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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서울시 청년수당 사업이 재개되었다. 작년 한 해, 청년수당을 받게 된 당사자로서 사업이 취소되는 모습을 보며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청년의 노력이 부정 당했다는 속상함이다. '청년에게 주는 돈은 마약이다', '청년들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 같은 이야기는 왜곡된 언론을 타고 날아서 금방 사람들에게 '잘 먹히는' 관점이 되었다.

"2016년 8월, 보건복지부가 청년수당 사업을 도덕적해이를 이유로 직권취소했다"는 단순한 문장 속에는 청년수당을 만들기 위한 청년의 노력, 작은 지원에 기쁨을 느꼈을 청년의 기대가 좌절되는 순간 또한 담겨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바뀌자 복지부의 걱정은 금방 사라진 것만 같다. 2회차 청년수당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청년수당을 벤치마킹한 청년구직촉진수당을 전국적으로 시행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청년을 위해 좋은 일이다 싶으면서도 지난해의 직권취소 상황을 생각하면 황당하기도 하다. 어쨌거나 서울의 청년 5000명은 최소 2개월에서 최대 6개월 동안 월 50만 원 만큼의 시간을 얻었다. 이런 기회를 전국의 청년이 얻게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시행될 구직촉진수당이 청년의 삶에 가 닿을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청년들에게 '시간'을 선물해준 청년활동지원금

 서울시청 청년정책담당관 사무실.
 서울시청 청년정책담당관 사무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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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청년수당, 즉 청년활동지원금은 '시간의 보장'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미래를 준비할 시간을 가질 수 있게 생활비를 버는 시간을 줄여주자는 것이다. 당장 취업을 준비해야하는 청년은 여러가지 비용에 시달린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월세, 학자금 대출 이자, 스펙을 쌓기 위한 학원비, 통신비, 교통비, 식비...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수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대학도 가야하고, 스펙도 쌓아야 한다. 이를 포기하면 기회가 차단된다. 일정한 스펙을 쌓지 않거나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지원조차 못하는 회사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비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청년도 있다. 부모님의 지원이 가능한 경우다. 하지만 양극화가 심해지고 소수가 다수보다 훨씬 부유한 상황이라면, 그렇지 못한 청년이 더 많을 것이다. 대부분의 구직 중인 청년은 비용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한다. 그래서 청년은 바쁘다.

지출이 큰 와중에 취업의 문은 좁다. 돈은 계속 써야 하는데, 벌 수 있는 곳이 없다. 소득이 없는 시간은 빚이 쌓이는 시간이다. 그렇게 낭떠러지를 걷고 있는 청년은 지속적인 실패를 경험한다. 실패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낭떠러지를 걷는 동안 100번의 실패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100군데, 200군데의 회사에 몇 년간 이력서를 내고 떨어지는 과정에서 청년의 자존감은 점점 낮아진다. 최종면접에서 떨어지는 경험을 여러번 한 친구는 "내가 이 사회에 필요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익숙하게 들리는 뉴스가 있다. 오랜 기간 취업준비를 하던 청년, 하고 싶은 일을 했지만 생활비를 마련하지 못한 청년은 목숨을 끊었다. 하청노동자로 낮은 임금을 받으며 고된 노동을 하던 청년은 일을 하다 목숨을 잃었다. 혼자 사는 것이 익숙한 우리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느낀다. 청년실업문제는 구직문제이기도 하면서 높은 주거비 문제이기도 하다. 또 노동환경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모든 상황에서 청년들은 혼자 압박감과 죄책감을 감당한다. 그리고 자존감을 잃어간다. 이들이 잃어버리는 삶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청년이 겪는 문제는 총체적이고 시급한 문제다.

내게 '사회적 신뢰'로 다가온 청년수당 50만 원

지난해에 딱 한 번 지급받았던 50만 원은 단순히 돈이라기 보다 '사회적 신뢰'였다. 사용처 제한이 없다는 것은 나를 신뢰한다는 말이었다. 단순한 행정 처리를 위해 요구하는 것이 없으니 스트레스 없이 내게 필요한 구직활동계획을 세웠다. 취업성공패키지가 정해진 학원을 다니고 기술을 쌓는 것이라면, 청년수당은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탐색하는 기회다. 그리고 그 50만 원은 사회를 위해 갚아나가야 할 빚이 되었다. 사회가 나를 믿어주었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다른 비용의 압박에서도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구직 간접비용까지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계획되어 있는 구직촉진수당은 다르다. 청년을 바라보는 보건복지부의 시각은 아직 달라지지 않았다. 취업성공패키지를 이수하고 마지막 단계에서 돈이 지급되는 방식이다. 사실상 기존 정책의 단점을 그대로 가져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계획된 대로라면 청년들은 정해진 학원에서 기술을 배워야 한다. 취업성공패키지를 이수하는 동안의 생계비는 여전히 청년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취업에 성공해도 오래 일할 만한 좋은 직장임을 보장받을 수 없다. 마지막 취업알선 단계에서 돈이 지급된다. 서울시 청년수당에서 돈은 '사회적 신뢰'의 수단이라면, 구직촉진수당의 돈은 '인센티브'다. 똑같은 금액의 돈이라면 어떤 것이 청년의 삶을 더 행복한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어떤 이는 정치를 마음의 문제로 표현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비통한 마음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얼마나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청년정책에 있어서는 참고해볼 만하다. 무리하게 없는 돈으로 여행을 떠나 돈을 다 쓰고 돌아와 다음달 월세를 떠올리며 불안해 하던 내 모습을 기억한다. 그때 가난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불안함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사회 구조가 만들어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늘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청년, 우리의 가난이 만드는 압박감, 기업에 들어가는 것 말고 다른 꿈을 꿔볼 수도 없는 환경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내게 필요한 것은 기초적인 생활을 보장하고 사회적 신뢰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시간이다. 안정적인 시간을 바탕으로 그 다음을 꿈꾸고 싶다.


#청년수당#구직촉진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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