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강제철거 법정(ITE, International Tribunal for Evictions)은 유엔이 정한 '2017년 지속 가능한 관광의 해'를 맞아 세계 관광의 날 바로 다음 날인 9월 28일부터 이틀간 이탈리아의 관광 도시인 베네치아에서 개최된다. 관광 개발에 따른 주택 및 토지 강제철거·퇴거 피해자들을 돕고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다. 이매진피스는 2017년 3월 베를린부터 베네치아까지 함께 한 ITE 조직위의 오톨리니 세자르(Cesare Ottolini) 씨 인터뷰, 베네치아 주민조직위원회와의 만남, ITE 조직위의 기소 요청문 등을 종합해 베네치아에서 개최될 ITE의 의미를 공유해본다.
세계 관광업계가 유엔이 정한 지속 가능한 관광의 해를 맞아 '성공 스토리'를 펼쳐갈 준비를 하는 가운데, 지구 한편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세계 관광의 날 바로 다음 날인 9월 28일 베네치아에서 국제 강제철거 법정(ITE, International Tribunal for Evictions)이 개최된다. 세계 곳곳을 자본의 손길로 파헤치며 개인의 삶의 터전부터 마을까지 무서운 속도로 집어삼키고 있는 관광개발을 피고로 기소해 법정에 세우기 위해서다.
지난 6월 16일 ITE 조직위원회는 관광개발로 인한 삶의 파괴, 주거권 침해, 강제철거의 현장들을 국제 법정에 세우기 위해 오는 7월 15일까지 사례를 제보해줄 것을 전 세계 시민사회에 요청했다.
"관광 개발 업자가 호텔을 짓기 위해서 당신의 집과 마을을 위협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리조트, 골프장, 경기장, 항구 또는 관광객을 위한 공항을 위해 당신의 마을과 이웃, 땅을 빼앗으려고 합니까? 에어비앤비(Airbnb)로 인한 불법 임대 때문에 당신의 삶과 마을이 위협받고 있습니까? 관광 개발은 세계 곳곳에서 평화롭고 존엄하게 살아가야 할 삶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습니다! 침묵하지 마십시오. 마감은 7월 15일입니다." - ITE 조직위 니콜라스 세자르지난 3월 오톨리니 세자르씨와 독일 베를린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두 차례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내용.
베네치아 인구가 17만 명→5만 명으로 급감한 이유- 어떻게 '관광'이 삶을 쫓아내는 가해자로 국제 강제철거 법정에 서게 됐나?"세계적인 위기, 전쟁 및 테러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은 2016년 기준 12억 3500만 명으로 늘어났으며,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도 그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그 무서운 성장은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지역공동체에 다양한 고통과 압력을 가중시키고 다양한 형태로 삶의 터전을 빼앗는 강제 철거의 원인이 되고 있다.
오직 관광객을 중심에 두고 숫자를 늘리려는 정부의 관광정책, 여행자의 욕구를 채우는 것과 편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관광산업은 우리가 관광을 위해 도착하는 그 도시가 누군가의 삶의 마을이며 그 땅이 삶의 터전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는다. 도시와 토지는 단지 상품이 됐고, 그곳의 주인인 주민들은 여행자를 위해 존재하는 '엑스트라(보조출연자)'로 뒤바꿔 놓는 웃지 못할 현실들이 펼쳐지고 있다."
- 그렇다면 관광 자체를 멈추라는 '저항과 투쟁'인가?"관광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관광에 의해 삶을, 집을, 이웃을, 마을을 잃게 되는 광폭한 관광개발에 반대하는 것이다. 오버투어리즘(Over tourism, 과잉 관광)으로 베네치아에선 하루에 6명의 가정이 집을 잃고 도시를 떠난다.
내가 사는 곳은 베네치아 바로 옆 파도바인데, 베네치아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지역이다. 우린 누구보다 그 문제와 고통을 잘 알고 있다. 숫자를 늘리는 양적 성장에 집착해온 정부와 도시의 관광정책은 아이슬란드에서 아프리카까지 곳곳에서 오버투어리즘으로 인한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 지역의 급격한 관광지화로 기존 거주민이 주거권을 박탈당하는 현상)을 발생시켰다.
신자유주의 정책에서 가장 가볍게 여겨 왔던 관광개발의 부정적 효과 중 하나인 관광의 '그늘'이 집과 생계 수단인 가게와 터전을 빼앗는 강제 철거의 가장 큰 요인으로 등장한 것이다."
- 왜 하필 베네치아에서 법정을 여는가?"베네치아는 관광산업의 압력에 삶과 도시가 무너져가고 있는 가장 슬픈 피해 사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관광 산업을 시민의 삶보다 우선순위 가치에 두는 정책을 시행한 이 도시는 경제적 위협으로 시민들의 주거권을 박탈하고 강제로 철거했으며, 이로 인해 막대한 위험에 직면했다.
1955년 당시 17만 5000명이었던 베네치아 인구는 2017년에는 5만 4000명 이하로 급감했다. 반면, 베네치아시의 관광개발 중심 정책 하에 여행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2016년 기준으로 연간 2400만 명이 당일 방문하고, 900만 명이 체류 방문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베네치아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과도한 관광개발로 인한 오버투어리즘은 도시와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베네치아는 그 부정적 영향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징적 도시이며, 가장 시급하게 그 걸음과 정책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도시이기 때문에 베네치아가 법정 개최 도시로 선정됐다.
무엇보다 이 도시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오버투어리즘에 맞서 싸우는 베네치아 시민사회와 주민운동 조직들이 이 법정을 가장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베네치아 시민들은 오는 10월, 바다로 뛰어들어 크루즈에 저항하는 대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또 다른 베네치아'의 시민들을 이곳으로 초대해 그들의 삶을 위협하는 오버투어리즘의 개발 주체들을 법정에 세우고, 그들의 요구를 법적 권리에 기반을 둬 구체적으로 주장할 것이다."
무분별한 관광, 삶의 주인을 '엑스트라'로 뒤바꿔놔- 이 법정의 목표는 무엇인가?"강제 퇴거는 전 세계적으로 7천만 명 이상을 위협하고 있다. 강제철거 등은 임대료 상승, 급격한 관광지화, 거대한 인프라 개발을 위한 국책사업의 강제 수용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일어난다.
그러나 그 원인의 공통점은 단 하나, 거대한 자본에 의한 관광개발과 관광을 통한 수익 증대를 주민들의 삶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정부의 개발 중심 정책에 있다. 관광개발에 따른 주거권 박탈과 강제 철거는 수많은 인권침해의 원천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투자와 개발이라는 법적 절차에 의해 교묘하고 야비하게 진행되는 데다가, 국제기구에 의해서도 잘 다뤄지지 않는 '감춰진 문제'다. 법정을 통해 관광의 폭력적 이면을 세계에 알리려는 이유다."
오톨리니 세자르씨는 이번 법정에서 다룰 대표적 피해 사례를 6가지로 요약했다.
1. 항구·도로 등 관광 인프라를 건설하기 위해 지역사회 전체에 이주 명령을 내리고 환경을 파괴하는 사례 2. 환경 보존을 명목으로 산림에서 거주해온 원주민을 강제 철거시키는 사례 3. 지진·태풍 등 거대한 자연재해로 전면적 피해를 본 지역에 대규모 재건사업을 진행할 때 관광지 강제 변환을 당하는 해안 마을들의 사례 4. 도시 혹은 마을 전체가 주민의 동의와 상관없이 외부의 자본과 결정에 의해 관광지로 개발돼 놀이동산 같은 유원지로 전락하는 디즈니피케이션(Disneyfication) 사례 5. 관광지의 숙박 수요를 해결하고, 정식 호텔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일어나는 개인주택(에어비앤비 등)에서의 불법적인 관광 임대와 이로 인한 주거권 위협 및 강제철거 사례 6. 역사적인 지역의 재개발 과정에서 일어나는 도시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과 관광 중심 개발로 인해 원주민들이 임대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나게 되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 사례그러면서 "ITE는 수많은 도시들의 사례를 통해 관광으로 어떻게 삶이 착취되고 마을이 무너지는지, 관광개발에 투여된 자본의 이익을 회수하기 위해 어떻게 마을과 도시의 공공성이 외부로 빠져나가는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뿌리 뽑히는지 목도해왔다"라며 "지구적 규모의 관광개발에 따른 삶의 파괴와 주거권 강탈 및 강제 철거 현상이 심각하면서도 중대한 문제라고 본다"라고 주장했다.
- 왜 하필 세계 관광의 날에 연이어 법정을 개최하기로 결정한 것인가? "유엔 세계 관광 기구(UNWTO, UN World Tourism Organization)는 관광 개발의 긍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수많은 근거와 문서들을 가지고 개발을 독려해 왔다. 심지어 '지속 가능한 관광개발의 해'의 방점 역시 '개발'에 찍혀있다.
그러나 관광개발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고통과 그늘에 대해서는 전혀 주목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UNWTO는 관광개발의 부정적 영향과 인권 침해 등의 문제에는 침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광은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강제 철거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그 피해자는 주로 여성과 가난한 사람들, 관광지가 된 도시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이것을 알리기 위해 '지속 가능한 세계 관광의 날' 기념 행사들이 세계 곳곳에서 열릴 2017 세계 관광의 날에 국제 법정을 시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 피해 사례를 법정에 세우는 절차와 방법은 어떻게 진행되나?"2016년 6월부터 7월 15일까지 약 한 달 동안 기소할 사건들을 접수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접수된 케이스들은 국제기구, 인권단체, 개발, 관광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국제심의위원회에 의해 검토 후 대표 사례로 선별될 것이다.
선별 후에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특히 주택 및 토지에 대한 권리와 관련된 모든 국제법 문서에 근거해 주장들을 평가할 것이다. 선별 사례를 공개적으로 검토하고 판단을 내린 후에는 유엔과 정부 등 권리 침해에 책임이 있는 경제·제도적 행위자, 그들을 돕는 시민 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 공식 권고안을 제출할 것이다."
- 법적 구속력이 존재하는가?"ITE뿐 아니라 모든 국제 민중재판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그러나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엄청난 범죄와 인권 파괴 행위에 대해 '진실의 법정'이 열리는 것이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그들의 범죄는 낱낱이 소명될 것이며,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고통과 피해 현황을 양심을 가진 전문가와 배심원단, 언론에 신원하게 된다.
법정은 재판과 심리 절차를 거친 다음 판결문에 준하는 권고안을 채택하게 된다. 이 권고안은 해당 정부, 기업, 단체에 전달될 뿐 아니라 ITE와 함께 연대하는 지역기구, 주민조직 등과 공유해 권고 이행을 촉진할 것이며, 정기적인 감시와 모니터링, 정부와 언론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 등이 병행될 것이다.
9월 28일~30일에 열리는 법정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주기를 요청한다. 고통에 대한 연대와 진실에 대한 귀 기울임, 사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통해 다다르는 정의로운 판결. 그것이 이 법정이 이루어갈 가장 크고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절대 침묵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강제철거와 인권·사회적 권리 침해를 알리십시오! ITE는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국제 강제철거 법정에 우리 지역·마을·이웃의 사례를 제출하려면
홈페이지에서 양식을 작성하거나
ite2017@habitants.org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