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시작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의제로 사드·북핵·FTA·전작권 등이 거론되고 있다. 여러 모로 향후 한미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문 대통령과 이후의 한국 대통령들은 대미관계를 획기적으로 전환시킬 기회를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더 많이 갖게 될 것이다. 종래의 수직적이고 불평등한 양국 관계를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로 바꿀 기회가 앞으로는 더 많아지는 것이다. 2016년 연말 이후의 정치상황이 그런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난 게 운명의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돌아보면 신의 섭리 혹은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그 한가운데에 노무현 변호사와의 만남이 있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이 운명적 인연을 맺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역사적·시대적 조건 위에 서 있다. 2017년 문재인 당선 이후와 2002년 노무현 당선 이후는 그런 면에서 질적으로 판이하다.
노 전 대통령 당선 때와 달리, 문 대통령 당선 때는 촛불혁명·시민혁명이 결정적 작용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대중적 인기를 발판으로 당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는 기존 체제를 뒤흔드는 시민혁명이 없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계기가 된 시민혁명을 추동한 에너지가 아직 국민 속에 남아 있다. 이 힘은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뿐, 죽지 않고 살아 있다. 그래서 지금 이 땅에는 합헌적인 문재인 권력과 초헌법적인 국민 권력이 함께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 권력과 국민 권력의 공통점 중 하나는 기존 한미관계를 바꾸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최종적 청사진이 꼭 같지 않을 수는 있지만, 양쪽 다 한미관계의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이렇게, 시민혁명을 성사시킨 국민 권력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상태에서 정부 권력과 국민 권력이 똑같이 한미관계의 변화를 추구한 적은 이전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한미관계를 전환시킬 기회가 문재인 정부나 이후의 정부에 많다고 한 것이다. 이것이 희망 섞인 전망이 아님을 웅변하는 사례가 있다. 시기적으로뿐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사례다. 바로 1986년 2월 이후의 필리핀 사례다.
피플 파워로 마르코스 친미독재정권을 무너뜨린 당시 필리핀에서는 대통령이 된 코라손 아키노의 정부 권력과 더불어, 시민혁명을 성사시킨 국민 권력이 한동안 공존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관계가 필리핀·미국 관계를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로 바꾸는 힘이 되었다. 정치적으로 지금의 한국과 비슷했던 1986년 이후의 필리핀은 그런 관계를 발판으로 대미관계를 바꾸었다.
일본 때문에 가까워진 필리핀과 미국김옥균 갑신정변 2년 뒤인 1886년, 인디언과의 전쟁을 마무리한 미국은 1890년대부터 태평양 진출을 본격화했다. 이 거대한 바다의 주요 섬들을 점령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결과로 1898년 필리핀을 스페인한테서 빼앗아 식민지로 만들었다. 미국 입장에서, 필리핀은 동아시아·태평양의 기지인 동시에 태평양과 인도양의 가교였다. 그런 필요에서 미국은 필리핀인들에게 식민지 생활을 강요했다.
그런데 태평양전쟁 중인 1942년 1월, 식민지 필리핀이 일본에 점령됐다. 이것은 필리핀과 미국을 항일투쟁의 동지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필리핀 땅에서 일본을 몰아냈다. 이 결과로 미국은 필리핀의 독립을 인정했고, 1776년 7월 4일 미국 독립선언으로부터 정확히 170년 뒤인 1946년 7월 4일에 필리핀은 독립국가가 되었다.
원수로 남을 뻔했던 필리핀과 미국은 일본 때문에 가까워졌고, 이런 분위기는 상호방위조약 체결과 군사기지협정 체결로 이어졌다. 1947년 3월 14일의 군사기지협정으로 미국은 필리핀 전역의 군사기지를 2046년 3월까지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했다. 이에 힘입어 미국은 태평양·인도양을 동시에 제어할 최고의 공군기지와 해군기지를 필리핀에 설치할 수 있게 되었다. 클라크 공군기지와 수빅 해군기지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필리핀·미국 군사기지협정은 한미 소파협정(주한미군지위협정) 만큼이나 불평등했다. 그래서 상당수 필리핀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여기다가 미국이 마르코스 독재정권을 비호한 탓에 필리핀인들의 반미감정은 더욱 더 확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1986년 마르코스 정권이 시민혁명으로 붕괴했다. 미국의 이익을 지탱하던 마르코스 정권이 무너지자, 반미감정을 억제하던 이 나라의 시스템도 약해졌다. 그러자 시민혁명 세력은 독재정권의 후견인인 미국을 표적으로 삼기 시작했다. 그들은 미군 철수 운동을 벌였다.
시민혁명에 힘입어 대통령이 된 코라손 아키노 역시 대미관계를 바꾸고 싶어 했다. 하지만 미군 철수까지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종전의 미군 기지를 그대로 두되, 미국이 기지 사용료를 내고 경제지원을 하도록 하는 방안을 관철시키려 했다.
하지만, 아키노 권력은 시민 권력의 열망을 잠재울 수 없었다. 시민혁명 세력은 미군 철수를 원했다. 물론 미군 철수를 겁내는 일반 국민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정치적 힘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시민혁명을 성사시킨 세력의 주장만 관철됐을 뿐이다.
이들의 반미운동이 확산되던 중에, 1991년 6월 클라크 공군기지 인근에서 21세기 최대의 화산폭발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클라크 공군기지가 폐쇄되고, 다음 해인 1992년에는 수빅 해군기지마저 문을 닫았다. 미군은 필리핀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태평양·인도양 최대의 미군 기지들이 사라졌으니,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이 더욱 더 약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필리핀 시민혁명이 미국의 영향력 축소로 연결된 것이다.
그로부터 7년 뒤인 1999년, 양국은 종전의 군사기지협정을 대체하는 방문군 협정을 체결했다. 미군이 필리핀에 항구적으로 주둔할 수는 없지만, 합동군사훈련의 기회를 빌려 필리핀을 일시 방문하는 것을 합법화한 협정이다.
밖에서는 중국이 남중국해를 욕심내고 안에서는 무장 세력이 정권을 압박하는 상황을 필리핀 정부는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미국의 힘을 빌리고자 방문군 협정을 체결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대미관계로 회귀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 협정은 군사기지협정에 비해 수평적이고 상호 대등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필리핀의 국익에 부합한다.
이처럼 피플파워 이후의 필리핀 정부 권력은 국민 권력의 견제 혹은 지원 덕분에 대미관계를 수평적이고 대등하게 바꾸는 데 성공했다. 정부 권력은 한때 타협적인 면을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국민 권력과 보조를 맞춰 대미관계를 혁신하는 역사적인 성과를 이룩했다.
트럼프 홀로 한미관계의 흐름 바꿀 수 없어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 진압을 승인했다가 한국인들의 반미운동을 호되게 경험한 미국은 그 후로는 가급적 한국 국민들을 자극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처럼 국민이 나서지 않고 친미정권만 나서는 경우에는 미국이 한국 문제에 자신감을 갖지만, 2016년 연말 이후처럼 한국 국민들이 직접 전면에 나서는 경우에는 미국이 자신감을 잃을 수밖에 없다.
물론 트럼프는 자신이 한국을 욕했다는 이야기까지 흘리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외교는 대통령 개인의 의지나 역량만으로 되지 않는다. 미국 전체의 힘이 약해지는 상황에서, 또 미국 지배층이 한국 국민들을 의식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홀로 한미관계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
만약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트럼프가 집권했다면, 트럼프가 한국에서 더 많은 것을 얻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필리핀 시민혁명 때처럼 한국 국민들의 에너지가 한껏 고양됐고 이런 에너지가 사드 문제를 비롯한 한미관계 현안들을 겨냥하고 있으며 거기다가 한국 정권까지 한미관계 변화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가 한국에서 얻어갈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운수 없는 대통령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및 그 이후의 한국 정권이 한미관계를 혁신하기가 그만큼 수월한 것이다.
1986년 필리핀에 비해 2017년 한국이 갖고 있는 유리한 조건이 하나 더 있다. 필리핀 혁명 때는 마르코스가 금세 무너진 탓에, 시민세력이 일찌감치 승리를 거두었다. 이에 비해 2017년 한국에서는 박근혜가 수개월씩이나 버티는 동안에 친미수구세력이 촛불혁명세력에 대항하는 일이 벌어졌고, 결국 친미수구는 국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 힘을 잃고 말았다.
1986년 필리핀에서는 보수세력이 싸움에서 패배하지 않았기에, 그들이 계속해서 기존의 대미관계를 옹호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7년 한국에서는 친미수구세력이 힘을 잃었기에, 시민 권력과 정부 권력이 상대적으로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미관계 혁신에 나설 수 있다.
트럼프를 만나러 가는 문재인 대통령의 어깨는 그래서 가볍다. 노무현 정부 때보다 훨씬 더 가벼운 마음으로 백악관을 노크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