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철살인의 비유로 누리꾼들에게 소위 '노르가즘'을 선사하고 있는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다시 한번 특유의 걸쭉한 입담을 과시했다. '문준용 취업 특혜의혹 제보조작 사건'(제보조작 사건)을 당원 이유미씨의 단독범행으로 잠정 결론 내린 국민의당을 강하게 비판하면서다.
"콜레라균을 단독으로 만들었든 합작으로 만들었든 이를 뿌려 퍼트린 것은 국민의당이다. 국민의당이라는 공신력 있는 정당의 타이틀을 걸고 발표했기에 많은 국민들이 믿은 것이다. 분무기로 뿌린 쪽의 책임이 더 크다."대국민 사과 후 살 길 찾아 나선 국민의당노회찬 원내대표는 지난 5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제보조작을 콜레라균에 비유했다. 제보조작을 이유미씨 단독으로 한 것이든 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한 것이든 상관없이 이를 유포한 쪽이 더 문제라는 취지다. 다시 말해 제보에 혹해서 필터링 없이 이를 덜컥 공개한 국민의당의 책임이 훨씬 막중하다는 것이다.
노회찬 원내대표의 '노르가즘'은 방송 내내 이어졌다. 그는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국민도 속고 국민의당도 속았다"고 털어놓은 것에 대해서도 "조사해서 팔지 말아야 할 책임이 냉면집 주인에게 있는데 '균이 나를 속였다. 대장균의 단독범행'이라고 말하는 꼴"이라며 "여름에 냉면집 주인이 '나는 대장균에게 속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국민의당이 제보조작 사건을 이유미씨의 단독 범행이라 잠정 결론 짓고, 안철수 전 대표와 박지원 전 대표 등 당 지도부와 무관하다고 선을 그은 것을 신랄하게 비꼰 것이다. 제보조작 사건의 본질은 외면한 채 책임 회피에 급급하고 있는 국민의당의 행태는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제보조작 사건과 관련, 국민의당은 도저히 공당이라고는 볼 수 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인적·물적 인프라를 두루 갖춘 공당이 한낱 평당원의 조작에 놀아났다는 설정부터가 도무지 이해 불가다. 더욱이 국민의당이 관련 의혹을 터트린 5월 5일은 대선을 불과 나흘 앞둔 시점이었다. 제보의 성격과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한다면 의혹 제기에 앞서 보다 엄중한 검증의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
그러나 국민의당은 마치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이 사안에 빨려 들어갔다. 그들은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조작된 증거를 바탕으로 TV에서, 기자회견장에서, 유세장에서, SNS에서 상대 후보를 맹렬하게 성토했다. 증거가 조작된 것으로 판명이 나는 순간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할 만큼 그들은 의혹 확산에 열과 성을 다했다. 이 모습이 언론을 통해 여과 없이 국민에게 전달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국민의당은 박주선 비대위원장의 대국민 사과 이후 제 살 길 찾기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이용주 당시 공명선거추진단장을 비롯해 이준서 전 최고위원 등 제보조작 사건의 핵심 관련자들 모두 이유미씨에게 화살을 돌리기에 여념이 없다. 당 지도부 역시 "몰랐다", "아니다" 등의 회피성 발언을 녹음기처럼 읊어대고 있을 뿐이다. 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국민도 속고, 국민의당도 속았다"는 기상천외한 결론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통화 기록은 있는데 통화 사실은 기억 안 난다?
그런 가운데 지난 5일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박지원 전 대표와 이준서 전 최고위원이 지난 5월 1일 36초간 통화한 사실이 새롭게 밝혀진 것이다. 5월1일은 국민의당이 문제의 문준용 특혜취업 의혹(음성녹취)을 발표하기 전, 박지원 전 대표는 그동안 이준서 전 최고위원과 통화한 사실이 없다며 일각에서 제기된 사전보고설을 부인해 온 터였다.
그러나 국민의당 진상조사단의 조사로 지난 5월 1일 오후 4시 31분 두 사람이 36초간 통화한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박지원 전 대표의 주장은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두 사람 사이의 통화 내용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박지원 전 대표와 이준서 전 최고위원과의 통화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제보조작 사건 관련 의혹은 더욱 커지게 될 전망이다.
"5월 1일에 통화한 기억이 나는 지금도 없고 내 발신기록에는 없었다. 이 전 최고위원의 발신기록을 어제 전달 받아 살펴보니 기록이 남아있어 통화 사실은 과학적으로 입증됐지만 지금도 기억은 안 난다."박지원 전 대표와 <뉴시스>와의 전화 인터뷰 내용 중 일부다. "술을 마셨지만 음주운전을 한 것은 아니다"에 버금가는 참으로 군색한 해명이 아닐 수 없다. 기록은 남았지만 기억에는 없다는 황당무계한 해명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사안과 시기의 엄중함, 그리고 5월 1일이 불과 두달여 전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동안 박지원 전 대표는 제보조작 사건과 관련해 여러 차례 간담회를 하며 되레 의혹을 크게 만들었다. 지난달 30일에는 자신이 이준서 전 최고위원과 전화나 문자를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다가, 7월3일에는 통화한 기억이 없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는 통화한 사실은 나왔지만 자신은 여전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해명하고 있다.
일개 평당원의 제보조작에 당 전체가 속절없이 놀아나는가 하면, 당 지도부는 개연성 떨어지는 해명을 둘러대기에 급급하고 있다. 당시 대선후보로서 모든 것을 총책임져야 할 당사자는 이번에도 역시나 '간보기'에 열중하고 있다. 우리 정치의 씁쓸한 민낯이 국민의당 제조조작 사건에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터다. 웃프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더니, 이제 보니 국민의당이 딱 그 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