제출했다. 재판은 별다른 진전 없이 1시간 만에 끝이 났다.
삼성의 입이 굳게 닫혀 있다. 불과 일주일 전인 19일에도 박상진 전 사장은 같은 증인석에 앉아 "거부합니다"만 반복했다. 박 전 사장은 수사과정에서 작성된 진술조서가 자신이 말한 내용이 맞는지 인정하는 답변도 거부했다(관련기사:
30분간 "거부합니다"만 반복한 삼성맨).
황 상무도 마찬가지였다. 7월 3일 증인으로 나올 이재용 부회장 또한 증언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형사상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는 증언거부권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보장된 권리다. 침묵하고 있는 삼성 측 증인들은 이같은 권리를 내세워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조직적 증언 거부"... "재판방해 행위로 과태료 규정 있다"특검은 지난 19일 공판에서 "삼성의 조직적 증언 거부"라며 "사법제도 자체를 무시하는 삼성 관계자들의 오만한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특검은 형사소송법 238조의 2, 1항 '피고인은 진술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는 조문을 들어 "포괄적 증거 거부는 없는 것으로 명시돼있다"며 "개개의 질문에 대해 증언거부하더라도 그 이유에 대해 소명해야 한다"고 삼성측 증인들의 증언거부 논리를 반박했다.
김종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공정경제팀장은 "아직은 판례가 없으나 이미 진술한 내용을 본인이 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증언을 거부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평가했다.
김준우 민변 사무차장도 "현재 박상진 전 사장 등의 증언거부권 행사는 포괄적인 진술 거부로서 재판방해 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형사소송법도 제161조에서 이를 제재하는 과태료 규정을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제가 사건 당사자나 변호인이 아닌 이상 관련 기록을 온전히 다 보진 못 한 상태"라고 전제하고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건의 실체다. 변호인과 피고인도 이에 대한 소극적 의무를 가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지금 이런 행위(삼성 측 증언 거부)가 의뢰인의 이익만 생각하고 법과 제도를 악용하는 것이라면 국민에게 사법 불신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재판부는 26일 황성수 상무, 장충기 전 차장, 최지성 전 실장의 법률 대리인을 법정 안으로 불러 증언거부를 하는 것이 왜 형사상 불리한 것인지 '증언거부 사유 소명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증인으로 출석한 세 명에게도 "소명서를 본 다음에 증언거부권이 인정되는지 최종적으로 판단해 필요한 경우 증인신문을 다시 할 것인지 결정하겠다"고 공지했다.
한편 황 상무, 장 전 차장, 최 전 실장 등의 변호인측은 소명서의 제출 계획이나 내용에 대해 "현재 진행 중인 것에 대해선 일절 답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