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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경찰이 참가자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다. 이날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고 백남기 농민은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4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지만,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가 2016년 9월 25일 사망했다.
▲ '민중총궐기 대회', 경찰 물대포 난사 2015년 11월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경찰이 참가자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다. 이날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고 백남기 농민은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4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지만,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가 2016년 9월 25일 사망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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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치안과 교통단속 등 시민들의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된 업무를 하며 시민과 가장 빈번하게 접촉하는 빈번한 국가기관 중 하나이다. 빈도도 빈도지만 업무의 특성상 공권력의 집행 과정에서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시민들의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은 조직도 바로 경찰이다.

실제로 2001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접수된 경찰 관련 인권침해 진정사건은 총 1만 7157건으로 구치소 등 폐쇄 공간인 구금시설 관련 진정사건(2만5616건) 다음으로 두 번째로 많다. 최근 5년 동안 경찰 인권침해 진정도 매년 1000여 건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경찰 업무 수행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권력의 오남용을 최대한 줄이고, 인권침해가 일어났을 경우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는 조직 내부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인권 권고가 필요한 이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고, 조직이 그러하듯 내가 혹은 우리 조직이 한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이를 고치려고 자발적으로 노력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조직 역시 자기 보존 욕구가 있어 잘못이 있어도 이를 바꾸고, 혁신하려 하기보다는 현상을 유지하려는 성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조직이 잘 못 하는 일은 너무나도 잘 보이지만 우리 조직이 잘 못 하는 일은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가끔 조직의 잘못된 관행을 보더라도 그냥 덮고 넘어가려 하는 경향이 더 크다.

하지만 특정 조직의 활동이 타인의 인권이 침해한다면, 그런데도 이를 모른다면 혹은 알고도 모른 척한다면 이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그 조직이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공공기관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경찰은 오랜 시간 동안 경찰에 의해 자행된 수많은 인권침해 사건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정당한 업무였다고 막무가내로 주장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인권위원회나 국제인권기구가 경찰업무에 대해 내리는 권고가 중요하다. 경찰 스스로는 잘 보지 못하는 조직의 어두운 면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전에 따르면 권고란 어떤 일에 관하여 상대방이 어떤 조처를 할 것을 권유하는 일을 말한다. 이를 경찰에 적용해서 본다면 경찰의 업무나 업무수행방식 중 인권침해의 가능성이 있는 것들에 대해 좀 더 인권 친화적인 방식으로 바꾸라고 권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만 본다면 권고를 따르는 것은 경찰에게 득이 되면 됐지 해가 될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권고를 수용한다는 것은 경찰 스스로 자신들이 한 일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권고는 말 그대로 권유일 뿐, 법률상으로 상대방을 구속하는 구속력은 없다. 구속력도 없는 권고를 수용할지의 여부는 순전히 경찰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

경찰의 권고 불수용의 역사

국가인권위원회나 국제인권기구들은 우리나라 경찰에 수많은 권고를 내렸다. 경찰의 여러 문제 중 인권기구들의 권고를 받았음에도 개선되지 않은 이슈들을 한 번 살펴보자.

집회·시위 현장에 배치된 경찰들은 분명 공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경찰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표시를 붙이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종종 경찰의 집회·시위 대응을 감시하기 위해 현장에 나가는데 제복 위에 입고 있는 형광색 조끼나 보호 장비에 가려 경찰의 이름이나 식별번호를 볼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소속도, 이름도 모르는 경찰이 집회 참여자들을 마구잡이로 채증하고 물리력을 사용한다.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집회 참여자가 사망하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는 사건이 종종 있었지만, 경찰을 식별할 수 있는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과도한 물리력을 사용한 경찰이 누구인지를 밝히기란 매우 어렵다. 이러한 익명성의 경찰의 과도한 대응을 부추기는 면도 있다. 폭력을 행사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으면 처벌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 집회 당시 시위 진압 과정에서 과도한 물리력을 사용한 경찰에 대해 총 24건의 고소·고발한 사건이 있었지만, 이 중 기소가 된 것은 단 2건뿐이었고, 이마저도 벌금형에 그치고 말았다. 나머지 22건이 기소되지 못한 것은 행위자가 확인되지 않거나, 범행에 관여하지 않은 지휘관 등에 대한 고소·고발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지휘자에 대한 처벌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폭력을 행사한 사람, 그것도 시민을 폭행한 공무원을 특정할 수 없어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공무원의 신상을 식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공권력 행사의 투명성과 책무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2008년 당시 한국을 방문한 국제앰네스티 관계자는 "지도적 정치인들이 진압 경찰에게 포괄적 면책을 보장해주고 그들의 신분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다면 진압경찰에 대한 불처벌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정부에 "일반 경찰과 특히 진압경찰은 제복에 이름표나 식별번호를 항상 착용하게 할 것"을 권고했다.

작년에 한국을 방문한 마이나 키아이 평화로운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 역시 "과도한 무력사용에도 불구하고 경찰관의 개별 신상을 식별할 수 없어 피해자가 보상을 받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이로 인해 경찰이 책임을 회피하게 된다는 점을 우려한 바 있다. 이러한 권고에 대해 경찰은 모든 경찰복에 이름표를 부착해서 소속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형광 조끼나 진압 복장에 가려 확인할 수조차 없는 이름표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또 다른 중요한 이슈로 경찰이 집회·시위 현장에서 사용하는 물대포를 들 수 있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현장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돌아가신 백남기 농민 사건으로 인해 집회 진압 장비에 대한 문제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물대포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은 백남기 농민이 처음이지만 물대포로 인한 인명피해는 우리나라에 물대포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실제 사용되기 시작한 2005년부터 꾸준히 발생해왔다.

고압의 물에 맞아 실신하거나 망막이나 고막이 손상된 경우는 알려진 것만 해도 수십 건에 이른다. 이에 인권위는 지난 2008년부터 집회시위 현장에서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을 우선으로 하는 방어 위주의 경비원칙을 엄수할 것과 물대포 사용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라고 권고해왔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정도의 세기와 어떤 방식으로 물대포를 사용할 것인지 법에 명시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계속해서 "신중하게 사용하도록 교육하고 있다"는 대답만 반복하며 인권위의 권고를 불수용했다. 결국, 물대포의 자의적 사용은 경찰의 직사살수에 백남기 농민이 사망하는 단초가 됐다.

경찰은 지난 6월 28일에서야 그동안 제출을 완강히 거부하던 고 백남기 농민 사망 당시 살수 차량 현장 지휘·운용자들에 대한 '청문 감사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를 보면 백남기 농민에게 물대포를 쏜 살수 차량은 수리업체에서 압력 조절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노후 차량이었다. 보고서에는 당시 살수차를 운용한 경찰관 두 명 모두 사전에 충분한 교육이나 실습 없이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드러나 있다.

심지어 그중 한 명은 원래 행정팀 소속으로 살수차 조작 요원으로 지정되기 전까지 별도의 살수차 관련 교육을 이수한 이력이 없었다. 그는 사건 당일 현장에 투입되기까지 2~3회 살수차 교육을 받고 두 차례 실습한 것이 물대포 관련해서 받은 훈련이 전부라고 밝혔다. 심지어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직후에도 즉각적인 살수 중지 명령은 없었으며, 현장 지휘자는 사건이 일어난 뒤 1시간 40분이 지나서야 상황을 인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의 권고에 대해 "신중하게 사용하도록 교육"하겠다는 경찰의 대답은 조금의 진정성도 없는, 그저 권고를 피하기 위한 빈말이었던 것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다.

권고는 반드시 준수로 이어져야

경찰의 권고 불수용이 급증한 것은 현병철이 인권위원장을 맡으며 인권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기 시작한 이명박 정부 시기부터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시기 경찰에 대한 정책권고나 진정의 건수는 급증했다. 참여 정부 시기 252건이던 경찰에 대한 진정사건 및 직권 조사 권고는 이명박 정부시기 397건으로 1.5배 늘었다. 반대로 권고 수용률은 95.6%에서 77.6%로 급감했다. 정권에 따라 경찰의 인권에 대한 태도가 출렁인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진정 건수는 74건으로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불수용의 내용을 보면 경찰대 신입생 여성 비율 확대 권고를 거부하거나 청와대 인근 일괄적 집회금지 처분에 대해 "완화된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권고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청와대 인근 집회 일괄 금지통보를 하는 등 구조적이고 조직적인 인권 침해에 대한 권고를 불수용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정권에 따라 인권을 바라보는 태도가 다른 경찰, 인권을 다루는 국가기관과 국제 인권기구의 권고를 무시하면서 편식하듯 골라 수용해온 경찰, 인간의 기본적 권리와 관련된 권고를 자신들이 알아서 하겠다며 거부하는 경찰. 과연 이런 경찰에게서 우리는 '인권 경찰'을 기대할 수 있을까?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들의 과거를 조금이라도 제대로 인지하고 있다면 앞으로 '인권 경찰'로 거듭나겠다는 말을 저리 쉽게 내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경찰은 인권위와 국제인권기구의 권고를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마련하여 시민들에게 공표해야 한다.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꿀 수는 없기에 당장 개선이 시급한 항목은 즉시 시정하되, 단계별 조치가 필요한 항목은 향후 어떻게 바꿀 것인지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이행실적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권고가 강제성이 없는 것은 형식의 문제이지 그 내용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점을 경찰은 깊이 인지해야 할 것이다. 강제성이 없으니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수용해도 괜찮다는 사고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인권 권고는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아샤님은 다산인권센터 상임 활동가이자 공권력감시대응팀(공감대) 멤버입니다.



태그:#공권력감시, #경찰폭력, #인권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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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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