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엄마, 아빠가 건네준 커다란 털복숭아를 바닷물에 대충 씻어 한입 덥석 깨물었다. 바닷물의 짭짤함이 섞인 물컹한 복숭아의 달큰함에 온몸이 짜릿해진다. 그 황홀한 복숭의 맛과 그 시절 도남동 바닷가를, 통영바다에 깃든 가족의 시간을, 나는 사랑한다.
어린 시절 나를 키운 건 통영바다다. 천지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고요한 섬들이 노래하는 통영에서 태어난 많은 사람들에게 바다는 요람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매일매일 바다를 보고 살았고, 바다는 언제나 아이들의 놀이터였지만, 특히 여름은 바다에 풍덩 빠져 온몸으로 바다를 느끼는 계절이었다.
그때는 아직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기 전이었고, 엄마와 아빠, 동생과 나, 우리 네 가족은 한여름 일요일이면 언제나 먹거리와 수영복을 챙겨 도남동 '공설해수욕장'으로 떠났다. 엄마와 아빠는 2017년 지금에도 휴대폰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고, 자가용은 물론 자동차 면허증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바리바리 가방을 하나씩 메고 시내버스에 올랐다.
도남동 종점에서 내려 가파른 언덕을 하나 넘으면, 거제도, 한산도, 욕지도, 메물도, 또 멀리 일본 대마도까지 이어지는 바다가 열리고, 들쭉날쭉 리아스식 해안선을 따라 통영 시민들의 자그마한 해수욕장이 펼쳐진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서해의 대천, 부산의 해운대, 동해의 경포대 같은 이름난 해수욕장들에 가보았는데, 그 해수욕장들은 해변이 길게 펼쳐지는 반면, 도남동 해수욕장은 약 50미터 길이의 자그마한 모래 해변들 서너 개와 바위 지형이 뒤섞인 모습이다. 모래도 그리 곱지 않고 규모도 작아 외지인들보다 통영 시민들이 주로 수영하는 곳이다. 몇 개의 해변 중 시내 쪽을 바라보는 해변은 관광호텔과 가까워서 그런지 '외국인 해수욕장'으로 불렸는데 실제로 외국인들이 수영하는 것을 본 적은 없다.
우리 가족은 언제나 버스정류장과 시내 쪽에서 제일 먼, 작고 움푹 들어간 해변에 자리를 잡았다. 엄마는 수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 바위 그늘에 자리를 잡고 갯강구들과 도둑들로부터 우리의 간식 가방을 지키며 책을 읽곤 했다. 아빠는 나와 동생의 수영 선생이었고, 해안 절벽 아래의 산딸기 군락지에서 수풀을 헤치고 통통한 황금 산딸기들을 따오는 간식 대장이었으며, 수영이 끝난 뒤 소금기를 씻을 수 있는 비밀의 샘에서 서늘한 맹물을 퍼주는 묵묵한 마술사였다.
빠져 죽지 않을 만큼 헤엄을 배우기까지, 다리가 닿는 얕은 물에서 몇 번의 여름을 보냈는지, 짜디짠 바닷물을 얼마나 많이 삼켰는지, 숨이 막혀 죽을 고비는 또 몇 번이나 넘겼는지 모른다. 한참을 헤엄치다 모래밭으로 걸어 나가면 발과 다리 여기저기에 난 상처에서 빨간 핏물이 번졌지만 피는 금방 멎었고, 내 다리는 조금 더 튼튼해졌다. 맹물 한 모금 마시고, 식빵 한 조각, 복숭아 하나 먹는 동안 햇볕과 바람에 등이 다 말라가면, 다시 기운이 생겼고, 나는 또 바다로 들어간다.
개구리헤엄으로 다리가 닿지 않는 깊은 바다까지 나간 후, 해변 방향을 확인하고 살며시 몸을 돌려 바다에 누워본다. 눈과 코만 빼고 온몸이 깊고 깊은 바다 위에 떠있는 순간. 찬란한 햇살이 파도에 부서지고, 귓속을 꽉 채운 바다의 소리가 울려온다. 정규씨와 내 친구들이 쐐기나 해파리에게 쏘이는 걸 몇 번 봤기 때문에 미지의 바다가 약간 불안하기도 하고, 큰 배가 지나가며 만든 큰 파도로 짠물을 먹기도 하지만 나는 한없이 편안하고 시원하고 또 따듯해 세상 하염없이 통영바다에 떠있고 싶어진다. 어른이 되어 다른 바닷가에 떠있을 때도 나는 언제나 통영바다 생각이 난다. 나는 넓디 넓은 지구의 바다, 또 우주의 바다에 둥실 떠서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
해가 서산을 넘어 우리의 바다에도 점점 그늘이 지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지금은 시설이 정비되어 컵라면과 음식을 파는 곳도 있고 샤워실도 생겼지만 당시는 바닷물을 씻어낼 곳이 없었다. 그런데 바닷길 어느 곳에 비밀의 샘물이 있었다. 작은 플라스틱 병 하나만 있으면 우리는 충분히 소금기를 씻어낼 수 있었다. 온수 따위는 나오지 않아도 괜찮고, 머리카락에 소금이 푸석거려도 샴푸 따위는 쓰지 않는다. 건빵이나 강냉이, 남은 간식을 먹으며 방파제를 걸을 때면 미륵섬, 통영바다에 또 하루 여름의 태양은 저물어 간다. 바닷바람에 옷도 다 마르고, 네 가족은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운하교를 건너 육지의 도천동으로 돌아갔다. 그런 날 저녁밥은 얼마나 기꺼웠으며, 또 잠과 꿈을 얼마나 깊었던가.
소년의 통영바다가 그리운, 수도 서울의 여름이다. 퇴근을 한 저녁에도 33도씨, 여기는 찜통 같은 열기의 옥탑방이다. 시절은 흘러, 통영 사람들의 영산(靈山)인 미륵산에는 번쩍번쩍 케이블카가 오르락내리락 거리고, 얼마 전에는 '로지'라는 대규모 레저 시설까지 들어왔으며 숙박시설과 관광객, 자동차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경제 발전과 관광객 유치, 시대의 변화라는 미명 하에 폐수와 매연은 늘고, 아름다운 바다와 섬이 오염되고 있다. 우리가 따먹던 해안 절벽의 황금 산딸기는 자취를 감췄고, 비밀의 샘물은 말라붙었으며, 영원히 인간의 때를 씻어줄 것만 같았던 짜디짠 바닷물의 색도 탁해지고 있다. 절절한 햇살, 푸른 바다와 바람, 나의 요람, 우리의 요람인 통영바다가 썩어간다.
가슴이 미어진다. 나는 무엇을 쫓아, 이 머나먼 회색 도시에서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지만, 그 미어지는 마음을 안고, 바다의 바람을 안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