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2011년 청와대에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장악 계획을 보고했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10일 <세계일보>는 2011년 11월께 국정원이 청와대에 'SNS 선거 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이란 문건을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 전문 바로가기). 이 보고서 맨 위에는 "여권이 야당·좌파에 압도적으로 점령당한 SNS 여론 주도권 확보 작업에 매진, 내년 총·대선시 허위정보 유통·선동에 의한 민심 왜곡 차단 필요"라고 나온다. 2012년 열리는 국회의원선거와 대통령선거에 여당이 유리하도록 여론을 조작하겠다는 목적을 명확히 한 셈이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파기환송심 24차 공판이 열리는 날이었다. 당초 재판부(서울고등법원 형사7부·부장판사 김대웅)는 결심을 진행, 양쪽 최후 의견진술을 듣고 공판 절차를 마무리하려 했다. 그런데 새로운 문건이 등장하면서 재판 분위기는 계획과 달라졌다.
"<세계> 문건, 국정원 트위터 활동 목적 명백히 드러내"검찰은 이번에 등장한 문건이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이라는 핵심 쟁점과 연결된다며 추가 증거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복현 검사는 "오늘자 <세계> 보도대로 해당 문건이 디도스 특별검사팀에서 압수했던 것임을 확인했고, 문건 내용을 봤더니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취지로 (국정원 심리전단의) 트위터 활동 목적이 총·대선 관여 의도 등이라는 것이 명백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어 문건 작성 경위와 작성자 등을 확인하기 위해 관련 사건기록 문서송부촉탁과 국정원 상대 사실조회를 신청했다.
원 전 원장 변호인 배호근 변호사는 "오늘 (변론) 종결이 예고됐고, 이미 파기환송심에 이른 지 2년이 다 되어 간다"며 "현 단계에서 다시 증거신청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반대했다.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 변호인 신종대 변호사와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 변호인 권순익 변호사 의견도 같았다.
신 변호사는 "보다 확실한 증거가 있을 것이란 가정 하에 재판이 지연되는 것은 형사소송법 원칙에 반하며 검찰 스스로 기소 시 충분한 증거를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거듭 재판부에 증거조사를 진행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검사는 "저희도 고민이 없던 것도 아니지만 이 문건을 보십시오"라며 "여당에게 절대 불리한 (SNS) 여건이 계속되고 있는데 어떻게 할지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이다, (국정원) 트위터 활동의 배경 등을 규명하는 데에 도움이 될 내용이라 점심 먹다 서둘러 신청서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또 "이 사건이 2012년 이명박 정부 때 벌어져 박근혜 정부를 지나 문재인 정부까지 진행 중인 특수성, 국정원 압수수색 등을 했음에도 자료가 다소 미진하게 나온 배경 등을 고려해달라"고 했다.
재판부는 잠시 휴정한 뒤 약 15분 정도 논의했다. 결론은 '기각'이었다. 김대웅 부장판사는 "소송 진행 경과나 검찰이 주장하는 자료 내용 등을 종합해 볼 때 증거 채택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검찰로선 아쉬운 면이 있겠지만 이해해달라"고 했다. 그는 "어디까지나 이 결정은 정치적 성향이나 사적 이해관계와 전혀 상관 없다"며 "재판부 또한 오로지 헌법 규정에만 기초해 재판하고 있고 결론도 그렇게 낼 생각이니 오해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이의를 제기했다. 또 재판부 허락을 얻어 원 전 원장에게 <세계> 보도 문건을 묻기로 했다. 오후 2시 정각에 시작한 재판은 그제야 절차 문제 논의를 마치고 오후 3시 9분부터 피고인 신문에 들어갔다.
원세훈 전 원장은 이 문건을 보고받거나 청와대에 보고한 기억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또 자신은 SNS상에서 좌파가 득세하고 우파 영향력은 미미하다는 "그런 내용을 보고받을 정도로 여유 있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는 "국정원은 청와대에 주로 동향보고를 한다"며 "이런 식으로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개입한다는 문건을 청와대에 만들어준다는 것은 제게 보고된 바도 없고 보고받는 내용도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원세훈·이종명·민병주, 5년째 한결 같은 '모르쇠'또 중·장기적으로 페이스북을 장악해야 한다는 부분을 두고는 "아직 카카오톡도 안 쓴다, 그런 것은 전혀 모른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 종류를 몰라도 국정원의 사이버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취임 후 심리전단을 확대 개편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하지만 원 전 원장은 "저희가 걱정했던 것은 은행 디도스 등 사이버 공격"이라며 "거기에 더해 모니터링팀을 만들었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지난 5년 동안 한 번도 달라지지 않은 주장이었다. 이종명 전 차장과 민병주 전 단장 역시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변호인들은 이날 반대신문을 진행하지 않아 피고인 신문은 4시 49분 끝났다. 이어 최후 의견 진술 절차로 들어가자 검찰은 새로 나온 문건과 증거 관련 주장 등을 다시 한 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한 기일을 더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변호인들은 이번에도 반대했다. 하지만 김 부장판사는 "최종 의견을 풍부하게 할 기회를 달라고 하니 시간을 드리겠다"며 결심공판을 7월 24일 오후 2시로 미뤘다.